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어떤 문제이든 ‘선행’이라는 처방전이 특효약입니다.(cafe.daum.net/sun-order)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러하듯 한자漢字도 오랜 세월 동안 올바른 삶을 위한 방안과 방법이 녹아들어 만들어졌습니다. 즉, 대부분의 단어에는 올바른 삶을 위한 참(眞)된 이(理)론이 하나씩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반攀이라는 한자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공부에 앞서서 이런 생각을 함께 해보시죠! 가장 잘 사는 방법은 뭘까요?
왜 동일한 사람으로 태어났건만, 잘 사는 사람과 어려운 사람으로 구분되고, 곤궁한 삶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요? 세상이 그토록 힘든 것일까요?
무엇이나 그렇듯, 원리를 알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살이 또한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살이에 있어서 세상을 세상世相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세상世上으로 보는 이가 있습니다. 즉, 세상살이에 있어서, 世相을 사는 분이 있고, 世上을 사는 분이 있습니다. 두 분의 삶은 매우 다르게 펼쳐집니다. 어느 분의 삶이 평온 할까요? (월간 붓다 2014년 10월호 “세상 그리고 세상”이라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반攀은 世相을 살아야 하건만 世上을 사시는 분들에게 삶에 지혜를 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세상世相을 살면서 많은 것과 연緣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인연, 사연, 악연, 필연 그리고 우연이 있는가 하면 이번 호에서 공부하는 한자, 반攀에 해당하는 반연攀緣도 있습니다.
이중에 세상世相과 반연攀緣으로 연을 맺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반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은 걷잡을 수 없이 어려워집니다. 도대체 반이 뭐길래~~~?
불가佛家에서는 반연攀緣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접합니다. 우선, 반연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반연攀緣
대경對境을 의지한다는 뜻으로써, 마음이 저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칡넝쿨이 나무나 풀줄기가 없으면 감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듯,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대경對境을 의지하고 일어남. 이러한 반연은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됨. - 『불교사전』
즉, 불교에서의 반연이란, 한 마음이 일어남 또는 그 일어난 마음에 얽매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준으로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건만) 인간은 그렇게 마음을 내기 시작하고,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 가슴앓이(번뇌)가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참고 : 대경對境 → 객관의 사물이나 대상.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요소들.
1. 반攀이라는 한자漢字의 구성
木 + 爻 + 木 = 울타리 ‘번.’입니다. 많은 나무가 얽혀있고 그것을 가로질러 묶은 듯한 형상을 말합니다만 가지런히 묶었다는 의미보다 그냥 많은 것이 모여 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무대기로 얽혀놓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한 울타리가 많거나 크다는 의미에서 樊(. + 大)을 사용하기도 합니다.(이 또한 울타리 번이라
합니다)
그러한 울타리를 넘어가려면 그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들춰가며 손으로 꽉꽉 잡고 올라가야겠지요. 그래서 樊 + 손 수手 = 攀(더위잡을 번)입니다.
‘담을 넘는다.’는 의미의 월담, 월책에서는 월越을 사용합니다. 번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울타리를 넘어간다는 의미의 번攀이 ‘더위를 잡는다.’는 뜻으로 변한 것이~ .
2. 반攀의 속 뜻
木 + 爻 + 木 + 大 = 울타리 ‘번樊’은 복잡하게 자라난 나무 또는 그 나뭇가지들이 얽혀있는 형상을 뜻함과 동시에 그 속뜻은 세상世相의 복잡함, 자연의 복잡함, 자연의 오묘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손으로 잡고 올라간다는 의미의 번攀은 그러한 오묘한 자연에 맞서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즉, ‘더위잡을 번’이라는 것은 ‘더위’를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 자연의 순리(더위)에 맞서거나 순종하지 아니고 억지로(인위적으로) 일을 행하려고 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더위’‘반攀’을 통한 불교 공부(한자풀이)라는 것은 대자연의 흐름을 대표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지요.
3. 반攀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고?
주식 시장에서 주식이 오르는 것을 우리는 뭐라고 하나요? 반등攀登이라 합니다. 왜 반등이라 할까요? 억지로 올라간 것이기 때문입니다.(언젠가는 곧 떨어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식 시장은 돈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 반드시 돈을 잃어줘야(눈물을 흘려야) 누군가는 반등이 되고,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억지로 오른 것이라는 의미에서 반攀이라는 한자를 사용합니다.
누군가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의 수하에 들어가 온갖 수발을 다 들며 그 사람의 총애를 받음으로써 승진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출세하려는 세상을 두고 뭐라고 하나요? 네, 반룡지세攀龍之世지요! 즉, 그와 같이 남의 힘을 빌어 ‘억지로’ 권력의 자리로 오르는 행위를 반룡攀龍이라고 합니다. (임금의 힘을 빌어 출세했다는 속뜻)
즉, 반攀은 자기 힘이 아닌 남의 힘에 의지하여 올라가는 모습을 뜻함과 동시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자연(세상世相)의 흐름을 어기고 억지로 상승하는 것들을 비유하는 한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것도 있겠네요. 넝쿨식물들… 그들은 다른 나무의 줄기가 있어야 그것을 타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런 넝쿨과의 식물들을 보고 반연성攀緣性 식물이다, 또는 반연식물攀緣植物이라고 합니다.
4. 결국 반攀은 무엇인가요?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반’이란, 대자연의 흐름에 역행한다 / 노력 없이 오르려 한다 / 상대의 힘을 이용한다 / 상대에 의지한다 / 타력으로 결과를 만들고자 한다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한다.’ 입니다. 즉, 세상世相의 많은 조건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세상世上이 전부 인양 살아가거나,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듯 바깥 세상世相에 나의 세상世上을 맞춰야 하건만, 나의 세상世上을 고집하며 바깥 세상世相이 자기한테 맞추기를 기대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비위 맞추어 주는 것은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하고 비위 맞추는 것은 싫어하는 이기적인 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되는 일이 있을까요?
반연이란, 주어진 상황을 관觀하지 아니하고 자신한테 다가오는 외세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마치 단세포 동물처럼) 신구의를 발동하는 행위 즉, 눈에는 눈이요 칼에는 칼이라는 사고방식, 받은 만큼 복수하는 행위,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과 연을 맺어 나간다면… 글쎄요 최후에는 뭐가 남을까요?
5. 나도 반攀으로 사는 사람
이 글을 읽다 보면 맞아 맞아, 그러면 안되지, 그렇게 살면 못써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세상살이란 늘 반연으로 똘똘 뭉쳐 살아갑니다. 어쩌면 하루에 100개쯤의 반연을 맺으며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덥다고 짜증내고, 층간 소음에 성질내고, 기도 드리다가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짜증내고, 공양간에서도 자신이 나이 많다는 이유로 버젓이 새치기하고, 식당에서 음식 늦게 나오면 열 받고….
이 모든 것이 다 반연입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의 변화가 반연인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쌓인
반연은 이내 번뇌로 자리 잡을 테지요. ‘마음을 내려놓자 내려놓자.’ 하면서도 매번 짜증나고 매번 성질내며 반연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연들은 새록새록 새로운 업을 예쁘게 쌓아 줍니다. 그 결과 나의 업장은 점점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회를 끊기는커녕 내생을 기약하는 ‘다겁생’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반연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반연은 이기적인 마음에 기인합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세상世相을 배려하면 반연은 확연히 줄어듭니다. 자신만의 세상世上과 자신의 조건을 내세우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하루에 수백 개의 반연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사시는 분의 공통점은 세상世上살이를 하는 것입니다.(세상世相을 망각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