내연산 보경사 <보경선다寶鏡禪茶>
이서연
시인
무얼 더 바랄 수 없이 하늘빛이 가장 성스런 계절이다. 한껏 불 뿜던 마음이 돌고 돌아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단풍의 계절에 내연산을 찾은 건 어리석은 인연으로 엮어진 분노와 화해하고, 가슴으로 사랑한 감사한 날들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추억은 세월의 향기를 담고 있다. 가을은 그 추억의 향기로 깊어간다. 그러나 혹여 가슴에 구름처럼 피었다 사라진 것들이 번뇌의 무게를 만들고 있다면 지워야 할 것이다. 또한 고독과 층층이 생애를 같이 한 채 가늠할 수 없는 회한의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 또한 거둬 내야 할 것이다. 가슴팍에서 ‘가을앓이’의 씨앗이 될 것들을 하나하나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았다는 삼용추三龍湫폭포에 쏟아 붓고 다시 쓸쓸하지 않을 연습을 해 본다.
쓸쓸한 계절에 쓸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는 쓸쓸하지 않을 연습은 쓸쓸함 자체를 놓아 버리는 일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계절의 섭리처럼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그 무엇을 안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걸 감당하는 것이 각자의 몫이요, 감당하기 위해 알 수 없는 그리움까지 통째 단풍으로 태우며 이 계절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내 지우지 못하는 간절한 그 무엇이 있다면 어쩌랴, 어디서 구름 한 점이 머물고 있는 맑은 물 한 잔 마시고 가슴으로 덮을밖에.
산뜨락에 가을빛이 깊어가는 시간에
구름이 건너간 자리마다 맑은 바람이 머문다
바람이 흘리고 간 그리움은 바람에 두어라
설레었던 기억들이 여물어 가는 시간에
햇살이 씻어내는 추억마다 푸른 바람이 머문다
푸른 바람에 걸러진 추억은 가슴에 두어라
-「내연산이 보내는 가을편지」 중에서-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느낌을 전하자 왕명으로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바라보다 구름이 한가롭게 머물고 있는 맑은 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모금 마셔 본다. 목으로 국화향까지 한 줄기 쭉~ 들어온다. 세월의 향기를 분위기로 흘려주는 천왕문에서 오층석탑과 적광전을 보면 허둥대던 마음 한 자락이 잠시 얌전해진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도량을 둘러보라는 듯한 표정이 느껴져 그 순간, ‘역사가 머물던 자리가 좀 가난하면 어떠랴,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걸’ 싶다. 그러나 사실 보경사는 가난하지 않다. 보물도 있는 사찰이지만 사방 둘러보아도 편안하고 다정한 사람처럼 더 바랄 게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갖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햇살을 뽑아서 세월에 채워 둔 장독 풍경이 장관이다. 장독만 봐도 너무 가진 게 많은 산사가 아닌가 싶을 만큼 가볍게 볼 수 없는 고찰의 품격을 갖고 있다.
짐작컨대 장독엔 독을 풀어낼 우리 고유의 약들이 있을 것이다. 사발에 부처님께 올렸던 공양밥 한 주걱만 얻어 고추장 한술에 비비고 고추를 된장 찍어 먹으면, 인간사 ‘화’로 채워진 묵은 독이 저절로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갈한 도량 한 복판, 고요로 다진 듯한 기품을 뿜어내는 고령의 소나무가 있다. 오층석탑만큼이나 어느덧 보경사의 상징이 되는 자태라 포토존이 되고 있다. 이 소나무를 지나
솔숲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 찻집으로 들어가 본다. 외형은 보경사 격에 맞는 건물은 아니지만 어엿하게 <보경선다寶鏡禪茶>라는 목간판을 걸고 있다. 찻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외형과 달리 ‘아, 예쁘다’는 찬사가 저절로 나오는 분위기에 진한 커피향이 퍽 괜찮다. 소박한 들꽃, 들풀과 제철 사과로 멋을 낸 듯, 안 낸 듯 자연의 분위기를 담아낸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준다.
가을은 커피다. 아니 커피는 가을이다. 가을을 마시기 위해 커피를 주문했다. 사람들은 추억을 태운다고 하지만 곧 낙엽 되어 굴러다닐 추억은 가을에 태울수록 가슴에선 산불이 된다. 차라리 그냥 차 한 잔에 타서 마셔 버리는 게 답이다 싶다.
단풍에 키스하며 떠난 사람
여기, 커피 한 잔 하세요
향기 잃은 꽃잎처럼 기억에 묻힌 그대
한 모금 커피로 떠오르는 시간
건네준 스카프를 다시 두르고
함께 했던 산사를 걸었습니다
법당 모퉁이를 돌아
노릇한 햇살에 마지막 인사하는 꽃잎을
차마 어쩌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그대도 스카프를 건네고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한 건
어쩌지 못한 이유였을 테죠
단풍에 키스하며 떠난 사람
이제, 커피 한 잔 하세요
-「단풍에 키스하며 떠난 사람」 전문-
산사에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가 산향을 풍긴다. 잘 우려진 산향을 커피로 마시는 동안 헛된 기약처럼 붙들고 있던 그림자를 지우니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말한 것처럼 ‘나무의 발아처럼 자연’스럽게 무시로 드나드는 번뇌의 물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연산 능선의 하늘을 바라보니 그 빛이 유난히 맑다. 역시 내연산은 하늘빛을 거두어 드린 자리를 잘 잡은 산이고, 보경사는 그 숨결이 낭만적으로 흐르도록 자리 잘 잡은 도량이다. 때때로 이 도량에서 장맛으로 몸의 독을 풀고, 숨결을 고르게 한다면 마음 속 독은 자리할 곳이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