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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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기도’법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Blog.daum.net/hyun-jaeho


어느새 12월입니다. 2015년도의 ‘길흉화복’이 궁금하여 ‘점’집을 찾는 분도 계시겠지요. 또는 한 해를 마감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쁘셔서 법당에 올리는 연등 하나로 마무리 하실 수도 있겠구요.
오늘은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점’보다는 기도를 하심이 옳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는 묘한 기적 같은 행위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기도를 통하여 삶이 역전 되었으며, 병을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지구 저편에 있는 자녀의 병을 고쳤다는 사례를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도는 종교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효험을 선사합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종교적 의식이 필요 없을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다음의 조건을 구비 했다고 해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심취해 있거나
절이나 교회를 30년쯤 다녔다거나
불경이나 성경책을 모두 외울 정도로 공부 했다거나
참선, 좌선 또는 명상을 셀 수 없이 많이 했다거나
참선 화두를 통하여 공空을 느껴보았거나
삼매에 빠진 경험이 있거나
언제나 삼매에 빠질 수 있을 정도 수준이거나
좋은 명당자리에서 기도를 한다거나
기氣가 흐르는 바위 위에서 기도를 한다고 해서…


효험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기도만이 효험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기적을 가져오기도 하지요. 때때로 기적을 마치 ‘로또’로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기도가 반드시 기적을 가져온다는 확신만 있다면, 생각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기도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이어서 기적에 대해서도 잠시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일시적으로나마 정화하고, 자신을 최대한 낮춥니다. 기도는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아무런 종교 의식도 중요치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이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당위성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소원성취를 위하여 기도 외 다른 노력은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들여다봅니다.  


1. 기도하는 법이 여러 가지 있나요? 혹은 목적에 따라 기도 법이 다른가요?
목적하는 바에 따라 몇 종류 됩니다. 예를 들어 아픈 사람의 쾌유를 빌 때, 시험 합격을 빌 때,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기 바랄 때, 그저 이대로 평온한 삶을 원할 때, 전생의 업을 소멸하고 싶을 때 등 우리는 많은 바람의 연속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 수많은 바람을 모두 이룰 수는 없겠으나 착실하고 참신한 기도 법을 알고 실행 할 수 있다면 훨씬 복된 삶을 영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기도의 과신
때때로 기도의 효험을 보신 분들 중에, 모든 일을 기도로써 성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기도만으로 안 되던 일을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이 아끼는 제자 가섭은 기도의 효력을 다소 과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가섭의 그러한 관념을 고쳐주기 위하여 어느 날 연못을 지나던 중, 돌을 주어 연못에 던졌습니다. ‘풍~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기도로써 내가 던진 돌을 꺼내 보거라.” 기도가 기적을 부르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기적을 이루는 데 절반의 효험만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무엇일까요? 노력입니다. 피땀 흘리는 각별한 노력 말입니다.



물론 때때로,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정한수井華水를 떠놓고 적극적인 기도를 한 후, 그 물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단 한 번의 기도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너무도 많은 시간, 많은 세월 동안 적극적인 기도를 한 것이며 일종의 플라시보1)효과도 있었겠지요. 그러한 적극적인 천일기도가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당연히 기적이지요. 기적이 일어날 만큼 노력을 했으니까요.


3. 시각화기도
모든 기도를 시작할 때는 자신의 흉허물과 고뇌를 모두 드러내고 자신의 삶 전체를 망라하여 장단점을 모두 들추어 낼 만큼 마음을 비우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이것을 잊고 막 바로 소원을 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효험을 바랄 수도 없구요. 그런 과정으로 마음을 정화하였다고 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각화 기도를 시작합니다.
(아픈 사람의 쾌유를 빌 때, 시험 합격을 빌 때) 시각화 기도는 아주 좋습니다. 시각화기도법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문도 없습니다. 정갈한 마음으로, 아주 정갈한 마음으로 상상하세요. 아픈 사람이 다 나아서 아주 건강한 모습을, 시험에 합격하여 모든 사람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 모습을, 그렇게 원하는 결과를 시각화 하세요, ‘호접지몽胡蝶之夢’으로 꿈을 꾸듯 상상하세요. 그 꿈이 너무 강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자신조차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게 시각화 하세요, 아주 간단하죠? 총천연색으로 연상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온 세포까지 가득 채운다는 느낌으로 명상이나 절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리에 무리가 없다면 시각화 상태에서 절을 하염없이 하는 것도 정말 효과적입니다. 진정으로 바래고, 진정으로 시각화가 잘되면, 그 시각화에 빠져든 나머지 기뻐서 절을 숱하게 해도 (평상시 절 할 때 보다) 다리가 훨씬 덜 아픕니다. 이렇게 매일 하셔도 좋고, 절에서 3,000배를 함께 곁들이면 2~3일 만에 효험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본 방법으로 수차례 효험을 보았답니다. 그리고 보리회향2)하시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참, 시각화를 위하여 인상을 찡그리거나, 눈에 핏발이 서도록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하면서 기도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4. 말씀묵상기도
말씀묵상기도 역시, 시작할 때는 자신의 흉허물과 고뇌를 모두 드러내고 자신의 삶 전체를 망라하여 장단점을 모두 들추어 낼 만큼 마음을 비우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말씀묵상기도는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그저 이대로 평온한 삶을 원할 때) 참 좋습니다. 우선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 아끼는 진언眞言이나 부처님의 명호를 정근 하듯이 암송합니다. 그렇게 암송하면서 마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 마음가짐, 바람, 참회 등을 하는 것입니다. 원만한 기도방법으로써 단박에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정진 및 수행 하는 방법으로 단연 최고의 기도 법입니다. 말씀묵상기도법은 타 종교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좋은 기도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빠른 속도로 안정시켜 줍니다. 때때로 몹시 화가 나서 가슴이 뛴다면 이 기도법이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심장 박동을 줄여줌을 몸소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잠시라도 쉬는 때가 있다면 언제나 광명진언을 암송합니다. 하루에 몇 번 되뇌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5. 참회기도
참회기도는 사실상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완전한 기도법입니다. 참회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회기도를 한 바 있습니다. 3,000배와 함께 처음으로 참회기도를 했던 때. 그날 스님이 제게 해줬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진정한 참회기도를 했구먼, 업장이 다 녹았겠어.” 실제로 저는 그 날 이후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참회기도와 3,000배를 하고 있습니다.
참회란 자신이 부처임을 모르고 살아온 나날들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기도를 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곤 합니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말입니다. 불가에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절히 원할 때 진실의 기도를 하게 된다고 하지요. 성경에서도 ‘갈급한 자가 진리를 찾는다’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갈급하던 간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어떤 문제이든 나한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부적귀인)으로 참회기도를 한다면 반드시 기도성취 하십니다. 참회기도의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회라는 말을 때때로 편히 사용합니다. 오늘을 기회로 참회의 참뜻을 보시죠.


