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 스님
행복나눔 대중견성공동체 빠리사선원장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결정요인은 뭘까요? 99퍼센트 이상 행불행을 결정하는 결정요인은 뭘까요? 바로 가치관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의아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씹어보고 씹어볼수록 가치관이 내 인생을 좌우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확연해질 겁니다. 지금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깊이 한번 사유해보세요. 그리고 내가 지금 확실한 가치관, 긍정적인 목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깊이 사색해보세요. 그 답이 명료할수록 당신의 삶은 더욱 행복하고 풍성해질 거예요.
우리 집안에 도둑이 든 걸 알고 사는 것이 좋겠어요? 모르고 사는 것이 좋겠어요? 너무나 빤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안에 도둑이 든 사실을 모르고 살아요.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안에 든 도둑이 무슨 짓거리를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내 집에 든 도둑을 잡기 위해 바로 마음공부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난관과 장애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난관과 장애를 만나지 않으면 인간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모든 철학적 사유는 물론 종교도 인간이 한계점에서 맞닥뜨린 어려움과 난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서 종교도 시작되고 철학도 시작되고 인류의 모든 문화문명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만난 난관과 장애를 기뻐하세요. 그건 바로 지금 당신의 행복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요? 지금 당신의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소크라테스는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도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맛보듯이 소중하게 살지 않고 라면 먹듯 게걸스럽게 사는지 모릅니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란 것을 잊지 말아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어린아이들이예요. 어린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묻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갑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아요. 나도 언제든지 을의 삶이 될 수 있어요. 종결자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아요. 삶은 매번 시작이니까요.
사랑은 완전함을 향한 갈망이예요. 그래서 끝이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순간순간의 사랑이 순간순간의 사랑으로 이어져 영원함이 되고 순간순간의 사랑이 순간순간의 사랑으로 쌓여 완전함이 되는 거예요. 인생은 그 사랑의 집적물이지요.
프로야구는 우리나라 국민스포츠예요. 그런데 프로야구장에 가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선수와 물건을 파는 상인들, 그리고 관객들이예요. 이 가운데 누가, 어떤 사람들이, 경기를 가장 잘 이해할까요. 당연히 관객들이예요. 선수들은 이기는 데만 집중하고 상인들은 한 물건이라도 더 팔기 위해 몰두하지만 관객들은 경기를 음미하고 관조하며 경기 자체를 즐기거든요. 삶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내 삶의 관객이 되어 관조하는 마음으로 살 때 내 삶은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우리 삶에서 가치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가치관은 내 삶의 청사진이자 밑거름이기 때문이예요.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갑부가 되고 싶어도 내 안에 돈이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내가 외교관이 되어 국가를 위해 아무리 봉사하고 싶어도 내 안에 외교관이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외교관이 될 수 없어요. 그런 밑그림이 없는데 어떻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런 청사진이 없는데 어떻게 원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겠어요. 내 안에 들어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하루에 한번쯤 고요히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가치관은 신념체계이기도 해요. 과거에 어떤 신념체계를 갖고 살았든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신념체계를 세우고 살면 돼요. 그리고 제대로 된 그 신념체계에 상응하는 삶을 살면 내 인생 ‘이대로 OK’예요. 삶에 사유가 필요한 건 그 때문이예요. 가치관, 즉 신념체계는 사유의 산물이니까요.
사유는 우리의 삶을 구원해주는 가장 빛나는 도구예요. 사유를 하면 할수록 혹시 우리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잘못된 가치관이 저절로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내 안에 도둑질을 해도 괜찮다는 가치관이 들어있다면 사유를 통해 과연 도둑질이 괜찮은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어요. 그러다보면 도둑질을 하면 나는 좋을지 모르나 도둑맞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쓰라릴까를 알게 되고, 또한 내가 도둑질을 백 번 천 번 잘 하다가도 딱 한 번이라도 잡히는 순간엔 쇠고랑을 차고 10년을 감옥살이를 해야 할 텐데, 맞아, 그래서 도둑질을 해선 안 돼, 나나 내 가족이나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도 도둑질을 하면 안 좋겠어 하고 사유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 잡을 수 있지요. 그렇게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기만 하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되지요. 사유의 힘은 그렇게 커요. 날마다 사유하기, 그리고 음미하기, 잊지 마세요.
때로는 사유의 힘만으로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기가 부족할 때도 있어요. 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해선 안에서의 자극도 중요하지만 밖에서 오는 자극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예요. 독서와 강연, 연극, 영화 등 문화생활 전반이 밖으로부터 오는 자극 에너지예요. 그 중에서도 독서와 강연의 자극 에너지가 가장 커요. 독서나 강연회 등에 참석해서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글을 읽다보면 내 생각들이 마구마구 바뀌는 걸 볼 수 있잖아요. ‘아, 그 말 너무너무 좋구나.’ ‘아, 그 내용 너무너무 좋구나.’ 하면서 내 마음 안에 들어 있던 잘못된 가치관들이 계속 걸러지는 한편, 새로운 가치관, 좋은 가치관들이 그 자리를 계속 채우게 되지요. 안으로는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가치관을 정립하고 밖으로는 독서나 강연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가치관을 자극할 때 우리는 더욱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내 삶이 두 겹의 원으로 되어 있다고 쳐요. 그리고 가운데 있는 원을 마음이라 치고 밖의 원을 내 삶이라고 쳐요. 그럼 내 삶을 별처럼 찬란한 삶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가운데 있는 원 안에 북극성 같은 별 하나가 찬란히 반짝이고 있어야 되겠지요. 내 마음 안에 별이 반짝이고 있지 않은 데 내 삶이 별처럼 찬란히 반짝일 순 없으니까요. 그래요. 별처럼 찬란한 삶을 살고 싶으면 오늘부터라도 내 마음 안에 북극성처럼 찬란한 별 하나를 키우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