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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사람과 그리운 사람 |
허세욱 시인, 수필가, 외대 초빙교수
올 해 들어 문상 길이 부쩍 늘었다. 엊그제도 장례식장엘 갔다 왔다. 그 날 귀로는 스산했다. 바람이 소슬하게 스치자 낙엽 몇잎이 다람쥐처럼 흘깃거리며 길가로 비켜선다. 그것들을 따라 눈길을 옮기면 머리는 차근했다. 차근하기 보다 냉담했다. 텅- 비인 머리 끝으로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는다.
수십년을 두고 정기적으로 만났던 친구와의 결별이었다. 봄에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대학 동기생이 갔고, 초여름엔 문단의 어른 한분이 가셨다. 한여름엔 어쩌다 만나는 동창이 갔고, 늦여름엔 만날 때마다 시끌짝했던 문인이 갔다. 망자와 식장은 서로 달라도 문상하는 절차와 빈소의 분위기는 비슷했다.
예식장 입구에서 빈소의 번호를 먼저 확인한 뒤, 대개 다락을 내려갔다. 빈소의 입구에서 이름을 쓰고 봉투를 내고, 그리고 분향 하거나 헌화 하고 재배커나 경례한 뒤, 마지막으로 상제들과 맞절하고 우물우물 위로 몇마디를 남기고, 고개를 떨군 채 침통한 낯빛으로 빈소의 사방 벽은 물론 입구와 통로까지 빽빽히 도열한 조화의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동안 나의 동작은 거의 기계처럼 작동하다가 흡사 무슨 절차를 밟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망자와의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면서 그이의 명복을 빌기는 커녕 절차에 따라서 한 코스를 밟은 뒤 그 자리를 뒷사람에게 넘기는 거기서도 약간의 스트레스가 따랐다. 그래서 빈소의 입구에 뒤돌아와선 때로 홀가분도 했다. 절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개는 상제의 접대를 받느라 따로 부속된 응접실로 안내되기 마련이었다. 거기서 다과나 술 대접을 받으며 회포를 나누지만 상제는 파티에서의 호스트처럼 바빴다. 모든 상가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더러 낯이 넓은 상제에겐 화환이 쇄도했다. 그것들을 도열 할터가 없을 때 꽃은 버리고 증여자의 신분과 이름을 적은 리본만이 덕장에 매단 황태처럼 줄줄이 묶어 놓은 곳도 있었다. 그 하얀 헝겊에 적힌 관작과 명함을 보노라면 한 세상 관가에서 내로라한 세도들이 경합을 벌인 느낌이다.
우리가 무작정 상경하면서 서울에다 서울 세멘바닥에다 둥지를 틀고, 죽어라고 돈을 벌 때만 해도 한 마을에 뉘집 초상이 나면 온 마을이 울음바다였다. 더러 재를 넘고 강을 건너 문상을 가면 우선 빈소에서 콧물이 나오도록 곡을 했고, 싸늘한 짚 방석에 앉아 가물거리는 촛불을 보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서로 나누면서 처연한 밤을 뜬 눈으로 새기도 했다. 속도는 이렇게 달랐다. 아니 지금도 모든 사람이 장례식장에 모시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초가집 추녀 끝에서 망인의 혼을 부르는 장례가 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모실지라도 층차는 여러 갈래였다. 그런 층차, 그런 환경속에 비록 우리들의 가슴이 움츠러질지라도 장례식장 그 자체가 신분이었다.
옛날 2,30년 전 철없는 사람들이 부의 척도를 아파트의 평수에 두었던 것처럼 사람이 죽어서도 장례식장의 종류와 넓이로부터 조화, 조의의 다소를 갖고 장례의 성패를 가름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한 기틀과 그러한 절차가 내게는 눈물로 꽁꽁 숨게 했고, 내 가슴을 허깨비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그럴 턱이 없었다. 이른 아침 < 아침마당> 을 보다가도 흐물흐물 한 가슴으로 비죽비죽 눈가를 훔치는 것으로 눈물의 샘이 마른 것은 아니며 여기 국화의 터널 속에서도 가끔 곡성이 들렸던 것으로 모두가 말라비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적, 사랑방에서 어른들께 들은 얘기가 있었다. 사람은 물과 불, 그러니까 수화(水火)로 사느니라고. 그 때는 아리송했다. 물이 소화기라면 불은 순환기였다. 암 그렇지! 물은 죽죽 잘 내려가고 불이 활활 타오르면 건강은 문제가 없었다. 물과 불이 형이하라면 그에 상당한 형이상이 있을 법 했다. 그것은 정감과 이지였다. 정감은 축축한 물이라서 아래로 흐르는 천성을 가졌으며 이지는 화끈거리는 불이라서 위로 연소되는 질성을 보이고 있다.
그 두가지는 우리 육체나 덕성을 위해 절대 필요했고 균형을 지녀야 했다. 물이 많으면 부드럽지만 넘치기 쉽고 불이 세차면 깨끗하지만 남는 게 없다. 정이 넘치면 다정하지만 때로는 몹쓸놈의 욕정이나 비정을 불러들이고, 이지가 외곬으로 탄탄하면 자신이 붙지만 때로는 냄새스럽게 교만과 냉철이 따른다. 그래서 물도 넉넉하고 불도 화끈거리는 체질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소화기가 튼튼한 사람은 대체로 텁텁했다. 둥글게 살다보면 살이 올랐고 살이 오를 수록 순환기가 부분적으로 막히거나 혈압이 높았다. 순환기가 야무진 사람은 대체로 똑똑했다. 꼬박꼬박 살다보면 파리했고 파리할 수록 소화기가 망가지면서 핏기가 없었다. 물론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둥글둥글 하면서도 심장이 잘 뛰었고, 갈비씨이면서도 밥통이 단단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또 사람의 체형과 체질도 물과 불, 두가지로만 가닥을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무궁하고 광대무변한 천지를 음양이란 원리로 갈래하듯 사람도 수화 (水火)로 갈래해봄직하다. 물이 많은 사람은 사람 냄새가 짙어서 그래서 사람을 그립게 하고 불이 많은 사람은 슬기와 말을 남겼기에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라 불리고 있다.
금년 들어 빈소에 갈 때마다 뜨거운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한 것은 장례식장이라는 현대 환경 탓도 있지만 망인이나 나 사이에 모두 물기가 모자랐던 것이다. 언젠가 훌쩍 세상을 떠날 때, 훌륭한 사람으로 남기 어렵겠지만 차라리 그리운 사람으로 누구의 가슴에 한동안 남아 있길 바라고 있다. 이 저무는 세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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