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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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모든 일은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전설에 따르면, 중국의 전한(前漢) 시대에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18만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산 사람을 일컬어‘삼천갑자(三千甲子 : 3천년×60갑자=18만년) 동방삭’이라고 했습니다. 그 보다 더 오래살수있는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3년고개에서 구른 할아버지’의 전설입니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3년 고개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그 고개를 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서 3년 후면 죽게 될 자신을 한탄하다 결국 앓아눕고 말았답니다. 이 소문을 들은 한 소년이 찾아와 말하기를, ‘3년고개에서 한번 넘어져 3년을 살면, 두 번 넘어지면 6년을 살 수 있으니, 다시 가서 넘어지세요.’라고 했답니다. 그 말이 그럴 듯하여 3년고개로 가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아예 굴렀답니다. 전설대로라면,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경인년 입춘과 정월을 맞이하여 삼재팔난소멸기도(三災八難消滅祈禱)와 수복강령불공(壽福康寧 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佛供) 등을 올리고 있는 불자들을 보면서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일단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처럼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명(文明)은 숨 가쁘게 변해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같은 사안을 가지고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처럼 180도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불자님들께 권합니다.


“일체의 모든 일은 자기의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삼재팔난소멸기도를 드리고 수복강령을 바라는 불공을 올리더라도 지금 당장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기도와 정진에 임해주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를 따질 때 서양과는 달리, 어머니 태중 속에서의 10개월도 나이로 쳐서 생명에 대한 존귀함과 이치를 잘 알고 있는 민족입니다. 이는 불교적 사고에서 나온 나이 계산법인데, 그러한 계산법에 따라서, 마치 31일에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밤새도록 날아서 다음날 미국에 도착해서 보면 또다시 31일 이듯이, 시간관념(時間觀念)도 그렇게 폭넓게 보고 기도와 정진을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시간은지구돌아가는 것에 비례해서정립되기마련입니다. 옆을보지못하도록눈옆에덮개를 가려놓은 경주마처럼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아쉬운 점, 미진한 점을 발견하게 되면 결국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릴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前後左右)도 살피고 미진한 것이 있으면 보완 해가면서 살 수 있는 지혜(智慧)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 신시(神市)가 공연한‘엄마를 부탁해’라는 연극을 보았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가깝게는 우리가 살아왔던 불과 몇 십 년 전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몇 십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우리들은 자동차, 비행기, 전화기, 전기, 컴퓨터 등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 속에 현재의 우리 모습이 있기까지는 수천, 수만 년의 세월 속에서 물질문명(物質文明)의 변화가 오늘의 우리들 시대로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여유와, 현재의 모습에서 전후좌우를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인생 수업》에,「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나 자신만의 여행이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일체만상(一切萬象)이 다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겁고 힘든 것이 있다고 느끼면, 그럴 때일수록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내려놓고 시작해보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인생에 삼재라는 장애물을 설정해놓은 것도, 삼재라는 설정된 장애물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해보고,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지혜요 방편입니다. 경주마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다가 이내 생(生)을 마감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살지 말고, 중간 중간 삶을 점검하면서 살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불자(佛子)입니다. 현재의 날씨가 우중충하다고 해서 해가 안 뜬 것은 아닙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있다고 하더라도“해가 어디쯤 떠있을까”


를 관념으로 생각해보면 엇비슷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내 모습이 있기까지는 전생(前生)으로부터 갈고 닦고 일궈 온 것들이 모두 묻어있게 마련 이웃과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45년이나 되었는데, 연극을 보고 있는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그 모든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문득, 최인호의 산문집《산중일기》중 평소 좋아했던 구절이 생각나 살을 붙여 되뇌어보았습니다.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이라면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할 것입니다. 눈에서 멀어졌다고 마음까지 멀어진다는 것은 참사랑, 참우정이 아닙니다. 참사랑 참우정이라면 눈에서 멀어지면 멀어진 만큼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과 우리의 관계, 여러분과 저와의 관계 …, 저는 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나와 인연을 가졌던 이들이 언제까지 나를 생각해줄까 ….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절에 들어와서 궂은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소임(所任)을 맡지 않았을때도 소임을 보고 있는 사람이나 진배없이 사중 일을 했습니다. 쥐구멍이 열렸으면 돌을 주워 쥐구멍이라도 막았고, 나무가 그냥 방치되어 있으면 전지라도 해줬고, 다음 해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꽃나무 밑에 거름을 주었습니다. ‘ 여기는 이렇게 되었으면 …’‘저기는 저렇게 되었으면 …’ 하는 생각, ‘ 울타리를 왜 쳐놓았을까?’‘ 출입금지라는 팻말은 왜 붙여놓았을까?’‘왜 소나무 밑에 홍단풍을 심어 놓았을까? ’‘여기는 은행나무를 심어 놓으면 가을에 참 아름답겠다.’ …
그런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현재 통도사(通度寺)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 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면에서 한시도 놓지 못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소유의 삶, 걸림 없는 삶,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더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삶, 그것이 진정한 출가자의 모습’이라는 생각과 다짐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과 다짐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1년에 1 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물질적인 가치로만 따진다면,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불안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무서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살려서 노력하고,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그럴 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루를 살더라도 사는 것처럼 살고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삼재(三災)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입니다. 올해는 원숭이띠, 쥐띠, 용띠가 삼재가 들었다고 하는데, 이 세 띠만 삼재든 것이 아닙니다. 삼재는 모두에게 매년 다 들어 있습니다. 수재는 늙는 것이요, 화재는 병드는 것이며 풍재는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삼재든 사람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세월을 만나고,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정초(正初)에, 입춘(立春)에 삼재를 만들어 놓은 것은 매사를 살아가면서 전후좌우도 살피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뒤돌아보면서,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면,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힘과 용기와 지혜를 드러내서 열심히,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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