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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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 없어라!


--- (3절 생략) ---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 들어도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이 노랫말은 양주동 선생이 지은 것으로 대부분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불교는 '효(孝)'를 소홀히 하는 종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출가(出家)'의 겉모습만을 보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다. 쌀밥과 고깃국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만이 효도는 아니다. 불교는 부모님을 '생사(生死)'의 고통에서 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효라고 한다. 따라서 출가는 부모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도(成道) 후, 부모님과 아내와 아들, 그리고 석가족 사람들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설법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버지 정반왕의 장례에도 참석하여, 손수 운구를 하려고까지 한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직접 운구는 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부처님의 애틋한 효와 사랑을 보여주는 좋은 일화라고 생각된다.

효의 관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회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어왔지만, 특히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인간윤리의 핵심적인 덕목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유교적 윤리는 살아계신 부모님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에게도 지극한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문화가 생활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유입과 함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동안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효의 관념은 점점 약화된다. 특히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제례는 더욱 간소화되고 있고, 기독교 문화의 영향과 더불어 생략되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변화와 인구정책으로 인해 여성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모시는 경우도 있고, 형제끼리 번갈아가면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인터넷 제사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변하고 주말여행, 바캉스, 해외여행 등이 늘면서 콘도라든가 호텔 등에서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가끔 텔레비전 등에서도 보도되고 있듯이, 요즈음은 맞춤 제수의 수요가 늘면서 그 업체도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의식도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인간 교육이 핵심이 되어야 할 교육은 오직 입시만을 위한 입시교육으로 전략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추세라면 제사문화는 얼마 안 있어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제사는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며 효를 계속하기 위해 행하는 것으로, 제사를 통해 옛날 일과 선조의 일을 돌이켜 봄으로써 자신들이 존재하게 된 근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속도 지향의 생활문화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너나없이 바쁘다. 이러한 속도와 바쁨 속에서는 자신의 '근원'과 '근본'을 돌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자신의 근본을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되어버렸다. 현대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기계'의 메커니즘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핫'한 집단보다 '쿨'한 개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개인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에 기계에 매달린 인간은 슬프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불교의 연기법을 운위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삶은 관계를 조건으로 한다. 인간과의 관계든 자연과의 관계든, 이 관계가 따뜻하고 원만해질 때 인간은 비로소 즐겁고 행복해질 수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는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가 복원되지 않는 한 현대인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효는 의무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효가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 부모님과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언제나 안정되게 하고 편안하게 한다. 부모님과 함께 고향집 따뜻한 온돌방에 밤을 지새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얼마나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 지를. 그러기 때문에 제사를 모실 때는 모시는 동안만이라도 조상님과 부모님이 바로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조상님과의 종적·시간적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것은 소외감에서 벗어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활에 쫒기며 자주 만나지 못하는 형제자매 및 일가친척들과 만남으로써 횡적·공간적 유대를 확인하며 우애를 다져 따뜻한 활력과 자신감으로 새로운 생활에 임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제사는 자손들에게도 적지 않은 교육효과가 기대되므로 어린이들도 가급적 제사에 참석시키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조상님과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대표적인 제사가 기제사인데, 기제사의 대상은 시대에 따라 가정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고려 때는 3품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 6품 이상은 조부모까지 2대, 7품관 이하 서민들은 부모까지만 제사 지내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 의하면, 3품관 이상은 고조부까지 4대 봉사, 6품관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 봉사,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하고, 일반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 지내도 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사라지면서 모두가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는 4대 봉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제사를 모셔도 되지 않을까 싶다.(문화재청, 『명절 차례와 제사』, 2006)

제사 지내는 방식과 절차 등은 『주자가례』『국조오례의』『가례집람』『사례편람』등의 여러 문헌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인 것만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진설[상차림]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밥은 서쪽, 국은 동쪽에 놓는다. 지방을 기준으로 볼 때 밥은 오른쪽, 국은 왼쪽이 되어 산 사람과 반대의 위치다(반서갱동).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어동육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동두서미). 과일은 대추, 밤, 배, 감 네 가지를 기본으로 하여 계절에 따라 적절히 보탠다. 대체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홍동백서). 대추, 밤, 배, 감(조율이시)의 순서 또는 대추, 밤, 감, 배(조율시이)의 순서로 놓는다.

다음으로 지방과 축문에 관한 사항이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요즈음은 지방과 축문을 한글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한글 지방은 기존의 한자 대신 '할아버님 신위' '할머님 안동김씨 신위' '아버님 신위' '어머님 안동김씨 신위' 등으로 쓰면 될 것이다. 축문은 너무 격식을 따질 필요 없이 자유롭게 써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은 한글 축문의 일례이다.


