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선불교 이야기
    생활의 지혜
    고전속의 명구감상
    불교설화
    반야샘터
    반야샘터
    자연과 시
    불서
    즐거움을 뿌려라
    건강한 생활
    생활법률상식

과월호보기

선근善根과 지혜智慧로 공덕功德 짓는 불자佛子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가난했던 시절, 어른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였습니다.
추석이라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농경사회에서의 보릿고개는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배고픔의 힘든 고비를 넘기며 지내다가 올벼를 수확하여 햅쌀로 밥을 짓고 김장배추를 솎아 만든 겉절이는 온 동네에 훈훈한 기운이 돌게 하였습니다. 흰쌀밥과 겉절이는 온 동네를 신명하게 하였는데, 요즘은 이웃집의 무슨 음식도 무감각한 것일까, 진한 냄새에 취한 것 일까, 어릴적 구수했던 음식 냄새를 느끼지도 못하고 사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금년추석 연휴에는 고향으로 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면서 절에 못 오는 불자들이 많겠구나 싶었는데, 온 가족들이 하루 종일 초하룻날 보다 더 많이 다녀갔습니다. 법당에 다녀가는 불자들의 모습은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
“사리불아, 저 부처님 세계에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연주되며 대지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으며, 밤낮으로 하늘에서 만다라 꽃이 내려오는데, 그 나라 중생들은 새벽마다 바구니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담아 가지고 다른 세계로 다니면서 십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침 먹을 시간에는 본국에 돌아와서 공양하고 거니 나니, 사리불아,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장엄으로 이루어졌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본국은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 중생들은 꽃을 담아 가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침 먹을 시간에는 본국으로 돌아온다 하였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십만 억 불국정토를 지나가야 하는데 거기에 사는 중생들은 신심으로 새벽마다 다른 세계에 다니면서 공양 올리는 부지런한 모습은 찰라 지간에 다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공양은 나눔입니다. 내려놓음을 말합니다. 그런 일은 가난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부자라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근과 지혜가 있어야 부지런한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발심해서 준비해야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준비는 근검절약이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바라밀을 닦는 것입니다. 부처님 일은 모든 중생을 위하는 일입니다.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으로 발심發心해서 실천하는 보시바라밀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가 이후, 오랜만에 법명法名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사찰을 참 많이 지을 줄 알았다고도 합니다. 이마 정頂자, 집 우宇자의 의미입니다.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던 경봉노스님께서는 어린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홍법(은사스님)이가 욕심이 여간 아니구나. 이름이 정우頂宇라고? 부처님 이마 위에 집(절)을 지으라고.” 하하하 .... 파안대소 하셨습니다.
이름값 하느라고 구룡사 만불전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불교사에 1만 부처님을 모신 사찰은 양재동 구룡사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일산 여래사도 만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신도시 포교당에 모신 원불願佛까지 합하면 최소한 삼만 부처님(三萬 佛)은 봉안奉安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듯이 지장보살님도, 땅 지地자에 감출 장藏자, 땅에 몸을 감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고, 주고, 또 나누어 주고…  굶주린 이에게, 헐벗은 이에게 입고 있던 옷까지 내어주고, 그렇게 나누어 주다 더 이상 주어야할 것이 없었는데, 마치 인도의 자이나교 승려들처럼 무소유의 산림살이가 되었습니다.
지장보살은 땅을 파 몸을 가렸다고 합니다. 지장보살님이 어떤 일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도 지장보살께서는 지옥문 앞에서 그곳을 들고 나는 중생들에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보살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데, 지장보살은 삭발염의削髮染衣하고 있습니다. 근기가 약한 중생들은 인식기관으로 보는 것도 못 믿는 세상이니, 지옥중생地獄衆生들이야 화관을 쓰고 있는 보살을 믿고 우러러 보았겠습니까?
머리를 깎은 모습과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 ‘스님이시구나.’ ‘아 슬프신가보다.’
지장보살이 지옥문 앞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중생들을 위하는 모습은 고달픈 인생이었겠습니까, 고단한 인생이었겠습니까. 
신심과 원력으로 보살의 염원을 담아 일궈왔던 불사佛事들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의 가슴을 쓰다듬어주며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에 머무르는 순간
모두는 내 인생, 내 삶, 내 생활만을 가꾸려 한다.”
내가 태어났다는 생각에 머무르게 되면 살아온 시간들이 아깝고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반문해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보살 중에 지장보살이 지옥문으로 향했고, 법장비구는 48대원을 성취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염원念願을 우리들은 어떻게 갈무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 번만 접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한 번만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천년만년 살 것처럼 힘차게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며 누울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난해서 물질적으로 힘든 이들이 많습니다. 보시하고 공양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복덕과 지혜로 공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환희법열歡喜法悅한 공덕은 승피勝彼하다고 하였습니다.
공덕功德은 나누어주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시샘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심하여 바라밀을 닦는 이들처럼, 가난하여 보시하지 못하여도 보시하는 사람과 같은 공덕을 짓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법당에서 불자들에게 15분쯤 법문法門을 하였습니다.
온 가족들이 다례재를 올리기 위하여 법당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차례를 모시고도 절에서 합동으로 다례재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맹자 어머니는 세 번이나 그리고 학교 옆으로 이사를 하였습니까.
수수지방원지기水隨之方圓之器요, 인의지선악지우人依之善惡之友라. 물(水)은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이, 누구와 함께 어울림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변해지는 인생입니다. 인연법이 만남이며 자연스러운 어울림입니다. 금생에 한 번만 태어나지 않았다고 다짐하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은 앞장서서 해주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은 나누어주고 떠날 수 있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출가한지 50년, 구룡사에서 30년을 살아오면서 길 잃은 나그네가 되어 인연을 깊은 불자들에게 시詩 한편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나는 당신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만났을(발견)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랄루딘루미-


그렇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 수행은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수행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삭발염의하고 슬피 눈물을 흘리는 출가자의 비원悲願은 대원본존 지장보살의 염원念願이었습니다.
군종교구에서 후쿠오카, 정토진종 정행사正行寺에 예비역 법사님들과 다녀왔습니다. 30여 명의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감격, 감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정행사 대중들의 신심과 원력이 생활화된 친절함과 자상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덕목德目일까요. 그곳은 살아있는 공동체의 환희한 모습이었습니다. 
뉴욕 원각사 대웅전 불사도 원만히 회향되길 발원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