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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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탁마하는 도반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군종교구장


대중공양大衆供養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출발 하여 길을 나서고 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결재 대중이 공부하는 선원에 갔더니, 스님들이 걱정들 하십니다. 그래서 ‘화두話頭 들기보다는 쉽더라’ 하였더니, 방장方丈 스님은 미소로 화답和答하시여, 삼소굴 소식三笑窟 消息으로 가슴에 담고 돌아 왔습니다.
어제, 서울 경기 지역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맛비가 쏟아졌지만, 아랫녘은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기세로 태양은 이글거리는 하루였습니다.
자연을 보면 고기압이 만연하면 그 지역은 사막이 되고, 저기압 세력이 지속되면 습지대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절서四時節序는 힘들게나마 자연 생태계를 유지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대지를 태울 듯이 내리쬐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동식물動植物들은 어찌 버티고 있을까? 걱정도 해보았지만, 한여름에 그 태양열을 받지 못하는 곡식들은 오히려 냉해冷害를 입어 결실을 제대로 맺지 못할까 싶으니 이것도 자연의 순리요 이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부분인 사람의 정신세계精神世界도 고기압이 심화되면 짜증내고 화 낼 일이 많아져서 조울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반대로 기氣가 뚝 떨어져 저기압이 계속되면 우울증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 챙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더울 때는 더우니까 덥겠지, 추울 때는 추우니까 춥겠지 하고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世上萬事도 견딜만 하고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보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율戒律을 닦는 것은 몸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요.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며, 지혜智慧를 닦는 것은 의심을 타파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제자가 “의심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의심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은 몸과 마음을 맑히기 위함이요, 마음속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몸과 마음은 다르지 않다고도 하셨습니다.
여기 한 컵의 물이 놓여있다면 컵은 몸이고 물은 마음 입니다. 물이 맑고 깨끗하면 사물이 거울에 투영投影되어 비추이듯, 밝게 비칠 것이고 탁하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도 번뇌의 찌꺼기를 가라앉히면 그 물에서도 사물의 그림자가 비추일 것입니다.
요즘, 영국왕실에서는 로열베이비가 탄생 했다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고조되어 있습니다. 영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국왕실의 어린왕자는 세계경제 흐름까지도 바꾸어놓고 있을 정도라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탄생입니다.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대단한 관심과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대처 전 수상처럼 평범한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을 조심하면 운명이 바뀐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평생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록回顧錄에 남겼습니다. 또 대만 불광산사의 개산조 성운대사星雲大師는 중국 본토에서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혼자 피난 와서, 출가자의 길을 걸으며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으로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왕실의 어린 왕자를 생각하면, ‘세상은 노력만 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산혜연 선사怡山慧然禪師의 발원문發願文에,“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 들고 밝은 행실 닦고 닦아 서리 같은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 하리까”하신 이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의심疑心을 타파하라’는 가르침은 도道를 깨치기 위함입니다. 믿음에 확신確信과 신념信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문사수聞思修, 듣고 생각하고 수행修行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수행이란, 신지행득信知行得이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생활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침에는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칠 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놓을 줄 아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기쁨과 즐거움이 같은 뜻인 듯 보이지만, 기쁨은 씨앗에 비유 되고 즐거움은 열매에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연因緣과 노력努力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실을 맺은 그 열매를 다시 씨앗으로 삼을 때에는 우리들에게 불종자佛種子가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문사수聞思修의 가르침을 중요시重要時 합니다. 문聞은 문혜聞慧로서 들어서 얻는 지혜입니다. 사思는 사혜思慧로서 생각해서 얻는 지혜입니다. 수修는 수혜修慧로서 실천하고 수행하여 얻어지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문사수를 삼혜三慧라고도 합니다.
들음으로써 지혜를 이루는 방법, 생각함으로써 지혜를 이루는 방법, 수행함으로 지혜를 이루는 방법이 계율戒律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입니다.
원효元曉 대사는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서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지혜智慧요 금강삼매金剛三昧는 선정禪定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반야般若와 지혜智慧는 하나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반야와 지혜가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선정禪定과 삼매三昧는 하나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선정과 삼매가 다르다고 합니다.
다르다고 하면 다른 것이고 같다고 하면 같을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불일불이不一不異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선정을 닦으면 삼매에 들게 될 것이요, 반야를 닦으면 지혜가 드러나게 됩니다. 씨앗과 열매가 다르지 아니함을 알게 합니다. 몸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의 주체主體인 본성本性이 몸에서 이탈되면 혼백魂魄이니, 영혼靈魂이니, 넋이니 하는 것과 같이 몸과 마음도 소중한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느 스님께서는 어설픈 사람을 만나면 ‘저놈은 죽어서 지옥도 못 갈 놈이다’하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어린 마음에 놀란 것은 사람이 죽어서 가야되는 곳 중에 제일 험한 곳이 지옥이라는데, 지옥도 못 간다고 하면 그는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그때, 어린 마음에도 ‘구천九天에 떠도는 영혼은 더 무섭고 겁나고 두려운 세상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율을 닦는 것은 이 몸이 나고 죽음 속에 있으면서도 고요하여 편안해지는 수행이요, 선정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한 수행이며, 반야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트리기 위한 수행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는 광명光明입니다. 그리고 안목이 있으면 의심하지 않습니다. 모르니까 의심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깊은 밤에 산길을 가다 보면 자기 발자국 소리에도 누가 따라오는 것처럼 놀랄 때가 있습니다.
작은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시야가 작을수록 더 두렵고 겁나는 환상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사물을 보고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 휙! 하고 따라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느낌은 마치 겨울 산자락에 잔설이 남아있는 봄기운처럼, 눈(眼)의 기관이 감지하는 순간, 빛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인식기관이 기억하게 하는 사물들은 사실처럼 우리를 착각 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도 본래 자기 성품인 불성佛性을 보기 위함 입니다. 불성을 보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인 보리를 구하기 위함이요, 위없는 대열반大涅槃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어야 열반涅槃이나 극락極樂에 가는 줄 압니다. 여러분! 살아서 극락 가는 게 좋겠습니까? 죽어서 극락 가는 게 좋겠습니까? 살아생전에 극락에 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반과 극락이 우리와 서로 떨어져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자기의 업業을 험하게 지으면 지옥에도 못 간다고 하였는데, 지옥도 못 가는 인생, 구천에 떠도는 인생이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깨달음에 대한 확신과 신념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지혜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능엄경楞嚴經》에는 금金은 본질이고 모양은 형상이라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눠서 생각하지 말고 다듬어 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릇에 담긴 깨끗한 물처럼,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쓰임새 있게 보듬어 가면, 건강한 몸과 마음은 혼란스럽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금은 본질 입니다. 금으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금으로 다른 모양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결국 그 재료는 금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음으로부터 시작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합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항상 불보살님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도반이 되어 탁마하는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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