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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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갖춘 삶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군종교구장


인도의 고대설화집에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지혜智慧와 덕망德望, 이성理性과 정의正義로움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게 사는 법은 사회적인 덕망을 갖추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실천하는 정의로움입니다. 
반면에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은, 현실에 안주 하거나 타성惰性에 젖어 무기력無氣力한 불감증不感症으로 게을러지는 것은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의 덕목으로 생계 능력을 갖추고,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며, 다음 생을 위한 저축으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저축의 진정한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선업善業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가장 값지고 귀한 덕목德目으로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군종교구의 소임자가 되어, 바라다보는 군불교의 현실은 너무 무거운 상념想念을 가지게 합니다.
군부대 법당은 45년간 400여 곳에 건립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논산훈련소와 같은 곳의 법당은 잘 갖추어진 사찰이지만, 최전방 부대의 법당들은 종단의 손길도 닿지 않고 외부의 지원도 없어서 고생하는 법사 스님들의 모습은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부처님 전에 서원誓願을 하였습니다.
불보살님이시여. 저에게 화주승化主僧이 되게 하소서.
출가 이후, 승가공동체僧伽共同體의 모습을 다시금 들여다 보게 합니다.
우리 군軍에는 논산훈련소 외에도 신병교육대가 30여 곳에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배출되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전후방에는 사관학교, 군사학교, 부사관학교 등 많은 교육기관들이 있습니다. 전방에 있는 법당들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입니다.
군종교구는 군종법사 스님들의 전법활동에 지원팀이 되어야 합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전도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들의 포교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이 간절한 염원이 전방부대 법당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사부대중은 부처님 전에 발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3대 군종교구장 취임식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젠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늘, 어렵고 힘들고 그늘진 곳을 찾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종단宗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이젠 젊은이들의 병영생활에 따뜻한 기운으로 자양분이 되겠습니다.
불자 여러분.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습니다.”
부처님께 사자후보살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욕심이 적은 것과 만족함을 아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불자야, 욕심이 적은 것은 구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음이요, 만족함을 아는 것은 적게 얻었을 적에 뉘우치지 않는 것이니라.
욕심이 적은 것은 하고자 함이 적음이요, 만족함을 아는 것은 부처님의 일(佛事)만 하고 마음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니라.』
《열반경》
“욕심이 적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니라.”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부처님 일이니 불사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는 일만 하셨습니다. 중생을 위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신 바가 없으셨습니다.
부족해도 근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중생심이 일어나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쁜 욕심이요, 둘째는 큰 욕심이며, 셋째는 욕망의 욕심입니다.
첫 번째의 나쁜 욕심이란 탐욕으로 대중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모든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법이다.’ 하고 외치는 자의 욕심입니다.
두 번째의 큰 욕심이란, 십주행十住行의 수행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어, 무애지無碍智를 가졌으면서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욕심입니다.
구룡사 극락전에는 월하노스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스님 영정사진 앞에는 십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향초를 밝히고 있는 대중들이 있습니다. 그 간절한 모습들은 큰 스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법당에서 예불시간에 언제나 통도사 금강계단 적멸보궁을 귀의처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도사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구룡사는 불보살님 원력으로 이루어낸 불사의 종자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의 욕망의 욕심은 개인적인 마음에서 생기는 욕심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욕심으로 윤회하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나고 죽고, 죽고 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욕심은 적으나 만족함을 아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욕심은 경계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불자여. 욕심이 적은 이는 수다원須陀洹이요, 만족함을 아는 이는 벽지불僻支佛이며, 욕심도 적고 만족함도 아는 이는 아라한阿羅漢이고, 욕심도 적지도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이를 보살菩薩이라 하느니라.
불자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것에도 또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착한(善) 이요, 다른 하나는 착하지 않은 이니라. 착하지 않은 이는 범부凡夫요, 착한 이는 성인聖人과 보살이니라.
모든 성인은 비록 도道의 과덕果德을 얻었으나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며, 말하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시끄럽지 아니하니 이것을 이름 하여 만족함을 안다 하느니라.』
《열반경》
여기에 비추어보면, 조계종단의 승가공동체는 욕심도 적지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원력보살願力菩薩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데에도 두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착한 이이고 하나는 착하지 아니한 이입니다. 착하지 않은 이는 범부중생 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금물을 마시면서 목마름의 갈증이 해소되기를 바라지만, 더 목말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하지 않다는 것은 번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으니 만족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험한 모습을 사탐死貪이라 하였습니다. 죽을 때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며 괴로워하는 욕심입니다.
다음은 병탐病貪입니다. 병들어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탐욕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다음은 노탐老貪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노여움, 분노심憤怒心에서 생깁니다. 그것은 지나친 어리석음과 과욕으로 생기는 탐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늙고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서 만나는 그 당황스러운 일을 보기 전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예외 없이 찾아오는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노병사老病死의 장애를 법답게 살아가게 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오늘은 눈을 감고 오랜만에 상념想念에 잠기어 보았습니다.
국가적으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60년대의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인도印度 다음으로 가난했던 나라였습니다. 세계의 80개국에서 구호물자를 지원 받았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도 그런 어려운 일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놀라는 한강의 기적은 우리들을 2만 불 시대에 살게 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리게 서러웠던 그 시절의 아픔을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모두는 거부장자巨富長者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렵다고 한숨만 내쉬고 있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젠,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과 나누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왔습니다. 구룡사는 도심포교당 세울 때, 그 보시금으로 탁자를 짜고 불상도 모시고 살림살이도 마련하였습니다. 이제, 불전佛田 보시금은 군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1년이면 10만개 이상의 합장주를 불자들의 팔목에 걸어 주고 싶습니다.
가을입니다. 국화꽃 피면 세상은 온통 향기로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두루 갖추신 이여. 몸도 마음도 세상일에 물들지 않고 세상과 다투지 않는 부처님 제자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