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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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過去의 업業은 현재現在의 내 모습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우리나라의 사계절四季節은 24절기로 보통은 보름간격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겨울에도 삼한사온三寒四溫이어서 사나흘 날씨가 추우면, 사나흘은 따뜻한 남동풍이 불어오고, 한여름 삼복三伏더위에도 북서풍이 불어오면 선선한 기운이 배어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은 아열대지방의 열풍이 지속적으로 머물러 처서處暑가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무더운 열대야는 수그러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기적인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 생태계 파괴가 지구의 온난화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친 환경적인 친화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불자佛子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하고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염원念願하며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일상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 열 개開 자, 보일 시示 자, 깨달을 오悟 자, 들 입入 자. 그것은 진리眞理의 실상實相을 열어 보이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업력중생業力衆生과 원력보살願力菩薩이 있습니다.
업력중생은 윤회輪廻하는 삶을 살아가고, 원력보살은 환생幻生하여 중생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주고자 노력하는 보살행원이 있습니다.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으로 발심發心하여 구법求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살행菩薩行은 이타행利他行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둘이 아닙니다.
“내가 중생을 이끌어 완성시키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이끌어 완성시키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조복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조복하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교화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교화하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깨닫게 하지 아니하면 누가 있어 깨달음을 얻게 하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청정케 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맑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이것이 내 의무요 내가 응당히 해야 할 일이다.”                                                 『화엄경華嚴經』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만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만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가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변별력辨別力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無智하면 항상 번뇌의 욕망으로 망상만을 일으키며 살 뿐입니다.
며칠 전, 통도사에서 산중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숲 가꾸기 하던 소나무 길이며, 유휴지에 심었던 연蓮꽃들이며, 산불 방지용 저수지며, 도량을 정비했던 공간들, 아직도 자연과 호흡하며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것을 보는 기분은 ‘아, 그때 그 일들은 참 잘한 일이었구나.’ 하는 보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세심한 농부의 정성과 보살핌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자라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신심信心과 원력願力, 정진精進과 회향廻向이 그것입니다.
1년 농사는 씨앗을 뿌리고, 10년 농사는 나무를 심고, 100년 농사는 인재불사人材佛事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씨앗이라고 다 열매를 맺지는 않습니다. 열매를 맺었다고 모두 다 종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농부가 땀 흘려 농사를 지어 결실을 맺은 곡식이라 하더라도 다음에 종자가 될 수 있는 씨앗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저 다양하게 세상에 쓰여지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금金이라는 재료도 어떤 모양이 되느냐에 따라 반지도 될 수 있고, 귀걸이가 될 수도 있고, 불상佛相이 되기도 합니다. 금은 언제나 금이지만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상에서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이 본래 우리의 고향입니다.
보살행을 실천하면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따뜻한 기운이 발현될 것입니다.
높은 산 정상頂上에서 무거운 짐 내려놓으면 벼이삭 익을 때 부는 시원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가벼워지게 할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착한 사람이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밥상에 앉으면 밥 먹기는 수월합니다. 그렇다고 밥상에 앉아 있다고 저절로 배가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인생살이는 녹음테이프 틀어놓은 것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저 사람은 참으로 무지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이의 무지함은 목격하면서도 자신의 무지몽매無智夢寐함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함께 살고 있는 좋은 인연들이 서로가 서로를 일깨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심下心과 인욕忍辱으로 살아가는 노력이 수행이고 정진입니다.
생각하는 것들을 얻기는 쉬우나 지키기가 어려운 일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위대한 삶을 살지 않더라도 참자유인의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너무 가지고 있다면 조금씩 내려놓고 서로 나누어주며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내가 지은 업業은 환생과 윤회를 하게 합니다. 그 업이 선업善業이었을 때는 보살의 원력이 되어 꽃피워지겠지만, 그 업이 악업惡業으로 전락해버리면 육도六道를 윤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업은 현재의 내 모습입니다. 내 삶을 결정짓게 합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면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면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현재의 업은 과거의 업과 결합해서 미래를 결정짓고 있습니다. 내가 지은 과거의 업은 반드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정진하고 함께 발원할 수 있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