6. 참회란?    
참회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이 있습니다.



이참은 ‘죄라는 것에는 자성이 없다는(무자성無自性) 사실과, 그 죄가 내게 물듦이 없는데 나의 번뇌는 왜 지속되는가?’를 관觀하는 것이며, 사참은 예배, 절, 염불, 염송, 암송 등 행동으로 또는 입으로(속으로) 경을 읽으면서 부처님 법을 따르는 것(또는 따르겠다는 다짐)입니다. 따라서 참회는 꽤 논리적으로 구분하여 자신의 행적을 살펴보고 이를 이참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참에는 사참의 행위가 반드시 수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참에는 반드시 이참의 정신이 기반이 되어야 하구요.


“성불의 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사참을 행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바쳐 부처님께 귀명歸命하고 비 오듯 슬피 울며 정성을 다하면 부처님의 가피를 받으리니 마치 연꽃이 햇볕을 받아 활짝 피는 것과 같다.                                         - 영명 선사 -


참懺이란 어리석고 교만하고 허망하게 시기 질투한 죄를 뉘우쳐 지난날에 지은 악업을 다시는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회悔란 이 다음에 저지르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그 죄 됨을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 육조대사 -


7. 기도 할 때는 어떤 말을 하나?
한국에 모셔진 부처님은 한국말을 사용하고 미국에 모셔진 부처님은 영어를 사용할까요? 어떤 언어로 기도를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오늘 시각화기도와 말씀묵상기도 그리고 참회기도를 소개 한 것입니다. 자신의 소원을 수만 번 읊조린다고 기도가 성취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말이 아닌 행동과 마음 그리고 시각화로 결정됩니다. 참회기도 때 자신의 죄를 말로써 나열하는 것은 부처님께 사뢰는 것이 아닌,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 하는 이참 단계의 실천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내면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기도는 말로써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 기도 잘되는 명당이 있을까요?
영험하다고 소문난 기도도량을 찾아가 보면, 거대한 돌산의 한 자락 큰 바위 위에 놓여진 암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토산) 속에 둘러싸인 암자도 있지요. 우리는 어느 곳을 찾아야 할까요? 어차피 좋다고 소문난 기준에서 풍수를 들여다보면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어 천하의 명당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면 돌산과 토산 중에 어디가 더 영험할까요? 돌산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그 사이에서 기도를 하면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로 가장 최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토산에는 지기地氣가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토산은 만물이 솟아나고 생장의 원초적인 곳으로서 지기地氣가 수평적으로 가득한 곳이지요. 그렇다면 돌산은 수직적인 지기地氣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대부분 돌산을 선호하지만 영험하다는 중국의 오대산은 토산입니다.
어린이 동화 속에, 아버지 쥐가 자기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센 신랑을 만나게 해주려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쥐에게 시집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억나세요? 맨 처음에 해님을 찾았고, 해를 가리는 구름이 더 세보여서 구름에게 가고, 구름을 밀어내는 바람에게 찾아가고, 바람에 끄떡없는 담벼락에게 애원하고, 결국 나중에 담벼락을 갉아 무너뜨리는 쥐에게 시집보내는 이야기 말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동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포교당에서도 영험함을 느낀 바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불당이고 우리 마음에 부처가 있다고… 영험하다고 소문난 장소에 가서 기도를 하면 기도가 성취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한 몫 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극한 정성이라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기도를 하여도 모두 성취되십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9. 기적을 부르는 기도
원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불가에서의 온전한 삶은 수행과 실생활의 균형 있는 삶’이라는…. 그 어떤 기도도 연못 속에 빠진 돌을 건져 올릴 수는 없습니다. 찾을 수 있다는 강력한 바람(기도)과 실제 들어가서 찾는 노력이 합해졌을 때, 그러한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넓디넓은 연못 바닥에서 단 하나의 돌덩이를 단박에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인 것입니다. 저는 노력과 기도로써 새 삶을 찾았습니다. 제1회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그 경험담으로 ‘바라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불교공부에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기도법의 실천이 중요할뿐더러, 주어진 삶에서의 적극적인 열정도 중요합니다. 모두를 실천한다면 기적은 너무나도 단순한 논리로 여러분 품에 찾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또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끝을 봐야 합니다. 될 때까지 말입니다.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면 처음부터 다시 끓여야 하듯, 끓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불을 지펴야 합니다. 기도는 중간에 멈추면 효험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