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수필가, 문화센터 강사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라는 유행가 ‘만남’의 한 구절처럼 만남에는 정말로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만남도 있고, 간절히 바라고 꿈꾸어 이루어지는 절실한 만남이 있다. 소위 운명 같은 만남, 피할 수 없는 만남, 우리는 어쩌면 그런 숙명의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는 주어진 각본대로의 연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누구와의 만남은 행복을 배달해주는 집배원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말로 받고 싶지 않은 편지 한 통을 받듯 피하고 싶은 원하지 않는 만남도 있다. 친구, 가족, 이웃 간의 관계에서도 차라리 저 분과는 인연을 맺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주는 만남도 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맺고 싶지 않은 인연, 그것을 소위 우리는 악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고 너무 즐거웠습니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만남을 우리 대부분은 원하고 있겠지만 어디 꼭 그럴 수만 있는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만나기까지, 가파른 길도 걷고 때로는 더럽고 추한 풍경도 지나쳐야 하는 과정을 겪듯 축복의 좋은 인연,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기까지는 원치 않은 만남, 꺼리는 만남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미혼인 젊은이도 원하는 상대를 만나기까지 여러 번의 실망의 계단을 넘어야 하듯, 우리가 평생 살아오는 동안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단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개성과 소질을 제일 먼저 발견해준 분으로 지금까지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신 인생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신 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곁에 계시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미소 띤 인자하신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가끔 커피의 진한 향에 선생님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하얀 그리움과 쓸쓸함이 밀물되어 요동치곤 한다.
이렇듯 친구 간이나 연인 간, 사제지간, 부모자식 간, 부부 간에 서로의 상대를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와 반대로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났네, 나는 왜 이리 인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인생이 지루하고 괴롭고 불행하겠는가?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사회성은 좋아지고 인간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즉 상대방이 밉고 불만스러워도 “그래 저 사람은 여러 가지로 나와 다른 사람이지”라고 인정하면 상대와의 불협화음도 힘들지 않게 넘어갈 수 있고, 짜증나는 인간관계도
“좋지는 않지만 아주 나쁜 인연은 아니야”라며 여유와 너그러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 인연을 맺기까지는 분명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누군가의 뜻이 있을 것이고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인연을 기다리기 전에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아름다운 인연이 되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 봄은 어떨까? 아름다운 인연을 꿈꾸는 모든 자에게 아름다운 인연으로 다가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