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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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삼매禪定三昧의 수행법修行法

-믿음(信)은 도道의 근본根本이며 공덕功德의 어머니(母)-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는 글자 그대로 생전에 일상적인 생활을 근검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면서 보살의 바라밀을 수행하는 법회입니다. 주제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 중에 선정바라밀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은 밝음입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은 어둠입니다. 계율, 선정, 지혜를 닦으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사라집니다.
계율戒律을 닦는 것은 몸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기 위함이며,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네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요한 사람, 몸은 번다한데 마음은 고요한 사람, 몸은 고요한데 마음이 번다한
사람, 몸도 마음도 번다한 사람이니라.”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는 불보살이십니다. 대중들과 어울려 살며 몸은 분주하나 마음은 늘
고요한 이들이 있습니다. 몸은 고적한 산중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번다한 사람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늘 분주하고 번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유형의 사람입니까?
『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께 제자들이 묻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의심이라 하나이까?”
“대게는 의심하지 아니함이 의심이니라.”
“의심을 깨트리고자 하는 것은 도道를 닦아 익히기 위함이요, 도를 닦음은 불성佛性을 보기
위함이요, 불성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기 위함이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음은 위없는 대반열반大般涅槃을 얻기 위함이며, 대열반을 얻음은 중생들의 모든 생사와 온갖 번뇌煩惱와 모든 제유諸有와 모든 경계와 모든 진리를 끊기 위함이며 생사를 끊고 내지 모든 진리를 끊는 것은 상락아정을 얻기 위함이니라.”
번뇌를 끊은 자리가 해탈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함이 열반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생사와 욕락을 제어하여 모든 업식業識을 여읠 수 있는 자리가 상락아정常樂我淨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한 나는 누구이며, 즐거운 나는 누구이고, 참 나는 누구이며, 깨끗한 나는 누구입니까?
본래 나인데 무상한 나, 괴로운 나, 무아無我인데 스스로 나라는 아트만(atman)에 집착하고 부정不淨한 나를 좇아가는 나를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항상 한 것이 법신法身이며, 무상無常한 것은 색신色身입니다. 괴로운 것은 번뇌煩惱이고, 즐거운 것이 열반涅槃입니다. 자아自我는 무아無我이고, 참나眞我는 부처입니다. 깨끗한 것이 법法이며, 부정不淨한 것은 현상계現相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수행修行이란 깨달음의 완성이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 셰익스피어 -
『열반경涅槃經』에, “보살菩薩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에 더럽혀지지 아니한다.”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 삶,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는 삶, 진흙 속에서 핀 연꽃처럼 오롯이
물들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열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계율戒律, 선지식善知識, 내관사유內觀思惟, 정진精進, 바른 생각(正念), 바른 말(正語), 바른 법(正法), 바른 행동(正行), 애민哀愍’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하리니 하나는 선정禪定이요 둘은 지혜智慧이니라.”
보시布施는 조건 없는 나눔입니다. 보시는 보시바라밀이어야 합니다. 주어도 준다는 생각 없이,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주는 나눔입니다.
계율은 규범입니다. 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욕은 하심下心입니다.
석주 노스님께서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님,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하심하고 인욕하는 것이다.”
하심과 인욕은 선정과 삼매, 반야와 지혜처럼 나누어져 있지 아니합니다. 육바라밀은 이 바라밀 속에 저 바라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욕은 하심입니다. 정진은 진지한 삶입니다. 갈팡질팡
횡설수설 우왕좌왕하는 삶이 아닙니다. 부침개 뒤집듯이 익기도 전에 막 뒤집는 일들이 아닙니다.
“불자들이여, 왕골을 비빌 적에는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나니 보살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러하니라.”
그것은 선정과 지혜입니다. 선정삼매와 반야지혜는 조화로움입니다. 나무는 바로 뽑으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선정으로 흔들고 지혜의 힘으로 뽑으라.’는 것입니다.
토양이 나쁜 땅은 나무뿌리가 깊이 박힙니다. 그러나 지력地力이 좋고 토양이 좋은 땅에서는
뿌리가 깊게 박히지 않습니다.
법당 앞에 있는 저 나무는 뿌리가 어지간히 깊이 박혔을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찌든 때가 묻은 옷을 빨 적에는 잿물에 담궈 두었다가 깨끗한 물로 씻어야 묵은 때가 빠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수행은 오바라밀五波羅密의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반야禪定般若의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1천4백 년 전, 이 세상에 오셔서 무애無碍의 춤을 추셨던 원효대사는 『대승기신론 소大乘起信論疏』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목숨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 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 긍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論하고, 사려가 끊긴 대승에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광대무변한 진제眞諦의 본성本性을 믿고 의지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이치입니다. 원효대사는 ‘아는 것만 있고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심만 있고 수행하지 않으면 신심이 성숙하지 못 한다.’ 했습니다.
육바라밀의 수행은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입니다.
보시는 나눔, 지계는 규범, 인욕은 하심, 정진은 진지한 삶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그것은 지식입니다. 그러나 하나 더하기 하나만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집착하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보살은 두 수레바퀴의 축이 방편과 지혜입니다. 보리심은 방편이고 지혜는 통찰력입니다. 춘원 이광수는 육바라밀에서, ‘천하에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했습니다.
백성욱 박사는 육바라밀의 선정을, ‘이러한 과정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마음이 안정되나니 이것이 선정바라밀이라네.’ 했습니다.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는 ‘보시는 번뇌를 버리는 것, 지계는 나타난 경계에서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인욕은 마음이 다칠 게 없는 것, 정진은 마음이 경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벗어낸 것, 선정은 집착해서 머물 마음이 없는 것, 지혜는 마음이 쓸데없는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선정禪定은 집착해서 머물 마음이 없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과욕過慾 부리다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나를 볼 수 없습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야져야 합니다. 나도 내 마음대로 못하면서 온갖 것 다 욕심대로 쥐고 있으려 하니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뿐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은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여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돕는다고 하면 보통은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도울 때 가장 덕德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최선의 길은 남을 돕는 것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고 생각하는
습관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자유로운 삶이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으로 조화롭게 어울림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삶입니다. 불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장엄한 세계에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