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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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정진하는 불자









   정우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 난득행(難得行)에 대한 답을 하시게 되는데, 보살(菩薩)은 열 가지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열 가지 좋아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바른 생각을 좋아하니 마음이 산란치 않은 연고며, 지혜(智慧)를 좋아하니 모든 법(法)을 분별하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 계신데 가기를 좋아하니 법문 듣기에 만족함이 없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니 시방(十方)에 가득하여 가이없는 연고며, 보살을 좋아하니 자재(自在)하게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문으로 몸을 나타내는 연고며,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좋아하니 한 가지 삼매문에서 모든 삼매문에 들어가는 연고며, 다라니(陀羅尼)를 좋아하니 법을 가지고 잊지 아니하여 중생에게 주는 연고며, 걸림없는 변재(辯才)를 좋아하니 한 글자와 한 글귀의 가르침을 말할 수 없는 시간동안에 분별하여 연설함에 다함이 없는 연고며, 바른 깨달음 이룸을 좋아하니 일체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문으로 몸을 나투어 바른 깨달음 이루는 연고며, 법륜(法輪) 굴리기를 좋아하니 온갖 외도(外道)의 법을 저버리게 하는 연고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 여래의 위없는 법에 즐거움을 얻느니라.』


어찌 좋아하는 것이 이것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화엄경에 나오는 보살이 좋아하는 열 가지를 한 소절 한 소절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고 넉넉해질 수가 없습니다.
먼저 보살은 바른 생각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이 산란치 않게 됩니다.
그래서 원효(元曉)스님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자락(自樂)을 능사(能捨)하면 신경여성(信敬如聖)이요, 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면 존중여불(尊重如佛)니라’ 하신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즐거움과 개인적인 삶을 버릴 줄 알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 사람이 곧 성인이요, 어렵고 힘든 일을 능히 할 줄 알고 좋아하면 그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인은 스스로의 즐거움을 버리신 분입니다. 또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신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인자하고 넉넉하고 너그럽고 포근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법을 믿고 따르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한다면, 우리도 부처님 같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 가족에게, 나 자신에게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근히 감싸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바른 생각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산란하지 않은 연고로 드러나는 현상인데, 그것을 종교적으로 말하면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 불가사의(不可思議)하심을 지니신 분이라고 합니다.
또 모든 법을 분별하는 연고는 지혜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지혜는 수행(修行)을 통해서 생기게 됩니다. 수행덕목(修行德目)이 곧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수행이란 그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에서는 『마음 없는 마음을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마음을 부처님은 『한결같은 마음, 분별하지 않는 마음, 시비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금강경(金剛經)》에서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은 시비상(是非相)이니, 그는 보살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시비에 노출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보살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지혜를 좋아하게 되면 모든 법을 분별하는 변별력(辨別力)이 생기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사실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비는 어떤 것입니까.
뉴욕 원각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점심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남아서 바닷가에 있는 공원을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 바다에 오리도 있고 기러기도 도둑갈매기도 백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백조가 한쌍을 이뤄 바다가에서 유유히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말하기를, 󰡐저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 물갈퀴는 한없이 젖고 있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운 오리 새끼가 훗날 백조가 되었고, 백조가 자기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을 물갈퀴질로 표현을 하지만, 노력하는 발놀림이 어찌 백조만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물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다 자기 움직임이 있습니다. 다만 언어로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표현을 하자니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고 수고로움을 단편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통도사와 인연 맺은 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통도사로 출가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꼬리표로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전라도 스님󰡑이라는 꼬리표입니다. 제 원적지는 전라도이지만 본적지는 통도사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잘해도 못해도 심심해도 오다가다가 장난삼아 듣던 말이 있었는데, 세월을 지내고보니 그 말이 쓴 약이 돼서 도리어 나에게 함부로 살지 않도록 하는 묘약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서도 『장애 있는 곳에서 도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지 마라...』
