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다시금 새해가 되었다. 조금 있으면 헌해가 될지언정 새해에는 늘 새로운 다짐을 다져본다. 새해에도 날마다 날마다 마음도 새롭게 싱싱해지고 몸도 날마다 날마다 활력 넘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월간 붓다>와 인연이 닿아있는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이 책이 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지구촌과 지구촌이 떠있는 우주 전체에 복덕이 넘쳐 흐를 것임에 틀림없다. 지혜로움과 경제적인 여유도 함께 갖추어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도 여유롭게 흐를 것이다. 저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저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여 기쁨도 배가될 것임에 무슨 토를 달겠는가.
日新又日新 일신우일신
日日是好日 일일시호일
날마다날마다 새로워지면
날마다날마다 좋은날이라네
대학의 구절을 읽으면서 새해를 시작한다.
대학지도 재명명덕 大學之道 在明明德
재신민 재지어지선 在新民 在止於至善
대학의 공부방법은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하는데 있느니라.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구절이 친민親民으로 되어있는데 정자선생이 친은 신으로 읽어야한다고 하였다.
이 대학의 첫 구절에 대한 주자의 해설을 들어보자.
대학자 대인지학야 大學者 大人之學也 
명 명지야 明 明之也
명덕자 인지소득호천이허령불매 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이구중리이응만사자야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대학은 대인의 학문이다.
명은 밝게 한다는 뜻이다.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텅 비어있고 신령스러우며 어둡지 않아서
뭇 이치를 갖추고 있으면서 온갖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허령불매虛靈不賣는 우리의 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텅 비우면 신령스럽게 알아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작용이 펼쳐진다. 어두운 구석도 사라진다. 문제는 텅 비어있는 창고에 욕심이라는 물품을 하나둘 채우면서 시작된다. 기실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자신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경우가 더러 없지 않다. 나 자신만 동여매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남편과 아내와 가족과 연인을 동여맨다. 동여매고 있는 밧줄을 급기야 당기고 당겨서 한 번 더 얽어매면서 내가 그대에게 이렇게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밧줄을 당겨댄다. 확인된 사실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염라대왕도 한국 출신의 동문모임들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고 한다.
새해에는 이런 밧줄 저런 밧줄 다 훌훌 풀어버리고 살아볼 일이다. 명덕明德, 밝은 덕을 밝힐 일이다. 이 명덕은 하늘에서 받은 것이다. 어느 특정인만 받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받는다. 거기에는 온갖 이치와 원리가 다 갖추어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원리와 이치를 5퍼센트쯤 활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험제도는 그 원리와 이치를 밝히고 갈고 닦는 쪽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원리와 이치는 무시하고 단편적인 단순 지식의 조합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가.
그런 와중에도 눈 밝은 대학교수님이 있어서 한시 시험문제를 내놓고 전날 잔뜩 알코올과 데이트를 한 학생이 “시는 술이다” 하고 짧게 쓴 답안지에 에이플러스 학점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원리와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밝은 덕인 마음을 밝힌 만큼 다른 사람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수학문제도 문제를 풀이하는 원리가 파악된 선생님이 설명하면 학생에게 그 원리가 말없는 가운데 전달되지만 답만 외운 선생님이 열 시간 하고 십분 더 설명하면서 목이 쉬더라도 학생은 집에 가서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히고 서로가 다른 사람까지 새롭게 해주면서 우리 모두가 밝아지면 다함께 지극한 선[至善]의 세계에서 함께 노닐 수 있다.
밝은 덕이 어두워지는 이유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위기품소구 인욕소폐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즉유시이혼 卽有時而昏
다만 기질과 품성에 구애되고 인욕에 가리워지면
때때로 혼미해지기도 한다.
벌건 대낮에 보석가게에서 다른 사람이 다 보고 있는데 보석을 들고 그냥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순간에는 오로지 보석만 보이고 가게 주인도 주위의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행기도 보이지 않고 비행기에 탄 수많은 승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만 보이는 사람끼리 마주 앉으면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들어보지 않아도 짐작된다. 우리 가족만 보이고 우리 편인 동문만 보이고 우리나라만 보이고 우리 편인 사람만 보이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주자는 이어서 희망적인 설명을 잊지 않는다.
연기본체지명 然其本體之明
즉유미상식자 則有未嘗息者
그러나 그 본체의 밝음은
일찍이 작동멈춤이 된 적이 없다.
이기적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도 창문이 좀 더 열려서 그럴 뿐이지 사실은 본래 밝음에서 나오고 있는 작용들인 것이다. 그 이기의 폭은 조금만 넓히고 깊이를 차츰차츰 더하게 해주기만 하면 이기와 이타를 동시에 갖추는 작용이 될 수 있다.
지선至善은 만사 사리의 이치가 당연히 그렇게 되게 되어있는 표준이다. 명명덕과 신민이 모두 지선의 경지에 머물러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음을 말하고 있으니, 이 세 가지가 대학의 강령綱領이다. 강은 잡아당겼을 때 그물 전체가 들어올려지는 벼리이고 영은 옷이나 몸 전체를 잡아서 들어 올리는 목부분이다. 대학의 내용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설명되지만 이 세 가지에 전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깨달음도 다르지 않다. 자각自覺과 각타覺他와 원만각圓滿覺에서 자각은 본래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다. 각타는 다른 사람까지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원만각은 그렇게 서로가 밝아지고 새로워져서 지극한 선의 이치에 함께 노니는 것이다.
원효스님도 발심수행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自利利他 자리이타
如鳥兩翼 여조양익
자리행과 이타행을 함께 갖추는 것은
새의 양날개와 같은 것이니라.
새해의 한걸음 한걸음이 자리이타의 걸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