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 한국기자협회 감사, BBS 기자
파급효과 큰 교육 관련기사…기자실 엠바고 가장 많아
교육부 출입기자 시절 이야기다. 기자실에는 흰색 칠판이 있는데, 통상 5~6개의 엠바고 기사 리스트가 적혀있다. 어떤 시기는 10개 이상 되기도 한다. 사회 부처 출입 경험을 비춰보면, 엠바고(embargo), 즉 한시적 보도금지가 가장 많은 곳이 교육부가 아닌가 싶다.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한데다 정책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1개 언론사가 독점 보도하는 것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특종(特種)이나 단독보도(單獨報道)가 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사의 파급력에 비해 다른 기자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엠바고 관행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취재 편의주의와 취재대상 봐주기라는 지적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계 내부에서도 지속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 관련 엠바고는 대부분 뉴스가치가 높기 때문에 발표가 전문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미리 취재원와 기자단간에 의견교환 또는 합의에 따라 한시적 보도금지를 지키는 것이다.
세월이 녹여주는 엠바고 파기의 추억
한 달 전 90년 대 중반 교육부 출입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지금은 모 교육청 부교육감으로 재직 중인 당시 공보관과 기자들이 모처럼 반가운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대부분 논설위원 내지 부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어떤 분은 청와대 등 정부 요직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덧 15년 쌓인 인연이니 만큼 세월 무게를 느끼게 하는 흰머리에 인생의 가을이 깊어 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엠바고에 얽힌 얘기들이 오갔다. 물론 엠바고 파기(破棄)가 제일 화두다. 엠바고 파기는 단독 취재기사도 아니고, 기자단 합의하에 정해진 보도시점 보다 앞서 기사화하는 것을 말한다. 기자단 신사규칙(紳士規則)을 어기는 셈이다. 그런데 당사자 얘기를 들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엠바고 파기를 하지 않았고 단독 취재의 부분이 많다는 주장이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핑계가 있다더니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파기행위가 나타나면 기자실은 초긴장이다. 파급정도를 보면 기사내용의 대사회적 파급 보다는 기자실 내부 파급정도가 더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긴장과 갈등도 세월 앞에서는 부처님 법문이다. 그동안 소리 없이 흐른 세월은 당시의 긴장을 녹였다. 당사자나 피해자나 파기의 기억을 추억으로 떠올리며 서로 웃는 낯으로 정을 나누고 건강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세월이 갖는 효험을 새삼 느끼게 한다.
2008년 수능 시험성적 공개 파문…12월 말까지 대책 나올 듯
엠바고 파기 내지 독점 보도(scoop)와 관련해 최근 ㅈ일보의 수능성적 공개가 논란이 되고 있다. 2009학년도, 즉 지난해 치러진 수능성적을 공개했다. 10월 중순 약 1주일가량 잇따라 특종기사를 실었는데, 기자실 논란을 넘어 국정감사 도중 여야 간 쟁점(爭點)이 되었다. 여당은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야당은 자료공개가 위법일 뿐 아니라 학교서열화만 부추긴다며 비판했다.
여기에다 학부모-시민단체들도 공방전에 가세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학교선택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 단체와 교육시민단체, 그리고 전교조 등은 학교 줄세우기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논란이 확대되자 교육부도 올 연말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먼저 태스크 포스 팀(Task Force Team)을 구성해 학력 격차의 원인을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나타난 학력차이가 사교육(私敎育) 때문인지 아니면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차이 때문인지 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뒤떨어지는 고교에 대해서는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우수 교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태도도 보였다. 또 고교평준화가 35년간 실시되는 동안 뒤처진 학교와 학생들을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정부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그런데, 현행 수능 중심의 대입제도 기본 골격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고교별 지원책은 발표되지 않을까 예상되고 있다.
대북 안보 보다 철저한 수능 출제과정
ㅈ일보의 수능성적 보도 파문처럼 교육관련 기사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아무래도 대입제도 관련기사다. 이처럼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시험 관리도 웬만한 국가보안사항 보다 철저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물론 공정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우선 출제위원들은 위촉 과정부터 비밀리에 진행된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자신이 출제위원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안 된다. 또 출제기간 합숙생활을 해야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까 나올 수 있는 말인데, 90년대에는 워커힐 호텔 옆 한강호텔에서 출제 작업이 진행됐다. 요즘에는 경기도 모 콘도미니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말이 합숙이지 감금생활이나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는 물론 이메일과 팩스 등을 사용할 수 없다. 휴지조각 하나도 출제위원이 사용한 것이면 반출이 금지된다. 심지어 출제기간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 정도면 안거기간 수행생활과 비유될 듯하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는 경찰이나 보안요원이 동행하는 조건으로 겨우 외출이 허락된다고 한다.
개천의 용이 사라지는 대입제도…희망의 빛을 보는 시험이 되길
11월 12일 수능시험은 끝난다. 출제위원도 해방된다. 그러나 대입전형은 지난달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벌써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다음달 9일 수능성적이 발표되면 곧장 정시모집에 들어가고 내년 2월 말까지 입시 일정이 계속된다. 교육부 기자실은 수능 당일 촌각을 다툴 정도로 정말이지 엄청 바쁘다. 그리고 4년제 대학 마감 시점에서 박스기사를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올 대입 취재와 기사작성도 회향된다.
그런데 요즘은 수시모집만 보더라도 1명이 4~5개 대학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다. 전형료도 만만치 않다. 최소한 20만 원 이상 든다. 불합격하면 일부를 환급해 준다고 하지만 서민 학부모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교육 실태를 보면 충격적이다. 2008년 사교육 전체 규모가 20조 9천억 원, 1인당 월평균 23만 3천원이라는 통계청 자료다. 이같은 액수는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비에 육박하는 규모다.
사교육비의 바탕에는 부모의 교육열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앞서 2008년 수능시험 성적공개에서 나타났듯이 갈수록 교육 부문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富益富 貧益貧 現狀)이 심화되고 있다. 부잣집 출신이라고 공부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대부분 고액 과외로 인한 학력 신장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서울대 신입생 10명 중 약 7명이 과외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행인 것은 졸업생 성적은 입시과외 등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지역균형선발 출신 학생들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스스로 자율학습에 따른 희망을 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빛은 약하게 보인다. 하지만 소중한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