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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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면목本來面目이 참 마음(眞心)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와 인연 맺고 그 많은 불사佛事에 동참해 주신 불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0여 년간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모든 불사는 불자님들의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의 힘이었습니다. 신심은 불성佛性을 믿는 마음이며, 신심은 불이不二이고, 불이가 신심이며 인과 因果를 믿는 그 마음이 신심입니다.


“한 부처님 출현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중생 타락하면, 많은 이들이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한 가정에도 한 사람이 잘못 되면, 온 가족이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일들을 우리는 다반사로 바라보게 됩니다.
중생심衆生心은 내관 사유하는 힘이 없고 밖으로만 구하려고 하는 생각들이, 번뇌와 망상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보리심菩提心을 방편이 되게 하고, 지혜智慧의 통찰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물질적인 현상을 색色이라 하였습니다. 인식기관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공空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색은 있는 현상이며 공은 있는 그대로 입니다. 색과 공이 다르지 않으며 공과 색이 다르지 않습니다.
공을 유무有無의 공으로 분별하는 허망한 생각으로는 공성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살필 수 있는 노력이 불자의 수행이고 정진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을 의심이라 합니다. 그런 의심은 보고, 듣고,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실인 양 착각하여 스스로 믿는 것을 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개는 의심하지 아니함이 의심이니라.” 


나는 너 의심 안 해.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상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양극兩極은 서로 통한다고 하였습니다. 수사관의 눈빛과 도둑의 눈빛은 얼굴을 가리고 두 눈만 보게 하면, 누가 도둑이고 누가 수사관인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도둑을 잡으려는 생각과 남의 물건을 훔치려는 생각이 같기 때문입니다.
도인의 눈빛과 정신적 장애인의 머무르지 않는 눈빛도 동일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연민심으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머리로만 살 수도 없고, 가슴으로만 살 수도 없습니다.
어느 때는 생각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일들이 훨씬 더 정답일 때가 많습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는 습관이 우리를 훨씬 더 자유롭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불교佛敎에는 문사수聞思修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들을 문聞자, 생각 사思자, 닦을 수修자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 지침서로 많이 가르치고 있는데, 『반야부』 경전에서는 “반야에 문자반야 文字般若가 있고 실상반야實相般若가 있으며 깨달음의 관조반야觀照般若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천수경千手經』을 암송하면서도 항상 경전經典을 펴놓고 기도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습관이고 올바른 자세입니다. 경전을 보면서 기도를 하게 되면, 눈으로는 보고 입으로는 염송 念誦하고 귀로는 들으며 뜻을 헤아리게 되는 문자반야는, 글자를 읽으면서 보고 듣고 익히고 염불하며 깊은 뜻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실천 하고자 노력하는 출발점이 문자반야에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업과 두려운 업을, 인생을 모르고 사는 업業이 가장 무거운 죄업이 되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문자반야를 익히고 실천하게 되면 실상반야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바라밀다인 실천덕목, 반야지혜般若智慧입니다.
마음 없는(無心) 마음이 참마음(眞心)입니다. 그것은 한결같은 마음, 분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마음이 참 마음이요 그 참마음을 관조반야라고 합니다.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어지듯,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어져 어느덧 구룡사의 30년, 더러는 고단했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시간들이 고달픈 인생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소중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집착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생활들이 진정한 공부이었습니다. 언제나 듣고(聞) 생각(思)하고 닦는(修) 수행이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은 간절히 느끼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한 세대 전, 구룡산 자락 천막법당 2층집 세 얻어 살고, 가건물 법당에서, 만불전 법당 불사의 꿈을 키우며 기도하고 있을 때, 부처님 금란가사 친견법회를 허락해 주신 방장스님, 주지스님, 통도사에서 함께 올라와 열악한 환경 속 합판으로 지은 가건물 법당에서 염원했던 우리들은 미래불교의 꿈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을 발원하는 기도는 행복의 문이었습니다.


그때의 어린 사미 각성은 사십대 중반, 조계종단의 중진스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 복밭이고 선지식이었습니다. 내가 찾아 나서지도 않았는데,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찾아와서 나에게 바른 법에 들게’ 하였습니다.
수인스님, 화곡동 보살님, 먼저 떠난 이 거사, 종무소에 근무하였던 선생님들, 성견, 각심, 성륜, 원석이, 그 많은 인연 속에 함께하는 대중들과 종무원, 유치원, 어린이집 선생님들, 후원 봉사자 보살님들, 기사님, 불교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불자님들, 합창단원, 만불전법당과 극락전, 결혼상담실, 진리의 전화, 서점, 공양미, 꽃 공양 팀, 반야샘터의 봉사자들은 지금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료실 앨범에 있는 백고좌법회 사진을 보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룡사는 신심으로 발심한 불자들은 화엄경산림법회에서 보리菩提의 새싹을 키우던 생활불교인들의 만남의 장이요, 이 시대의 진정한 선지식이었습니다.


작년부터 몸이 무너지는 것을 느낍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종단 제도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구룡사 불자들은 울타리가 되어 주셨고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많은 스님들과 인연 있던 불자들은 믿어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걱정 해 주시던 불자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
그 무렵, 신도시에 세우던 포교당과 유치원들은 …, 회사가 법정관리로, 법원의 파산 선고가 나오면, 그 회사에 갚아오던 분양금은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무 행정에 밝았던 성화스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포교당은 어찌 되었을까? …
신도시 포교당과 유치원을 그 회사에서 그냥 주었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분양금은 이자까지 다 갚았습니다. 불사를 공짜에 목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룡사는 포교당 불사 중에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시주를 요구 한 적 없습니다.


저는 92세 되신 노 보살님(老母)을 구룡사에서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공양시간에 후원에 가서 앉아있으면 어찌 아시고 방에 늘 들어오십니다.
절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공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후원에 내려가서 공양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 하십니다.
불자佛子이신 보살님이 아들인 스님을 바라보시는 눈빛과 출가한지 오십년이 되었어도, 스님인 아들을 바라보시는 눈빛은 언제나 젖어 계십니다.
초로初老의 아들인 스님, 남아있는 시간으로 지켜주지 못하고 가셔야 하는 것을 근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절에 계시면 편안해 보이십니다. 이른 아침이면, 향, 초, 공양미 봉사를 하시다가 나를 만나면 그날의 일들을 자랑 하십니다.
구룡사에 오셨다가 보살님을 만나시면 웃음으로 미소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대사님은 부처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불자들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면목 없다고 표현 하셨습니다. 그동안 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불자님들의 신심과 원력은 저를 다시 보게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사 한다고 너무 힘들게 해드려서 면목 없었습니다.
남은 인생 우리 함께 더 많은 곳을 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