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 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영은사는 천 수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전란과 자연재해 또는 인위적인 힘에 의해 허물어지고 파괴되었던 것을 수십 차례에 걸쳐 복원하고 재건함으로써 건물 자체는 많이 새로워지기는 했지만, 경당들은 진정한 고적이라 할 수 있다. 천왕문 앞 경당은 북송 개보(开宝) 2년인 서기 969년에 만든 것으로 역시 북송 경우(景佑) 2년인 서기 1035년에 오월국왕 전씨 가묘(家庙)에서 영은사로 옮겨 온 것이다. 동쪽에 세워진 당은 높이가 7.7미터로 "대불정타라니경"이 새겨져 있고 서쪽의 당은 높이가 11미터로 "대수구즉득대자재타라니주경"이 새겨져 있다.
사원 앞에는 냉천정, 비래봉 등의 명소가 있다. 영은사 건축물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장엄하고 웅장한 기세가 느껴지며 중국 불교의 이름 있는 불교사찰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영은사는 청 말에 다시 지은 바 있으며, 그 기초상에서 조금씩 보수를 해 온 것이다. 대웅보전 앞의 석탑이나 천왕전 앞에 있는 경문이 새겨진 돌탑은 조형이 고풍스럽고 소박하며 조각이 정밀하다. 
이는 모두 오대십국 때의 유물이다. 영은사에 소장된 진귀한 불교문물로는 고대의 다라수 혹은 패다라라고 하는 나무의 잎에 새긴 경문이 있으며, 동위의 금도금 불상, 명나라의 동기창이 쓴 ≪금강경≫, 청옹정시대의 목각 용장 등이 있으며 모두 진귀한 보물이다.
천왕전은 영은사의 첫 대전으로 정문을 향해 마주 앉아 있는 분은 미륵부처님이다. 56억 7천만 년 후의 미래 부처인 미륵불을 사찰 첫 대전으로 모신 이유는 "마음을 정하면 곧 입문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형상도 불쑥 나온 배에 입을 벌리고 웃는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절강성 봉화(奉化)의 스님이었던 포대화상이 원적하면서 자기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고 유언을 남겨 중국 미륵불은 상당수가 이런 형상을 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 "대두능용용천하난용지사(大肚能容容天下难容之事), 개구상소소세간가소지인(开口常笑笑世间可笑之人)" 이란 대련도 생겨났다.
미륵부처의 뒷면 즉 뒷문을 향해 있는 분은 위태보살이다. 남방 증장천왕의 8신장(神將)중의 한분이고 또 4천왕의 32장수 중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위태보살은 통 녹나무로 조각한 것인데, 높이가 2.5미터로 남송 초기에 조성됐다. 위태불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곳은 동, 서, 남 세 곳이다. 마왕이 훔쳐간 부처님의 사리를 빼앗아 오기도 한 위태불은 그래서 사찰의 규정대로 대웅전을 향하여 있다.
대웅전은 단층 3겹 처마의 헐산정(歇山顶) 건축물로 높이가 33.6미터로 북경의 천안문 성루보다 0.1미터가 낮으며 그 규모가 중국 사찰 중에서도 흔치 않다.
대웅전 정 중앙 연화석좌에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24조각의 녹나무로 조립된 부처님의 조각상은 높이가 24.8미터이며 무릎부터 머리까지 순 부처님의 불상만 해도 9.1미터, 귀는 130센티미터나 된다. 몸에는 순금 5천 그램을 도금했는데 이 불상은 1953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원래 있던 불상은 흰 개미가 대웅전 기둥 밑을 파먹으면서 넘어가는 바람에 파손되고 말았다.
부처님 양 옆으로는 호법신인 20제천이 기립해 있고 뒤쪽으로는 "12원각"이 가지런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대웅보전에 12원각의 구조가 있는 사찰은 영은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20미터 높이에 150존 불상을 조각한 이 군조(群雕)는 시멘트가 한줌도 들어가지 않은 순 점토(黏土)로 이루어진 것이다. 불경에 따르면 선재동자(善财童子)가 성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문수보살한테 물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남쪽으로 110개 도시를 다니면서 53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면 즉시 성불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연고로 불교 건축물의 계단은 흔히 53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군조는 하늘 땅 바다 등 3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제일 윗부분의 가운데 바싹 마른 분이 바로 설산에서 고행하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불상(饿佛像)"이다. 그림은 부처님이 원숭이가 바치는 복숭아를 먹고 사슴이 바치는 젖을 먹고 있는 모습인데, 오늘날에도 스님들은 육식은 하지 않아도 우유는 먹을 수 있는 이유라고 한다.
부처님의 바로 밑으로 기린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시는 분은 땅을 대표하는 지장보살이다. 이 지장보살님은 신라 33대 성덕대왕의 아들인 김교각스님이라 한다. 김교각 스님은 열반할 때 연세가 99세였고 등신불로 모셔진 분이다. 이 분의 육신보살은 지금도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 모셔져 있다. 맨 밑층에 고기를 밟고 있는 분은 바다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다. 왼쪽에 합장하고 있는 사람이 이 군조의 주인공인 선재이고 오른쪽에는 용녀이다. 우리 성구에 "금동옥녀"란 말이 있는데 바로 선재와 용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선재가 만난 27번째 명사가 바로 관음이었다.
대웅전 뒤편에는 약사전이 자리를 하고 있다.
화엄전에서 내려와 영은학당을 지나면 5백 나한전이 나온다. 송나라 때 세웠던 5백 나한전은 밭 전자 모양으로 목각이었고 청나라 초기에 새로 중수했으나 민국 25년(1936)에 아쉽게도 화재로 타버렸다. 현재의 나한당은 1999년에 새로 만든 것으로 총 면적은 3166평방미터나 된다. 나한당에 모셔진 500명 나한은 모두 청동으로 주조했는데 높이가 1.7미터이고 인당 무게가 1톤이다.
나한당의 정 중앙에는 불교 4대 명산 동전(铜殿)이 자리잡고 있다. 문수보살을 모시는 오대산, 보현보살을 모시는 아미산,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보타산, 지장보살을 모시는 구화산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들을 대지(大智), 대행(大行), 대비(大悲), 대원(大愿)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