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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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사는 것이 수행이요 정진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경涅槃經』에서
“불자들이여, 맑고 깨끗한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치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법경法鏡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치기만 하면 선한 일, 나쁜 일이 분명히 나타나고 가리 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말하기를 법을 들은 인연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대반열반大般涅槃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어느 스님께, “불교는 무엇이요?” 하고 물으니,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무릇 선한 일은 받들어 행하라(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가 “그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겠다.” 하니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 수는 있으나 80의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달라이라마를 찾아뵙고 묻기를 “불교는 어떤 가르침 인가요?” 달라이라마께서는 “불교는 과학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학자가 찾아와서 “불교는 무엇이요?” 하고 물었다면 존자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예! 철학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과학과 철학은 반쪽입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철학은 주관적입니다.
하나로 아우를 때 온전한 불교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거울로 사물을 보면,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정상으로 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 속에 비추이는 사물은 반대로 보일 것입니다.
나의 오른쪽이 거울 속에서는 왼쪽에 있고 왼쪽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울 속에 비춰지는 그 모습에 스스럼없이 적응해가며 쉽게도 정상적인 내 모습으로 거울 속의 나를 인식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온갖 고행을 닦는 것을,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대열반에 들어가는 수행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 정진을 해야 번뇌 망상을 제어할 수 있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드러나는 것이지,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고행일 뿐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고행을 한다고 해서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으로 출가하여 6년간 고행을 하셨다고 하였는데, 인도와 네팔을 순례하면서 목격한 것은 이미 머무르신 바 없는 수행정진을 하셨습니다.
불교의 4대 명절은 탄생일,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입니다. 그 중에 납월 팔일은 성도재일 입니다. 성도하신 지역의 지명은 본래 가야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에 부다가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신 가야라는 뜻입니다. 그 부다가야 주변에는 니련선하 강이 흐르고 가까이에는 가야산이 있습니다. 마지막 고행苦行을 하시던 전정각산前正覺山에서 니련선하 강가에 있는 마을에 소치는 수자타 소녀로부터 유미죽 한 그릇을 얻어 잡수실 때, 동행하던 아약교진녀 등 5명의 고행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구담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타락했다며 곁을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훗날 이런 말씀으로 술회述懷 하셨습니다.
“과거의 어떤 고행자도 이런 고행을 할 수가 없었고 미래의 어떤 고행자도 이런 고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머리를 만지면 파 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만지면 덜 익은 오이를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놓은 것 같고 배를 만지면 등가죽이 잡히고…”
그렇게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습니다. 누구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고행들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지만 몸이 망가져버리면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닦을 수가 없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던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붙들지 말고 오지 않은 시간에 매달려있지 말라. 현재 이 순간을 행복한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공동체가 승가이니라.”
욕구 욕망 욕심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면, 영양소가 적은 음식으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는 선지식과 친근해야 합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 이는 꼭 나한테 이로운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 사람이 길손이 되어 길을 떠나는데 한 사람은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를 본받아 귀감으로 삼으면 그 분이 선지식입니다. 또 한 사람은 어그러지는 일만 합니다. 그러면 그를 경계로 삼으면 그 또한 선지식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들 주변에는 보기에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목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일을 흉만 볼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그런 일은 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경계를 삼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들어야 합니다. 머무르는 바 없는 마음으로 시비하지 않으며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일한 마음이란 한결같은 마음, 변덕부리지 않는 마음, 시비하지 않는 마음, 분별력으로 가름하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는 마음을 두어 생각함입니다. 억념憶念이라고도 하고 염염念念이라고도 합니다. 한결같은 생각으로 염염보리심念念菩堤心하는 것입니다. 횡설수설 우왕좌왕 갈팡질팡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는 법대로 행함을 닦음입니다.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할지언정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일상적인 생활 방편을 들어서 비유하자면 배 아플 땐 배 아픈 약을 먹고 머리 아플 땐 머리 아픈 약을 먹으라는 뜻입니다.


『천수경千手經』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라 했습니다.
진정한 참회는 이런 이치입니다.
어둠에 쌓여있던 동굴에 불을 밝히면, 오랜 어둠에 쌓여있던 동굴도 일순간에 환하게 밝아지는 현상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얽매임이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를 초월하게 됩니다.
대만의 성운대사님은 90세 노스님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 온 불자들과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장애인들을 인솔한 비구니스님이 큰 스님께 여쭤 봅니다.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장애는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가 있습니다. 나를 보세요. 나는 99%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와 있는 것을 뿌옇게 느끼는 정도입니다. 누구 한 사람도 확실하게 볼 수도 없고 귀는 80% 이상의 청각을 잃었습니다. 심장은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고 무릎관절은 인공관절인데도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50년 넘게 당뇨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며, 헤어지고나면 저녁에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자들과 인연을 위해서 틈틈이 붓글씨를 쓰고 계시고 친견하고자 하는 불자들을 위해서는 항상 부처님처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보살이셨습니다. 노환老患으로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장애를 도리어 인생에 친한 벗(도반)으로 삼으라 하시는 가르침에 가슴이 저리어 왔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고 정진하며 청법하는 이런 시간들도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함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함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이제 더 이상 무거울 것이 없습니다. 집착을 여의고 정진하는 성도재일의 참뜻을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신지 6년, 깨달음을 이루신지 4년, 가비라국을 떠난 지 10년 만에 부왕父王인 정반왕과 수많은 대중들을 향해 사자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출가를 하였으며 부처님제자가 되었겠습니까. 친족까지도 아들인 라훌라도 출가하여 절에 와 있었지만, 행동은 천방지축이었습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사미승沙彌僧인 라훌라를 가까이 오게 하여 라훌라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발을 씻겨준 후 라훌라에게 묻습니다.
“발 씻은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아무 대답이 없자 물을 쏟아 붓고는,
“그 세숫대야에 밥을 퍼 주면 먹을 수 있겠느냐?”
또 아무 말이 없자 세숫대야를 땅바닥에 던져서 찌그러트렸습니다.
“아까우냐?” “아니요.”
이에 부처님께서는 어린 사미 라훌라에게,
“네가 노는 품세(행동)가 발 씻은 물과 같고, 네 노는 모습은 세숫대야에 밥 퍼놓은 것과 같고, 너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눈빛들은 찌그러진 양은대야 아깝다는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하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라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큰 뉘우침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밀행제일密行第一의 10대 제자가 되었습니다.
착하게 사십시다. 선근이 지혜에 계합하면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연민심憐愍心으로 가득한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말고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를 모함하지 말라. 객기 부려 만용 피우지 말고 허약해서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다.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들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근본과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 떳떳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근본과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을미년 한해도 선근을 증장하고 수행정진으로 지혜가 가득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착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잘 살았으면 합니다.
착한 사람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살의 자비심입니다.
그 자비심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살 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앞장서서 함께 더불어 배려하며 잘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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