보살은 또 지혜를 좋아하니 모든 법을 분별하는 연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왕 분별을 하려면 변별력에 있어서 정확하게 판단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모든걸 내려놓으면 다 가질 수 있는데도, 그것을 놓지 못합니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손으로 잡고 물을 마신 뒤 갈증을 해소했다면 컵을 손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갈증을 해소해줘서 고맙다고 계속 컵을 붙들고 있으면 그 손으로는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을 잘 분별해서 할 수 있는 스스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 계신데 가기를 좋아하니 법문 듣기에 만족함이 없는 연고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도량(道場) 좋은 선지식(善知識)을 법 아닌 곳에서 만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를 들어서 백을 보이고 백을 보여서 천을 드러낼 수 있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 한 티끌 가운데 온 우주를 머금음)의 연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길을 떠나야 하는 도반입니다. 그래서 함께 가야할 도반들이 우리들 가까이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도반들은 가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보다 더 소중하고 그보다 더 해야 할 자기도리가 있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자, 그런 불교인, 그런 어른들이 우리들 가까이에 함께 살아야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보리수가 봄에 새순을 틔워낼 때 보면, 두 잎이 정상적인 첫잎으로 될 때까지 서로 감싸고 있습니다. 또 꽃에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잎이 우산처럼 꽃을 가려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식물도 생각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새순을 소중하게 감싸주고 있는 것을 볼 때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식물도 그렇게 배려하고 관심을 표명하고 그렇게 보살핌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의 보살핌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가 그 모습을 찾아보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틱낫한 스님 말씀 중에 󰡒그대가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 그것은 지구 전체에 물을 주는 것이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얼마나 멋진 가르침입니까?
저는 부처님을 천막에 모시고 살던 청년기 때 항상 마음속에 세 명, 네 명의 정우를 끄집어 내놓고 자문자답을 하곤 했습니다. 계단 위에다가 나를 하나 앉혀놓고, 나랑 같이 사는 어린 사미들 방에 나를 하나 놓고, 마루에도 하나 놓고, 방에도 하나 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우 네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냐? 잘하고 있는 것이냐? 이 길이 네 최선이냐? 그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누군가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면 내가 짊어지고, 그 일을 다 마친 다음에는 누구도 맡을 수 있는 일이라면, 스스럼없이 줄 수 있는 나. 늘 아침에 일어나면 천년만년 살것처럼 출발하고, 저녁에 드러누울 때는 오늘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고 드러누울 수 있는 나….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80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인간의수명은 120~130년이라고 합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보다 20~30년은 더 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밝히기를 여자는 20세를 성장기로 해서 그 다섯 배를 살 수 있어서 100세까지 살 수 있고, 남자는 25세를 성장기로 해서 그 다섯 배를 살아 120~13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자들이 더 오래 살고 있습니다. 생리학적으로 남자가 더 오래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어떤 연고로 남자가 먼저 죽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무수한 시간동안 이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지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한 송이의 꽃을 깊이 들여다 볼 때도 우리는 그것이 꽃이 아닌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자연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리고 시간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계속 들여다보니 그 꽃이 거름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알 수 있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또 유기농의 거름도 들여다보니까, 꽃이 되어가고, 과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고독해져가고 있지만 고립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은 날로 발전해가고 있는데, 가정의 달 5월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들어있는 5월에 유독 고독이라는 단어가 사회에 많이 회자되곤 합니다. 그리고 고독(孤獨)이라는 한자어에서 고자를 홀로고자로, 독을 홀로 독자가 아니라 독거노인독자로 풍자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이 풍자는 가까이에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풍자를 들으면서 저는 사람 없는 것의 뜻은 아랫사람이 따라와 주고 윗사람이 보살펴주는 그 공간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몇 십 명 있으면 뭐합니까. 처자권속이 많이 있으면 뭐합니까. 고아원의 아이처럼, 노양원에 방치되어 있는 노인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삶이 바로 고독한 삶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생명뿐만 아니라 또 다른 생명과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러한 생명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날만, 어버이날만, 스승의날만 챙기지 말고 하루하루 매순간순간이 어린이날이요, 어버이날이요, 스승의날이듯이 서로 챙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고기 몇 마리 새 몇 마리 놓아 주는 게 방생(放生)이 아닙니다. 작은 불씨도 인화 물질에 닿으면 활화산 같은 폭발력을 지니는 것입니다. 작은 선근(善根)과 작은 지혜도 중첩해서 드러나면 보살이 열 가지 생각을 좋아하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보살의 바른 생각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이 산란치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