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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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의 지역공동체 건설에 진력

농촌사찰의 새 전형 만드는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

언젠가 불교계 안팎에서는 ‘위대한 사판승’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교계 내부의 각종 사건 사고를 슬기롭게 극복할 ‘위대한 사판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모든 역량을 갖춘 그 ‘위대한 사판승’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현재 조계종단이 안정되면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지만,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2% 부족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위대한 사판승’은 아니지만,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은 현재 종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출가 이래 줄곧 선방에만 있던 수좌 출신이기에 ‘사판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울어져가던 교구본사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어 넣으며 법만스님은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역 없이 사찰도 없다”
법만스님의 사찰운영 철학의 근간은 바로 ‘지역 대중과 함께’이다. 지역 주민의 이해와 참여가 없다면 사찰이 홀로 일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주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이 만세루 개방이었다. 만세루는 선운사 경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만, 그동안 창고처럼 이용될 뿐 사실상 방치되어 왔었다. 먼지와 함께 쌓여있던 짐들을 걷어낸 지금 만세루는 10개가 넘는 차상에 주민들과 참배객들이 앉아 언제든 차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변해 있다.
스님은 정기적으로 주변 마을의 이장단과 부녀회, 청년회 등과도 만남을 갖고 있다. 또 사찰 참배객이 늘어나는 부처님오신날이나 선운문화제 등의 행사에는 꼭 지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해 제공한다. 경제적 이익은 물론 사찰 행사에 하나의 주체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주인의식을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의료서비스가 부족한 농촌 현실을 감안해 동국대 병원과 함께 고창 지역에서 무료 의료봉사도 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선운사가 법만스님 취임 이후 전북지역 최대 규모의 복지시설인 고창종합사회복지관 등 4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령인구가 많은 농촌에서 복지관을 운영하는 것은 포교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역민들을 위해 사찰이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지역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은염’(報恩鹽)으로 유명한 선운사 인근의 소금을 ‘선운사 브랜드’로 판매해 지역민들의 살림에도 보태게 할 생각이다. 이와 같이 스님의 사찰운영의 근간에는 지역주민과 함께 한다는 ‘기본’이 깔려 있다.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학 탐방
이러한 스님의 계획은 ‘선운사와 문학’으로 이어진다. 잘 알려져 있는바와 같이 선운사는 미당 서정주 등을 길러낸 석전 박한영스님의 본사이다. 서정주는 석전을 ‘스승 중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런 전통을 잇기 위해 선운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법만스님은 지역주민 100여 명과 함께 타지의 문학관 탐방을 다녀왔다. ‘탐방단’에는 40대 초반의 청년회장부터 이장, 새마을지도자, 여든이 넘은 동네 어르신까지 포함됐다. 탐방단은 강원도 원주 박경리문학공원, 설악산 백담사 만해마을, 경기도 양평 소나기마을을 거쳐 미당 서정주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 서울 동국대 도서관까지 둘러봤다.
스님은 판공비 등을 모은 사비로 지난 5월 전주의 최명희문학관 등 전북 지역 문학관 4곳을 둘러보는 첫 번째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법만스님은 “미당시문학관을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선운사와 하나의 문화 벨트로 묶어야 지역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님은 “매년 선운사에서 개최하는 선운문화제의 내년 행사도 ‘선운사의 역사와 문학’을 주제로 꾸며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노후 걱정 없는 시스템 구축”
법만스님이 요즘 진력하고 있는 것은 바로 노후수행관 건립이다. 법만스님은 “스님들은 젊어서는 포교와 수행활동을 왕성하게 하지만 정작 노후 대책은 별로 없다”며 “그래서 스님들이 노후를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주지를 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지적했다. 즉, 스님으로서 수행과 포교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노후수행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법만스님은 선운사 인근 석상마을부지 약 3000여 평을 매입해 작은 집을 17~18채 정도 지어 한 채당 2-3명씩, 총 40-50명 정도의 스님이 지내도록 하는 공사를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입주 대상은 65세 이상의 선운사 재적 스님이 우선이지만, 일부 다른 교구 스님도 필요성이 인정되면 입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법만스님은 “노후가 보장된다면 불필요한 악습도 사라질 수 있다. ‘수행 연금’ 명목으로 소정의 용돈도 지급하고 원로스님들이 텃밭과 차밭을 돌보며 안정적인 노후를 지낼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후수행관에는 텃밭과 야생 녹차밭이 있어 ‘반농반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조계종단에서 승려노후복지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상 선운사가 처음이다. 법만스님은 “내년 상반기에는 수행관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법만스님은 “주지 부임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취임사를 머리맡에 두고 잠에 든다”고 한다. 초심(初心)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스님은 2년 전 주지에 취임하면서 “원융살림으로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숨 쉬는 수행, 교화도량으로 선운사를 가꾸겠다”며 “이를 위해 △수련법회 실시 △불교교양대학 설립 △지역민과 교류확대 △스님들의 노후복지 대책 수립 등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운 불교문화 대학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니 공약이 점차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왕삼매론>에 ‘일이 잘 될 때일수록 항상 경계하라’는 말씀을 늘 새기고 있다”는 법만스님은 수행이 어떻고 마음공부가 어떻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찰과 불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통해 불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법만스님을 보는 불자들과 국민들의 눈에는 기대와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발문>
“<보왕삼매론>에 ‘일이 잘 될 때일수록 항상 경계하라’는 말씀을 늘 새기고 있다”는 법만스님은 수행이 어떻고 마음공부가 어떻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찰과 불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통해 불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9월 19일 열린 선운문화제에서 법만스님이 보은염 이운 행렬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