ㅇㅇ해 ㅇㅇ날, ㅇㅇㅇ[종자 또는 종선의 이름]의 아버님[또는 어머님] 기일입니다. 저희 자손들은 늘 아버님 은덕을 생각하옵고, 이 날을 맞아 추모의 뜻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정성을 담은 음식을 마련해 올립니다. 지금 이 자리에 ㅇㅇ는 어떠어떠한 일로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누구는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누구누구는 딸을 낳았습니다(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씀). 좋은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으나 아버님(의 혼령)께서는 저희 자손을 늘 음우(陰佑)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마음을 푹 놓으시고 저희 자손들을 굽어보시며 흠향하옵소서.
(이이화, 『역사풍속기행』중에서)


다음에는 제사 절차이다. 제사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강신 : 제주가 분향하고 모사에 술을 부은 다음, 제관 일동은 두 번 절함.
(2) 초헌 : 고인에게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절차. 집안의 종손이나 장남이 행함.
(3) 독축 : 초헌 후에 제관 일동이 부복한 다음, 축관이 축을 읽음.
(4) 아헌 : 초헌과 같은 방법으로 잔을 올린 후 두 번 절함. 돌아가면서 행함.
(5) 종헌 : 아헌과 동일함.
(6) 삽시 : 숟가락을 밥에 꽂고 제관 일동은 부복.
(7) 헌다 : 숭늉 혹은 냉수를 국과 바꾸어 놓고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씩 세 번 떠서 물그릇에 만 다음, 숟가락과 젓가락을 물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음.
(8) 사신 : 제사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관 일동은 일제히 두 번 절함.
(9) 철상 : 지방을 거두어 축문과 함께 불사르고 제사상을 물림.
(10) 음복 :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음. 음복을 함으로써 조상님들의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음.
끝으로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첫 새벽인 자시(子時 : 밤 11시~새벽 1시 사이)에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초저녁에 지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명절차례와 제사』중에서)


이러한 제사 방식은 물론 유교적 전통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교인들의 가정에서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교식 제사법'이 정립되지 않아  혼란스런 면이 있다. 불교식 제사법은 그동안 대한불교조계종포교사단(『불교의식의 이해와 바람직한 집전 방법』), 대한불교진각종(『법요의례』), 불광사 불광법회(『광명의 나라』), 正覺(『한국의 불교의례』), 김길원(『불자예절과 의식』), 김근수(『현대불자가례』), 노희순(「조상에 대한 감사의식을 가족법회로 모시자」) 등, 여러 단체와 개인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지면 관계상 상세한 내용은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대한불교조계종포교사단'이 제시하고 있는 차례 식순과 기본원칙 및 발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차례 식순이다.
차례는, (1)거불-(2)청혼-(3)공양-(4)묵념-(5)보공양진언-(6)광명진언-(7)찬불가[극락왕생하소서]-(8)발원-(9)음복 순이다.
다음은 제례의 기본 원칙이다.


병풍이 있으면 사용한다. 병풍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낸다. 위패와 사진을 잘 모시고 음식을 진설한다.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 순으로 준비하되, 나물과 과일을 기본으로 한다. 떡, 나물, 전, 송편, 떡국, 과일 등을 준비하며, 불교적인 차례상은 좌우에 국화 등 현란하지 않은 꽃으로 장엄을 한다. 잔을 올리는 것은 녹차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차례상 첫줄은 과일과 과자, 둘째 줄은 나물류와 식혜, 셋째 줄은 채소와 탕류, 넷째 줄은 전과 송편과 차, 다섯 번째 줄은 반[메], 갱[국] 등의 순으로 진설한다.
다음은 발원문이다.


오늘 저희들이 올린 공양을 받으시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으시어 아미타부처님의 국토, 극락세계에 태어나시어 저희 후손들이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올바른 삶을 영위하여 깨달음을 얻는 길로 가도록 이끌어 주시기 발원하옵니다.


이제는 불교종단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불교의 여러 단체들과 함께 통일된 제사법을 마련하여야 할 때이다. 그래야 불교식 제사법이 빠른 시간 안에 더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사는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 시대, 개인주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제사문화를 시대상황에 맞게  더욱 합리적이고도 불교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발문>
불교종단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불교의 여러 단체들과 함께 통일된 제사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불교식 제사법이 빠른 시간 안에 더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사는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 시대, 개인주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제사문화를 시대상황에 맞게  더욱 합리적이고도 불교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