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 보
    불교적 역활 1
    불교적 역활 2
    불교적 역활 3
    특별기고
    지상법문
    반야샘터
    무소유의 삶
    절문밖 풍경소리
    깨달음을 주는 영화
    붓다 칼럼
    선지식을 찾아서
    즐거움을 뿌려라
    취재현장에서 본 불교
    건강한 생활
    입시광장

과월호보기

다문화 가정, 우리의 생활문화다
임연태
시인, 현대불교 논설위원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그 발전의 빠르기만큼이나 많은 사회적인 문제도 떠안아야 했다. 도시지향적인 생활 패턴과 출세지향의 열기, 화이트칼라에 대한 동경과 3D업종에 대한 기피현상, 핵가족의 빠른 진행과 가정의 파괴, 입시 위주의 교육과 공교육의 붕괴, 정경유착의 관행에서 파생하는 각종 비리사건들. 안보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의 확산과 그로인한 대형사고의 속출.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에 대한 국민의 의식수준이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과 생활양상의 변화 속도가 거기 적응하는 국민의 생활수준과 문화의식에 비해 훨씬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 기술만능의 풍조를 전통가치와 결합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정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이 우리민족 특유의 집중력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임에 틀림없다. 적극성과 긍정의 힘이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켰다. 우리민족의 혈맥에 흐르는 ‘신바람’의 에너지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가속을 더해가는 사회변화의 이면에는 새로운 문화와 풍습이 자라난다. 그 새로운 유형의 풍습은 기존의 가치들과 적지 않은 갈등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생활문화는 기술이 발달하는 것처럼 자고나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로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문화 가정도 오늘날 한국사회가 필연적으로 포용해야 할 생활문화의 한 양상이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이 오랜 세월동안 ‘단일민족’ ‘백의민족의 자긍심’ 등을 교육받아온 세대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적인 상황의 변화가 속도를 내면 당황하고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불협화음이 속출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16만 가구 정도로 추산되고 그 가정의 자녀들은 6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만족도는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수치상으로 볼 때  다문화 가정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가정이 아니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역시 ‘다른 아이’여서는 안 된다. 함께 교육받고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다.
농촌에서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는 총각은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어 결혼조차 어려운 현실이 다문화 가정을 확산시키지 않았는가? 3D 업종에 대한 기피가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면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의 대거 유입을 현실화 시킨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개인에게 개인의 업보가 있듯이 사회에는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공업(共業)이 있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가 다문화 가정을 우리의 생활문화로 만든 이상 편견과 차별은 용납 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업보다.
다문화 가정이 갖는 여러 취약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국가 차원에서도 시행되고 지자체나 종교 복지단체들에서도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머지않아 다문화 가정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생활 문화의 한 단면으로 정착되도록 할 것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기존의 가치관은 글로벌 시대로의 변화 앞에서 그 개념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속의 한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속의 세계를 먼저 보듬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끔 찾아가는 강원도의 한 사찰의 공양간은 외국인 새댁이 맡고 있다. 불교국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그녀는 농사일이 많지 않은 시댁의 형편상 일을 해야 했고 공양주가 귀해진 사찰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을 줄 알면서도 그녀를 받아들였다.
가장먼저 말을 가르치며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다행히 새댁이 눈썰미가 있고 영리하여 서너 달 만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절집의 공양주가 어떤 자리인가? 음식 솜씨는 기본이고 각종 제사와 불공에 맞춰 공양물을 준비해야 하므로 절밥깨나 먹은 노보살님들에게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걸 외국인 새댁이 하려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그녀도 포기하지 않았고 스님들도 인내하며 차근차근 가르쳤다. 어느새 그녀가 강원도 산골로 시집오고 사찰의 공양주를 맡은 지 3년이 되었다. 물론 그녀는 어느 정도 숙달된 공양주가 되었다. 그녀의 시댁 식구들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다가 점점 절집과 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 지내고 있다.
우리사회에 있어 다문화 가정은 필연이다. 그 필연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서로가 이해하고 자연스러운 이웃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함께 마주보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외국인 새댁이 공양주의 경지에 오르는데 3년이 걸렸다.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그 시간의 노력과 인내가 그 가정의 주춧돌이 되었을 것이다. 
‘의형제’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도망간 외국인 아내를 추적해 잡아다 주고 돈을 챙기는 일을 한다. 한 때 다문화 가정의 형성이 상업논리에 의해 구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매매결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국제결혼이 갖는 취약점을 악용한 상사꾼들 때문에 농촌총각들이 두 번 세 번 울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다문화 가정의 현주소는 결코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다른 환경과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세상을 그만큼 더 넓게 만드는 일이다. 부처님이 그 오랜 계급주의(카스트)를 부정하고 인간평등을 선언한 것은 모든 중생이 똑같은 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차별의 눈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