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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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공학에서 바라본 번뇌란?

현재호
연세대학교 의료공학 박사과정
일산 여래사 신도


1. 번뇌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괴로운 추억, 아픈 기억, 원망, 한탄 등을 번뇌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는 방법을 모릅니다. 우리는 왜 번뇌의 굴레 속에서 망상(妄想 : 이치에 어긋나는 헛된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일까요?
우리가 살면서 근본根本을 모르면 실수를 하게 됩니다. 예의범절을 몰라도 실수를 하고, 어떤 원리 또는 법칙을 몰라도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렇듯 근본을 모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우리는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통하여 근본을 알고자 함이며, 공부를 통하여 실수를 줄이고자 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발끈하고, 과거의 어떤 일이 생각나면 가슴이 뛰도록 열 받는 것은 왜 일까요? 잊어버린 듯해도 생각나는 즉시 당시의 화가 그대로 재현되는 그것. 그것을 우리는 흔히 번뇌라고 합니다.
2. 즐거움, 기쁨도 번뇌
행복감, 기쁨, 즐거움도 번뇌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은 즐겁고 기쁜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즐거운 일은 언제나 환영이고, 그렇지 않은 일은 언제나 싫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대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속담은 사람들의 행태를 풍자한 것이지 그렇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달아도, 써도 똑 같은 음식인 것입니다. 그것을 삼킬 것인지, 뱉을 것인지는 다른 이유에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달아서 삼키고, 써서 뱉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달다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쓰다는 것은 고통이겠습니다. 즐거움만 지향하고 고통은 싫어하는 우리네 삶의 방식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담박에 알아채야 합니다.
우환을 모르고 살면 옳게 못 죽는다 -맹자-
맹자는 ‘우환, 역경과 친구되는 법을 배우라고, 그리하면 노후가 평온하고, 죽음 또한 달갑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맹자는 ‘하늘은 우리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하여 적당히 육체적인 수고로움을, 배고픔을, 고통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을 해쳐나갈 때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즐거움만 찾는 과정에서 그 반대 격인 수고로움, 배고픔, 고통 등은 더욱 배척하게 된 것이죠. 그 결과 즐거움과 기쁨 또한 번뇌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오로지 내가 싫어하는 것,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번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3. 번뇌의 원리
우리는 육근(六根 : 眼 耳 鼻 舌 身 意)을 통하여 육경(六境 : 色 聲 香 味 觸 法)을 받아들여 육식六識이 정리되며 육식은 뇌의 한 부분인 시상視床을 통하여 대뇌大腦로 전달됩니다. 시상의 역할은 감각기관인 육근의 결과물 육식을 대뇌로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하여 시상에서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상에서 육식의 데이터가 왜곡되어 대뇌로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노릇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아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토대로 그 음식의 맛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먹어보니 모양만 그럴싸했지 도저히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인가요? 경험에 의하여 맛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문을 한 것이죠. 육근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최대한 면밀하게 인식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색(色 : 모양)을 통하여 얻어진 안식眼識만의 결과를 경험에 비추어 나머지 오식(五識 :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의 정보는 버려졌거나 관심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시상은 무슨 근거로 오식의 정보를 무시하고 대뇌로 전달하지 않았을까요? 경험적 사례(맛있을 것이라는 추측)와 흥분(맛있을 것이라는 지배적 생각 또는 배고픔, 빨리 먹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결국, 사고思考를 흐트러트려놓은 주범은 흥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의 원리입니다.
4. 번뇌의 실체
번뇌란, 대상의 실체實體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쯤 우리는 번뇌의 실체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번뇌 = 괴로워할 번煩 + 괴로워할 뇌惱
한자의 뜻에서 말하듯 번뇌는 괴로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괴로워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아니 무엇인가요?  ……… 나인가요?
아닙니다. 뇌입니다. 나 자신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괴로운 것입니다. 뇌가 괴롭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뇌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어떤 이유가 바로 번뇌라는 것이죠. 뇌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뇌가 일을 그르치게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됨은 당연한 노릇입니다.
슬픔과 괴로움, 원망 그리고 아픈 추억을 번뇌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감정으로 인하여 판단이 흐려지거나 감정이 틀어지는 등, 뇌가 정상적 작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번뇌가 정리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기쁨과 즐거움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기쁨과 즐거움 또한 우리의 육식을 망각忘却 시킵니다. 따라서 기쁨과 즐거움도 번뇌라는 것이지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림을 통하여 예를 들어보면 3번 패널을 바라보고 있지만, 번뇌로 인하여 4 또는 5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패널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상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번뇌 때문이죠. 따라서 번뇌라고 일컫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기억, 그러한 상황뿐만 아니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도 당연히 포함 됩니다.
시詩를 하나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詩 일월
 
빼곡히 사람이 많아도
내 님 얼굴만 보이네
내 님 얼굴이 보름달 만하던가
 
수 많은 사람 왁자지껄
내 님의 속삭임만 들리네
내 님의 목소리가 천둥소리던가
 
사랑이 내 눈을 막아 놓았나
내 님이 내 눈에 들어 왔는가
 
사랑이 내 귀를 막아 놓았나
내 님이 내 귀에 들어왔는가
 
사랑에 눈이 뒤집힌다더니
귀도 뒤집혔는가
이제는 말도 제대로 못 듣겠네
 
내가 누구인가
내가 그대인가
그대가 나인가
내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내 님이 찾아주려나
사랑이 찾아주려나
 

사랑에 눈이 멀면 이런저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잘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번뇌의 실체이고 비밀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바라며 괴로움은 멀리하려는 마음자세로 인하여 ‘번뇌의 실체는 괴로움’이라고 알게 된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은 동일한 하나의 감정일 뿐입니다. 감정이 강한 사람은 번뇌도 강합니다. 감정이 강하고 정情이 많은 사람들은 기쁨 또는 괴로움도 다소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정이 많은 사람들은 사물의 왜곡 빈도가 높습니다. 때로는 실수를 자주 합니다. 이러한 실수, 이것을 유발시키는 실체가 바로 번뇌입니다.
즐거움도 다스려야 합니다. 즐겁다고 바로 웃을 일이 아니고 슬픔도 다스려서 슬프다고 화내고, 우울해 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감정이라는 이름아래 똑같은 것입니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에 휩싸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사물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며 그 왜곡을 유발하는 것을 번뇌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즐거움만을 찾아다니는 것, 즐거움으로 슬픔을 잊으려는 것, 괴로움을 담배로 잊으려는 것, 그리움을 술로 달래려는 것, 이 모든 것은, 기존의 번뇌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이면적 성향까지 불러일으키는 ‘다중적 번뇌’를 만드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때때로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 우울하니까.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은 사람을 흥분 시킵니다. 그 번뇌가 더욱 사람을 실수로 이끕니다. 돌이킬 수 없는….(그래서 요즘 이혼율이 높은지도 모르지요…. 살다 보니 이제 알아챈 것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에도 흥분세포와 억제세포가 있습니다.(Excitable Cell & Inhibitable Cell) 이 둘은 늘 경쟁하듯 힘을 겨루며 우리 몸의 균형을 맞추어줍니다.(이것을 생리적 항상성이라 부릅니다.) 그렇듯, 우리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억제 하는가? 그 방법을 연마하여야 하며 번뇌의 실체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감(감정)의 경계가 의식을 넘으면 문제를 일으키고
의식의 경계가 오감(감정)을 넘어서면 평온하다      -장자-
번뇌의 실체를 이해하여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발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