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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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적 심리 극명하게 반추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실미도는 지난 2003년 개봉돼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이 영화는 1971년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는 데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영화적인 재미도 재미지만 이 영화는 불교적으로 보면 부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분노와 폭력, 그리고 무아적 인간상의 정반대인 인간의 이기적 심리를 반추해볼 수 있는 영화였다.
1971년 8월 23일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인천시내버스를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군경합동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국은 처음엔 ‘무장공비’라고 했다가 다음날 ‘군 특수범들의 난동사건’으로 정정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가 만든 ‘북파특수부대’의 부대원들이었다. 32년 동안 물밑에 숨어있는 실미도 사건은 2003년 12월 스크린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영화 흥행의 마이다스 강우석 감독과 <박하사탕><오아시스>로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 설경구가 <공공의 적> 이후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고, 국민배우 안성기와 허준호, 정재영, 강신일, 강성진, 임원희 등 한국영화 최정예부대들이 총출동했다. 성탄절 연휴(12월 24일)를 통해 개봉된 이 영화는 개봉 58일만에 마침내 한국 극장개봉 역사상 천만을 넘은 첫번째 영화가 되었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은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사형이 언도돼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이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다. 인찬 말고도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엔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앞에 나타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는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던진다. 그렇게 실미도의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미도 북파부대’의 원래 이름은 ‘684 부대’였다. 창설일자인 68년 4월에서 따왔다. 정식명칭은 공군 제7069부대 2325전대 209파견대였다. 부대 창설을 주도한 사람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 권력 실세였다. 오랫동안 지옥 훈련을 견뎌오던 그들은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기간병을 살해한 후 실미도를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결국 수류탄 자폭을 선택했다. 이때가 1971년 8월 23일, 이를 ‘군특수범 난동 사건’ 혹은 ‘실미도 사건’이라 부른다.
실미도 사건의 기원은 실미도 사건 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은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31명의 무장공비를 침투시켰다. 이른바 ‘1.21 사태’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특수부대를 조직해 북한 침투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임무 수행은 3년 이상 미뤄진다. 혹독한 훈련과 줄어드는 보급품에도 출전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684부대원들은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남북간 화해분위기에 따라 존재자체에 부담을 느낀 정부에 의해 제거명령이 떨어지자 1971년 8월 23일, 기간병들을 살해한 뒤 실미도를 탈출한다.
인천에 상륙한 뒤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684부대원들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을 시도해 대부분이 사망하고 생존자들 역시 이듬해 사형이 집행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정래혁 국방부장관과 김두만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한다.
당시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에 딸린 무인도였다. 실미도부대원들은 이 섬에서 혹독한 훈련을 쌓으며 인간병기로 만들어졌다. 3년 4개월 동안 출동만을 기다리던 이들은 1970년대 초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차츰 불필요하고 거북한 존재가 됐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독재정부의 야만적 행위를 눈치챈 이들은 ‘청와대에 가서 따지겠다’며 1971년 8월 23일 섬을 탈출해 서울로 향하다 자폭한다. 수류탄 자폭에도 살아남았던 4명은 1972년 3월 10일 사형에 처해졌다.
이 영화에선 개인의 이기심과 함께 국가의 이기심이 그려진다. 국가권력이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다가 용도 폐기시켜 제거하려든 것이다. 국가는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국가가 개인을 도구화하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사용하다가 용도폐기하려든다면 그런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개개인이 깨어있지만 못하면 국민은 권력의 불쏘시개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위기를 부채질하고, 안보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전쟁상황을 만들고, 실제 자국 국민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국가 지도자가 동서고금에 부지기수였다.
국가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선 개인의 깊은 심층 심리가 그려진다. 실미도에서 훈련병들을 훈련시키던 기간병의 소대장이 둘이었다. 허준호(박중사)와 이정헌(조중사)이었다. 훈련 도중 박중사는 훈련병들 옆에 총을 갈기는 등 그야말로 ‘나쁜 놈’으로 나오고, 조중사는 늘 ‘좋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그려졌다.
한번은 박중사와 조중사가 이런 대화를 한다.
박중사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넌 언제나 생각을 하지, 이게 옳은가, 이게 나쁜가”라고. 그러자 조중사는 “생각하는 게 나쁜 겁니까?”라고 묻는다.
이 때 박중사는 “나빠! 연병장 몇 바퀴 돌고 계급장 달아주는 군대가 아니야, 잘 들어! 여긴 실미도야!”
실미도엔 대부분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개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질 처지가 아니니 시키는 대로나 해야 한다는 게 박중사의 논리였다.
하지만 정작 상부로부터 “실미도 훈련병들 전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려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왔을 때의 태도가 정반대로 바뀐다. 그 때 까지 착한 사람을 가장했던 조중사는 “우리가 살기 위해 저들을 어서 빨리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자”고 한다.
그러나 박중사는 “어떻게 한솥밥을 먹으며 생사를 넘던 그들을 죽일 수가 있느냐”면서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 어떻게 겉모습만으로 인간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의 심리는 양파껍질 같은 것이며 심층적이다. 그렇게 함부로 인간을 재단하는 분별이 문제인 것이다. 실미도의 대원들도, 영화의 관객들도 조중사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고, 박중사는 독종이라고 욕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선인이 결과적으로 악인이었고, 악인이 결과적으로 선인이었다.
그러니 누구를 함부로 욕하고, 누구를 함부로 찬양할 것인가. 오직 한 생각을 비워 무분별의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음을 실미도의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