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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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정진은 진지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정우(頂宇) 스님ㅣ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선가구감(禪家龜鑑)에 보면「공부를 한고비만 넘긴다면, 한 생각만 정립을 잘한다면 금생에는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 악업에 끄달려서 번뇌와 망상, 갈등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색안경 낀 사람이 자기가 낀 안경색깔에 따라 이러쿵저러쿵 지적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설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더라도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그 사람 눈에 그렇게 비쳤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도 다 번거롭게 느껴지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는 사실들을 인지하게 된 결과일 터입니다. 즉, 중생심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변화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무엇인가에 치우치고 얽매이고 집착하여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치우치고 얽매이고 빠져있는 그것은 본래 집착할 수 없는 것이고 영원할 수 없는 것이며 소유되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참 행복을 밖에서만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목말라 하며 밑도 끝도 없는 고통속에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지쳐가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생각을 한 번 바꿔보십시오. 마음 하나만 본래로 돌려놓으면 진정한 행복은 거기에서 활짝 만개할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저절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기쁨으로 가득찰것이고 행복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 불자들에게 일러주신 가르침입니다.

남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면 그것이 곧 보살의 마음이고 진정한 행복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에는 어떠한 환경이나 풍토, 그리고 변화가 오더라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바로 본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내 마음자리인 것입니다. 그 마음자리는 언제나 맑고 깨끗하고 향기롭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마음을 찾는 것이 수행(修行)이고 정진(精進)이며 청법(請法)이고 참회(懺悔)입니다.

지난여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대한 소나무군락지를 자랑하는 통도사 주변의 자연환경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잡목제거 등 대대적인 소나무군락지 정비불사를 했었습니다. 그 불사를 하면서 괜찮은 소나무는 닥치는 대로 베어갔던 일제시대 잔혹한 산림수난의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나무를 지켜냈던 어른스님들의 높은 예지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4개월간의 공사기간 내내 60년대 후반 통도사 주지를 지냈던 청하스님이 후학들을 위해 써놓은「살림(山林)살이」라는 글귀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베트남의 고승 틱낫한 스님이 쓴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대가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 그것은 지구 전체에 물을 주는 것이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 지어져 있다. 우리는 무수한 시간동안 함께 존재해온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다.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우리는 병을 얻게 된다. 많은 사람
들이 땅으로부터 높이 솟아있는 아파트, 빌딩,상가 안에서 산다. 우리 주변은 온통 시멘트와 금속 같은 단단한 것들뿐이다. 손으로 만져볼 기회조차 없다. 어머니인 땅을 접촉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겨울에 소나무군락지에 눈이 가득 쌓인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눈 하나하나를 따진다면 솜털보다도 가볍습니다. 그러나 그 눈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아름드리나무라 할지라도 그 나무는 결국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강한 것만이 세상을 지배할 줄 알고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글에는 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생각을 한 번 바꿔보십시오. 마음 하나만 본래로 돌려놓으면 진정한 행복은
거기에서 활짝 만개할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저절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고 행복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 불자들에게 일러주신 가르침입니다.


「한 송이의 꽃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것이 꽃이 아닌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리고 시간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속해서 깊이 들여다보면 꽃이 거름이 되어가는 중임을 알게 된다. 만일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꽃이 시들고 썩어갈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거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 꽃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과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꽃과 거름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꽃과 거름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유기비료를 쓰는 정원사는 결코 거름을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다.」6, 70년대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이 글의 내용이 100% 공감이 가지만 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산성비가 내리고 그 산성비를 맞은 잎과 꽃이 땅에 떨어져도 쉽게 썩지를 않습니다. 산성비로 인해 나뭇잎에 변이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미생물이나 작은 입자의 생명체라 할지라도 세상은 이처럼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인간들도 그 나무와 같은 처지라 할 것 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무색이었는데 중생들이 어느 쪽으로 환경과 기후와 풍토와 어울림을 갖느냐에 따라서 변화되어 간 것입니다. 진짜 마음은 변덕도 안 부리고 분별도 하지 않고 시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 없는 마음이 참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불자라고 한다면 스스로 얽어맨 마음의 매듭을 풀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참된 자아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나를 말합니다. 그러나 중생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참된 자아로부터 이탈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는 방황과 갈등과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소중한 자신의 삶을 소진하고 있고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부터 괘도수정을 해서 점점 본래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우리는 수행, 정진, 참법, 참회, 바라밀, 보살행 등 다양한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사람들은 스스로의 강박관념 속에서 불안과 초조를 느껴 정신적 장애를 많이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 마음만 찾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살아왔는데 앞으로 사는 것 무엇이 그렇게 걱정입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무엇을 그렇게 염려합니까. 참 마음만 찾으면 되는 것을. 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괘도수정 해서 바로잡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뜬구름 같은 이름을 탐하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짓이고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탐·진·치 삼독으로 일어나는 업의 불에 섶을 보태는 격」이라고 했습니다. 불교는 인생과 둘이 아닙니다. 인생 속에 불교가 있고 불교 속에 인생이 있는 생활불교인들의 모습이라면 어찌 부처님의 법이 우리들

진지하게 살면 확실히 변화할 수 있고 변화되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수행정진은 결국 진지한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우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행정진은 거북이 같은 걸음일지라도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 살고 있는 이 세간을 떠나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도와서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가 서로를 챙길 때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등 업력에 의해서 윤회하고 있는 육도의 세계를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으로 끊임없이 변이되어가
면서 유전하고 있는 업연은 사라진다.」고 능가경(楞伽經)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울에 먼지나 때가 끼면 뭘 보고자 해도 볼수가 없습니다. 그 습기나 먼지를 제거하지 않고는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중생의 마음에도 번뇌와 망상의 때가 끼면 내 법신인 마음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마치 더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자기 앞의 유리에 수증기가 덮여서 자신이 보이지 않자 거울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나 어디 갔나?」하고 두리번거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할 것입니다.

열반하신 월하 큰스님께서도「그 일을 하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다 보이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요즘사람들 참 희한하다.」는 말로 후학들을 경책하시곤 했습니다.
따라서 지혜가 있는 사람은 통찰력 있는 사람이고 방편심을 들어내게 하는 사람은 보리심을 열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수행정진을 통해서 얻어지는 보리심과 지혜는 짧은 시간의 기도나 정진이나 이런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과 정진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진지한 삶의 노력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아갈 때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살면 확실히 변화할 수 있고 변화되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수행정진은 결국 진지한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우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행정진은 거북이 같은 걸음일지라도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