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나를 살찌게 하는 것들이 많다. 먼저 한 편의 시가 나를 살찌게 한다. 그 시가 느린느린 느린 배밀이로 내 삶의 등판을 밀어준다. 탐스러운 가을 햇살로 내 삶의 바큇살을 돌려준다.
김사인 시인의 「달팽이」다.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산다고 들었다
바깥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히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 할 그 누구조차도 사라지고
길은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이 가을, 나도 김사인 시인의 「달팽이」처럼 한 천 년쯤 기약하고 맑은 햇살과 함께 어딘가로 느린느린 가고 싶다. 고독한 뿔을 치켜들고 어딘가로 느린느린 떠나고 싶다. 어딘가로 흩날리고 싶다. 어딘가로 흩날려 당신의 따스한 낙엽 옷이 되고 싶다. 당신의 다정한 편지가 되고 싶다. 모닥불이 되고 싶다. 그러다가 마음 내키면 햇살 좋은 밭둑에 느린 배를 내리고 도적굴이 되거나 골방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그 도적굴에, 그 골방에 나의 왕국을 세우고 싶다.
이 가을 나를 또 살찌게 하는 것은 한 그루의 도토리나무다. 도토리나무는 어릴 적 내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때까치 집을 내리기 위해 다람쥐처럼 오르내렸고, 가을엔 도토리를 주워다 구슬치기를 하기 위해 뻔질나게 도토리나무 밑을 왔다 갔다 했다. 얼마 전 치악산 비로봉을 오르다 어릴 적 나의 그 도토리나무를 보았다. 도토리를 보았다. 다람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도토리나무는 아직도 내 마음의 집을 떠나지 않고 가난한 내 마음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도토리나무를 까맣게 잊고 살았건만 도토리나무는 아직도 변함없이 내 가난한 마음 밭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내 마음 밭에서 즐겁게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 밭에서 아직도 열심히 도토리를 주워 먹고 있는 다람쥐들이 나는 한없이 고마웠다.
이 가을 나를 또 살찌게 하는 것은 한 잎의 당단풍나무 잎이다. 어느 날 문득 고개 들어보니 북한산이 발갛게 물들었다. 단걸음에 달려가 보니 당단풍나무였다. 다른 나뭇잎보다도 보름은 더 일찍 불이 붙어 있는 당단풍나뭇잎. 꼭 내 어릴 적 그 계집애의 손바닥처럼 투명하고 발그스레한 당단풍나뭇잎. 손가락 다섯 개가 꼭 그 계집애의 가녀린 손가락을 닮았다. 발그스레한 실핏줄이 꼭 그 계집애의 깊은 손금을 닮았다. 탐스러운 그 손바닥이 꼭 그 계집애의 포동포동한 손바닥을 닮았다. 퍽 오랜 세월 나는 그 손바닥의 힘으로 살아왔다. 그 손바닥의 다스한 체온으로 내 온몸을 덥히며 살아왔다. 아, 아직도 그 손바닥의 힘이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니.
이 가을 나를 또 살찌게 하는 것은 한 잎의 햇살이다. 늙은 호박잎 위에 내리는 햇살은 나를 늙은 호박잎이 되게 하고, 가난한 판잣집 위에 내리는 햇살은 나를 가난한 판잣집이 되게 하고, 탱글탱글 잘 여문 밤톨 위에 떨어지는 햇살은 나를 또한 탱글탱글 잘 여문 밤톨이 되게 한다. 이 가을 나는 그렇게 잘 늙은 호박잎처럼 살고 싶다. 이 가을 나는 또 그렇게 가난한 판잣집처럼 살고 싶다. 이 가을 나는 또 그렇게 탱글탱글 잘 여문 밤톨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잘 늙은 호박잎처럼 편안하게 내 삶을 뒤돌아보고 싶다. 행복한 판잣집처럼 내 삶의 집을 되돌아보고 싶다. 탱글탱글 잘 여문 토실밤처럼 아직도 설익은 내 삶의 밤톨을 가꾸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가을 나를 또 살찌게 하는 것은 옛 선사의 잔잔한 어록 한 구절이다.
운문 선사가 어느 날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름 전의 일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묻지 않겠다. 그러면 보름 이후의 일에 대해서 한 마디씩 일러보아라.”
사람들이 말이 없자 스님은 스스로 대답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로다.(日日是好日)”
지나간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 가난해서 술 찌개미로 주린 배를 채웠던 것도, 첫사랑을 잃고 몇 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뜬 눈으로 날을 새웠던 것도 지금은 다 아름다운 과거가 되었다.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항상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해일이 되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문 선사는 ‘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로 살라 말씀하신 것이다. 하루하루를 최고로 좋은 날로 살아가라고 일러주신 것이다.
노랗게 물든 감나무 잎이 하늘하늘 운문 선사처럼 묻고 있다. ‘너는 지금 너의 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느냐.’고. ‘너의 하루를 최고로 좋은 날로 만들고 있느냐.’고. 그래서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어느 날 아침엔 마른 풀 가득 무서리가 내려도 나는 날마다 참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하염없이 느린 배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마음도 살찌고 무릎도 살찌고 옆구리도 살찌는 ‘日日是好日’의 청명한 가을날이다. 정치는 정치꾼들에게 맡겨두고, 싸움은 또 싸움꾼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오늘 우리만의 가을을 위해 달팽이처럼 느린 배밀이로 우리의 삶을 느린느린 밀고 나가자. 느린느린 느린 배밀이로 우리의 삶을 느리느린 밀고 나가 호박처럼 느린느린 안살을 살찌우자.
<발문>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항상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해일이 되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문 선사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로 살라 말씀하신 것이다. 하루하루를 최고로 좋은 날로 살아가라고 일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