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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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심憐愍心은 보살菩薩의 행원行願입니다

오늘은 법상에 오르기 전, 삼보전三寶前에 향을 피워 올리며 발원 하였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지은 죄업,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의 번뇌를 여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깨끗하면 정토淨土요, 시비하고 분별하는 게 예토穢土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서는,
“계율戒律을 닦는 것은 이 몸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였습니다. 법대로 살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집니다. 
계율(규범)을 닦고 지키고 실천하면 몸이 고요해집니다.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으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치입니다.
“지혜智慧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트리기 위함이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계정혜 삼학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치료하는 묘약입니다. 계정혜 삼학을 광명의 지혜로 비유하면 탐진치 삼독은 번뇌의 어둠입니다.
의심을 깨트린다는 것은 도를 닦기 위함이요, 도를 닦는 것은 불성佛性을 보기 위함입니다. 불성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샴먁삼보리阿縟多羅三.三菩提를 얻기 위함이요, 무상정등정각을 얻음은 위없는 대열반大涅槃을 얻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대열반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이요, 번뇌망상煩惱妄想이 일어나지 않는 삶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습니까. 대열반은 생사生死와 온갖 번뇌煩惱와 모든 경계境界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여의고 모든 경계를 여의는 것은 항상한 나, 즐거운 나, 참 나, 깨끗한 나를 성취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입니다.
그런 법신法身과 열반涅槃과 부처(眞我)와 법法이 장엄하는 체성體性입니다.
어떤 석공石工이 큰 바위를 놓고 끊임없이 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도 모양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석공이, “이 큰 바위덩어리에는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그 모습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나는 불필요한 부분의 돌을 덜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도 이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의심을 풀어내어 번뇌를 타파하기 위함이였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시기를,
“열 가지의 나쁜 업을 크게 지으면 지옥의 원인이 되고 중간으로 지으면 축생의 원인이 되며 적게 지으면 아귀의 원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십업十業인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貪, 진嗔, 치痴의 악업을 지으면 삼악도에 떨어집니다. 살생한 과보로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단명하거나 병고에 시달린다고 하였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중생은 삼악도에 떨어지거나 혹 사람의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난하거나 재물이 있어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없으면 없어서나 못쓰는데 있으면서도 못쓰고 벌벌 떨다가 죽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남의 것을 너무 많이 훔쳤기 때문입니다. 「보왕삼매론」에도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게 되면 의義를 상하기 쉽다’ 하였습니다.
사음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하나는 가족의 행실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고 둘은 마음에 드는 권속을 얻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거짓말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남의 비방을 듣게 되고 남에게 잘 속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간질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권속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친족이 험악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나쁜 소리를 듣고 다투는 일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번드르르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거나 말소리가 어둔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탐욕을 많이 지으면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끝이 없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화를 잘 내면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남들로부터 시비가 끊이지 않고 남의 해침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삿된 소견을 가진 집에 태어나게 되거나 비굴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도 여섯 가지 인연으로 삼악도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나쁜 마음이 성한 연고요, 둘은 후세를 보지 못하는 연고요, 셋은 번뇌 익히기를 좋아하는 연고요, 넷은 선근을 멀리 여읜 연고요, 다섯은 나쁜 업에 막힌 연고요, 여섯은 나쁜 벗과 친근한 연고니라.”
감기가 걸려 코만 막혀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나쁜 업에 걸려있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장애 있는 곳에서 도를 구하라고 하였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은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이 많은 이는 장애가 없습니다. 복이 있다는 것은 지혜가 있다는 것이고 지혜가 있다는 것은 나눔을 통해서 덕을 쌓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과 덕과 지혜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과 덕과 지혜는 한 몸입니다.
일천제(믿지 않는 이)들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를 부정합니다. 삼악도의 길목에 가까이 있는 이들입니다. 그곳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또 다섯 가지 일로 인해서 삼악도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없다고 항상 말하는 연고며, 둘은 보리심을 낸 중생을 해치는 연고며, 셋은 법사의 허물을 말하기 좋아하는 연고며, 넷은 법을 법 아니라 말하고, 법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는 연고며, 다섯은 법의 허물을 구하기 위하여 법을 듣는 연고니라.”
임제 선사는 『임제록臨濟錄』에서 ‘심청정心淸淨이 시불是佛이요, 심광명心光明이 시법是法이며 정광무淨光無가 시승是僧’이라 하실 때, “따뜻하고 편안하게 모든 중생을 포근히 감싸 안아 주시는 분을 우리는 불보살님”이라 하였습니다.
삼보三寶의 가르침이 인간학이고, 인간학의 가르침을, 우리도 부처님같이 실천하기 위한 신행생활이 수행이요 정진인 것입니다.
중앙승가대학 전 총장이셨던 종범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누구냐. 이 마음이 맑고 깨끗함이 부처님이요, 마음이 지혜로운 것이 법이며,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깨끗한 승가의 공동체가 스님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시설如是說이요 공동설共同說이며 방편설方便說인 것도, 우리들의 근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부처님이오.’ 말하면 놀라는 열기중생이 아니라 여러분이 부처님이요’ 말하면 확실한 믿음으로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는 대심중생이었으면 합니다.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는 믿음과 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것은 결코 교만심도 아니고 자만심도 아닐 것입니다.


『유마경維摩經』에 이르기를,
“나고 죽는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기 물들지 않고, 번뇌煩惱가 일어나지 않는 열반涅槃의 세상에 있으면서도 생사生死의 바다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보살菩薩의 행行이다.”  하셨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벌벌 떠는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끊임없이 목격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열반涅槃의 세계란 죽음의 세상이 아닙니다. 색色과 공空을 둘로 구분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생멸生滅이 없고, 증감增減이 없고, 미추美醜가 없고, 대소大小가 없고, 장단長短이 없고, 전후前後와 좌우左右가 없는 한결같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있다가 없는 것을 공空이라 하지 않습니다.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입니다.
모양 없는 모양이 실다운 모양이요, 참다운 형상입니다. 
열반의 세계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으며, 계정혜 삼학의 밝음으로 몸과 마음이 고요하며 의심도 다 사라진 자리입니다.
현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고 죽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아니하는 경계입니다.
대열반은 모든 중생을 사랑하면서도 애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보살의 행이라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자비심慈悲心을 연민심憐愍心이라 합니다.
연민심은 사랑하면서도 사랑에 빠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경계입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보살의 행원行願입니다. 오늘이 있어 행복한 삶입니다.
갑오년 마지막 비탈길에서 불망초심不忘初心 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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