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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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열반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코로나19 신종독감 확산으로 인터넷과 유튜브로 법회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부처님 출가일로부터 열반재일을 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신종 바이러스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불자들에게 연민심憐愍心으로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이 공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속히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염원합니다.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아약 교진여阿若.陳如 등 다섯 수행자에게 연기법을 설하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었습니까. 2,600여 년 전, 이 세상에 오셔서 함께 하신 80여 년 생애 속 시간들을 드려다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다가야에서 도를 이루신 이후, 사르나트 녹야원鹿野園에서 교진여 등 다섯 출가자에게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와 12연기의 설법을 설하시며 승가僧家공동체인 교단敎團이 설립되었습니다. 영축산靈鷲山은 『법화경法華經』 설법지이기도 하지만,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세워진 곳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도량을 빈비사라왕이 헌납한 땅에 세운 죽림정사입니다.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8년 동안 설법하시고 쿠시나가라 사라쌍수娑羅雙樹 밑에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불기 2564년 전 2월 보름날이었습니다.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1년 가까이 쿠시나가라로 가시던 그 길은 청년시절 고행자苦行者의 길을 걸었던 길이시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가비라국 룸비니 동산을 향해 누우신, 열반하셨던 그 모습은 드라마처럼 가슴속을 스미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40여 년 전, 단수여권으로 혼자서 인도와 네팔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걸망에 작은 목탁하나 지니고 다니면서 순례지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라에 있던 법당,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룸비니 동산을 향해 누워계셨던 부처님을 뵙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전, 오대산五臺山 상원사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도 불자들과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왜 우는 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흐르던 그 기억은 지금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다가 더러는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몇 시간을 엎드려 눈물이 흐른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청년 이었던 정우頂宇는 그 불종자가 싹트기 시작 했던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 아난존자阿難尊者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나는 이제 늙고 기운이 쇠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근근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겨우 움직이고 있다.”


사라쌍수 앞 법당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그 청년은 아마도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부처님께서 영축산을 떠나 쿠시나가라까지 오셨으나, 태어나셨던 가비라국을 목전에 두고 열반하시면서 룸비니를 향해 누우시었던 모습에서 세존의 인간적인 고뇌와 생전에 패망한 가비라국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564년 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사라쌍수 나무 밑에 누우셨을 때 아난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자 아난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울지 말아라. 가까운 사람과 언젠가 한번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因緣이다.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대는 그동안 나를 위해 수고가 많았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더욱 정진하여 성인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여라.”


성인聖人의 도道란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를 닦는 것이 성인의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난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면서 부처님 열반 하신 후를 걱정하며 장례절차를 여쭈어 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그대들은 출가수행자다. 나의 장례 같은 것에는 상관하지 말아라. 그대들은 오로지 진리를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여래如來의 장례절차는 신도(재가자)들이 알아서 치러줄 것이니라.”


태자로 계셨던 가비라국은 부처님 생전에 이미 사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은 희생되었습니다. 부처님과 같은 종족인 샤카족은 코살라국으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겪고 나라는 패망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가시던 길에서 룸비니를 불과 150여km 남겨두고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밑에서 룸비니동산을 향해 누우시고 열반에 드셨던 것입니다.


포교당에서는 부처님 출가일부터 열반재일까지를 경건주간으로 정하고 평상시보다 더 각별한 발심 기도정진을 하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불자들로 법당은 가득 차 있었을 텐데,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사태로 불자들의 정진기도는 중지하고 대중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정진법회를 하였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서 붓다TV와 인터넷 홈페이지, 유튜브 방송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비록 법당에서는 모이지 못하였지만, 우리도 부처님같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잃지 않기를 염원하였습니다.


여래세존如來世尊께서 열반하시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마지막 모습을 뵈려고 불자들이 모여 들자 시봉하던 이들이 차단하려하고,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타이르시며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들을 막지 말아라. 그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그들은 내 말을 들으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정한 음성으로 그동안 내가 설한 가르침에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걱정하지 말고 어서들 물으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대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대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和合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라. 물과 우유처럼 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교법을 지키고 배우며 수행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원융圓融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시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사부대중이 화합으로 원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떠나시는 것을 보고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열반은 번뇌 망상煩惱妄想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떠남을 보고 죽음으로 알지 말아라. 열반은 죽음이 아니니라. 이렇게 살아가면 설사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나와 함께 하는 것이요, 이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있어도 그림자와 발자국처럼 함께 하여도 그는 멀리 아주멀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이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의 길에 살아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가르침을 마지막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까 언젠가는 돌려주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도 육신肉身을 근본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법신法身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이번 열반재일에 잘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유마경維摩經』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사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열반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나고 죽는 생사 바다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보살의 행원이다.
모든 중생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원이다.”
『아함경阿含經』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은 땅과 같다. 그리고 착한 생각은 벼 이삭과 같고 악한 생각은 잡초와 같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잘 익은 벼를 수확하기 어렵듯이 우리들이 악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하며 성냄이 있으면 모든 것은 가시덤불 속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같다.”


소나무 잣나무는 산에서 엇비슷하게 잘 어울려 잘 사는데, 난초와 잡초는 서로 겁내고 무서워한다는 옛 가르침이 있습니다.
난초를 아는 이가 있으면 잡초는 뽑힐 것이고 잡초가 무성한 곳에 난초는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인생이 진정한 우리 생활에 지침이 되는 것인지 출가에서 열반재일로 이어지는 경건 주간에 정진하면서 서로 서로 탁마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