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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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풍상세월風霜歲月에 유수流水같은 인생은, 아직도 생각은 소년이고 청년인데 어느덧 지금의 모습을 지니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삶이였을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있는 사바세계娑婆世界가 우리 현실이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반조해보며 생각이 자꾸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네 인생살이는 열두 고갯길이라고들 합니다만, 1기 인생과 2기 인생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합니다. 2기 인생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살았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는데, 우리들은 얼마나 복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일상생활에서 분주함과 번다함이 없는 평상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수행력修行力이고 정진력精進力일 것입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보면,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도 아니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生死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煩惱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출가자는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모습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초발심初發心은 보리심菩提心입니다. 보리심은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세우고 그 사홍서원을 성취하려는 마음입니다.
중생衆生을 다 건지고, 번뇌煩惱를 다 여의고, 법문法門을 다 배우고, 불도佛道를 다 이루겠다는 서원誓願의 힘이 보리심에서 발심해 이루어지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발원인 것입니다.
보리심을 성취하려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하는데,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의 바라밀은 상구보리하는 노력입니다. 하화중생은 방편方便·원願·력力·지智·바라밀다波羅蜜多를 회향하는 성취의 길입니다.


중생심衆生心은 바깥으로만 추구하며 구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보리심으로 무변한 서원을 이루어가며 개인보다 승가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정진하는 보살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머무르고 있는 이곳이 지상낙원이 될 수 있도록 자양분이 되고 윤활유가 되어서 이 사회의 비타민 역할을 하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연유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보리심으로 발심해서 수행자의 길을 걸으실 때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이나 아라한阿羅漢을 이루게 하고 벽지불.支佛을 얻게 하기 위해서 보리심을 냈던 것이 아니라, 여래如來의 종성種姓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리심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화엄경』 「초발심공덕품」)
보리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기 위한 것이며, 근본은 여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었던 것입니다. 보리심은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해탈의 경지에 들도록 하는 가르침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던 불이 꺼지면 끓던 물이 스러지듯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꺼져야 욕락欲樂의 불기운이 사라지는 것처럼, 욕심이 없는 이에게는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모든 얽매임이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두려움의 공포를 초월하여 자유로울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겁내지 말라, 무서워 말라”고 하지만, 인과因果는 믿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법은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 부정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두렵고 겁나고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고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게 되는 인과응보의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해탈解脫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된 삶으로 이끄는 그릇된 집착에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한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때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바탕은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두려움의 개념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아닙니다. 무서움도 아닙니다. 겁내는 일이 아닙니다.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당당한 본래 자기 모습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사佛事는 부처님일입니다. 부처님의 일이란 중생을 위하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는 일만 하신 분입니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절을 짓는 불사도 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은 바람과 같습니다. 마음은 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지만, 그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마음은 머무르는 일 없이 일어났다가는 이내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또 일어납 니다. 
마음을 넓게 쓰기로 하면 우주가 다 들어와도 모자람이 없지만, 좁게 쓰기로 하면 바늘 하나 꼽을 자리도 없는 것이 중생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원효대사님도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서,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목숨이 텅 비어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 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지극히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 긍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하고 사려가 끊긴 대승에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


우리는 수행의 두 날개요 두 수레바퀴는 방편方便과 지혜智慧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보리심은 방편이 되고 통찰력은 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행정진을 통해서 얻어지는 보리심과 지혜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믿음으로 한결같이 지니고 살아가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회주 정우스님의 법문영상은 웹사이트 부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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