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에 앞서 도반에게 보낸 편지-혜우스님 혜우덖음차제다연구원장
귀의삼보 하옵고,
또 한 해가 갑니다. 차가운 겨울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걸음이 분주해지고 일상의 모든 것들을 십이월 마지막 달에 매듭지을 것처럼 서두르고 있군요.
이제 긴 겨울이 올 것이고 곧 동안거 결재일인데 올 겨울은 어디 머물 곳을 찾았는지.
만행 길에 만나 새벽 무렵까지 나누던 이야기, 그렇게 많은 일들이 스님의 발길에 채였는지 아직도 남아 가슴 한편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말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살이, 그럴진대 절집이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을는지요.
요즘 일어나고 있는 절집 안 이야기로 저자거리에 발가벗고 있는 듯 얼굴이 화끈 거리는 부끄러움에 거리로 나서 차마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겠다는 말에 헛기침으로 답을 대신하고 찻잔에 차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산중 절집이 세속 가운데 내려와 같이 하려다보니 세속 일들에 익숙하지 못한 처세 때문이라고 핑계 삼아 부끄러움을 감출 수도 있겠지만 어디 세상인심이 그렇습니까?
그것보다도 스님, 마음이 서늘해지고 걷는 걸음이 자꾸 헛헛해지는 것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절집의 법이 아닌 저잣거리의 법에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작은 도랑이라도 흐르는 물길은 아무도 막을 수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물이 다 그곳으로 흐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고요. 물은 도랑으로 실개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세상의 어느 것에도 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모든 절집의 일들이 저잣거리의 법에서 정해진 제도와 흡사하게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다시 저잣거리 법의 잣대로 재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요즘 절집의 법이 되었으니 그 안에서 하는 일들이 저잣거리의 행태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하는 얕은 생각도 들어요. 지금 이렇게 세상일에 얽혀 부끄러운 일이 많아지는 것도 어쩌면 세속의 틀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저잣거리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에서 시작한 것이어서 행위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절 집안의 법이라는 것은 그 근본이 올바른 수행을 위한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잡초를 속아내는 일이 아니라 꽃이 제대로 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속가의 법은 죽을 자리라면 우리 절집의 법은 살 자리라 이것이 바로 사법(死法)과 생법(生法)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의도가, 목적하는 바가 다르면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이렇게 속가의 법과 절집의 법은 얼핏 보면 같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왜면하고 있는 것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한바탕 쓸고 지나간 학력위조 사건도 그렇습니다.
당혹스럽던 이들을 살펴보면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인재들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가 능력을 능력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만 받아드리려 하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요.
자격, 참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스님이 고뇌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수행처라도 이판이야 승과 속이 함께 하는 자리이니 일정한 틀을 갖추어야하겠지만 사판은 좀 다르겠지요. 하지만 이도 시류가 그러해선지 점점 제도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 보이고 있다는 말에는 걱정이 앞을 섭니다.
바야흐로 우리 절집도 속된 말로‘쯩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인가요?
걱정하기에 앞서 스님, 스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천이 전체 승가의 수행에 해가 되는 제도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혹여 편승하지 못한 서운함의 작용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제도에 대한 불합리성을 말하면서 그런 자신은 제도권에 의지하고 있는 어이없는 일들을 빈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승가에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쌓이는 안거 햇수를 밥만 축낸 부끄러움으로 알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 내세울 자랑거리가 되다니. 수행을 경력으로 엮는 우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웃기는 너무 슬픈 이야기가 되겠지요.
수타니파타에 많이 알려진 글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 골라 보았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경이지만 힘이 됩니다.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무리 작은 도랑이라도 흐르는 물길은 아무도 막을 수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물이 다 그곳으로 흐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고요. 물은 도랑으로 실개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세상의 어느 것에도 역하 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그러면서도 물 자신은 전혀 어느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물은 물이지요.
노장들이 늘 말씀하시던‘초심’이 올해처럼 크게 다가오던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 올 동안거에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