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보석가게에서 보석을 보았을 때보다 한적한 산책길의 돌무더기에서 보석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많이 들어왔던 세계적인 명상지도자들의 명단에서 들어보지 못한 인물 속에서 놀라운 영적 빛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은 그 이상이다.
<붓다의 딸, 세상을 비추다>(아미 슈미트 지음, 이명원 옮김, 꿈꾸는 돌 펴냄)가 조명한 인도의 불교명상가 디파 마는 그런 기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1911년 미얀마 국경과 인접한 인도 동벵갈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디파 마는 개인적으로 불행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조그만 여성이었다. 출가자도 아닌 재가 여성이었지만 중년에 불교에 입문해 깊은 깨달음을 얻어 캘커타에 살며 1989년 열반에 들 때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서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지도자인 샤론 살즈버그,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등이 그녀에게 심오한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다.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나니. 그는 인도의 오래된 불교도들의 후손인 바루아족이었다.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나니는 어린 시절부터 불교 의식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절에 가서 스님들을 만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보통 어린이들은 당시 스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나니는 의지가 강해 그가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보시를 하고 발을 씻어주고 식사 시중을 드는 것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또 그 시골마을에서 여자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학교에 가려는 열정을 누구도 막지 못할 정도로 그는 향학열을 불태웠다.
그러나 당시 그 시골의 여자아이들은 관습에 따라 초경이 시작되기 전에 결혼해야했다. 그도 불과 12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웃마을의 엔지니어와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남편은 일 때문에 미얀마로 떠났다. 그는 홀로 남아 시댁식구들 틈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했다. 2년 뒤 14살이 된 나니는 남편을 따라 미얀마로 떠난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서 아내 역할까지 해야 하는 어린 소녀는 두렵기만 했다. 그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며 고향과 부모 형제가 그리워 밤마다 우는 어린 소녀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 라자니가 인격자여서 어린 소녀에게 성행위를 강요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니는 그런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인도의 신부들은 결혼 첫해에 아들을 낳으라는 부모들의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니는 임신하지 못했다. 남편의 부모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남편을 인도로 불러들여 새장가를 들이려 했다. 남편은 이를 거부했지만 나니의 고통은 날로 커져갔다. 나니가 18살이 됐을 때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비죠이라는 18개월 된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 나니의 아버지는 나니 부부에게 비죠이를 미얀마로 데려가 자식처럼 키울 것을 권했다. 나니 부부는 비죠이를 키우면서 불우한 아이들에게 자기들의 집을 제공하기도 하고 학비를 대주기도 했다.
나니는 남방불교 수행 전통이 잘 남아있는 미얀마 양곤에 살면서 불교 명상을 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꼈다. 나니는 남편에게 명상공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남편은 좀더 나이가 들면 시작하라고 부탁을 번번이 거절했다.
나니가 30살 때 일본의 침공으로 미얀마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해방되기 까지 나니 가족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해방이 되자 아들처럼 키운 동생 비죠이는 가족을 이루기 위해 인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20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나니가 드디어 임신을 한 것이다. 35살의 나니는 딸을 낳고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3개월 뒤 아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나니는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심장병을 얻고 말았다.
4년 뒤 그는 다시 딸을 임신했고,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이 빛이라는 뜻의 디파였다. 그 때부터 나니는 디파의 어머니, 즉 빛의 어머니란 뜻의 디파 마로 불렸다.
디파는 건강하게 잘 자랐고, 나니는 다시 임신을 했다. 이번에는 모두가 원하는 사내아이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렸고, 나니는 슬픔과 고통에 빠졌다. 나니는 병으로 쓰러져 죽기만을 바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니가 그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밖에서 일하며 집에 돌아와 딸 디파까지 홀로 돌보아야했다. 그러던 1957년 어느 날 밤,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다.
나니는 10년 사이에 두 아이와 남편과 건강과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는 아무 재산도 없는 채 40대 중반의 나이에 혼자 힘으로 키워야할 7살짜리 어린 딸을 가진 병든 미망인이었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고, 고향 인도는 너무 멀었다. 그는 남편의 사진을 끌어안고 우는 것 이외는 할 게 없었다.
죽음 이외는 생각지 않았던 그는 ‘죽으면 무엇을 가지고 가게 되지?’를 생각했다. 그날 밤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법구경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슬픔을 가져오는 것에 집착하고
불안을 가져오는 것에 집착하니
사랑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는
슬픔도 불안도 없으리니.
그는 삶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몸에 지닌 장신구와 가진 재산을 모두 이웃에게 주며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는 명상센터로 들어갔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다 병에 걸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집에 돌아오자 엄마를 원망하던 디파는 한시도 나니를 떠나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안끼리 아는 불교 스승인 무닌드라가 집에 머물면서 명상을 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때쯤 훌륭한 도반이 된 동생 헤마도 인도에서 양곤을 건너와 딸을 돌봐주며 함께 수행했다.
디파 마는 명상한 지 며칠 만에 남방불교 전통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과정으로 불리는 ‘통찰의 과정’에 이르렀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빛을 경험했고, 주변의 모든 것이 해체되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날 그는 다시는 미망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환과를 얻었다. 그는 여성 재가자의 몸으로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고 모든 선정 단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정도에 이르렀지만, 영적인 파워를 오용할 여지가 전혀 없을 만큼 무아적 삶의 태도를 지녔기에 스승 무닌드라는 자신에게 온 제자들을 디파 마에게 보냈고, 디파 마는 빈민가의 4층 아파트 자기 방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선 이미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신통까지 보여, 벽을 뚫고 나타나는가하면, 천상세계까지 오갔다는 제자들의 증언이 잇따르는 디파마였지만, 제자들은 그런 기적보다 그의 순수함에서 나오는 자애와 평화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곤 했다. 제자들은 그야말로 그가 ‘무아적 인간’이었음을 증언했다. 디파마는 ‘무아가 무엇이냐’는 한 제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일시적인 기분이나 의지, 희망에 따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려하고 하는 핵심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이라 우리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때 알게 되는 상호관계성, 투명성, 단일성과 같은 위대한 감정을 말한다.”
수많은 인생의 고통에서 해탈해 지극히 평화롭고 자애로웠던 디파 마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이고 명상 수행의 가장 기본적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