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순 민족사 주간
왜 우리 시대에 조선시대 불교사를 알아야 하는가?
중학교 1학년 때 불교를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법열을 느낀다. 부처님의 가르침 덕분에 삶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진정한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1700년 한국불교, 그 빛나는 전통과 반비례하는 듯한 불교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3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답답한 것은 여전하다. 우리 문화재의 70퍼센트가 불교문화재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는 1700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정신과 삶, 문화의 자양이 되었다. 불교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의 DNA 속에 불교가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불교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류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이 착잡했다. 한편 인터넷의 발달로 37년 전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가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 인구는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이웃종교인들의 적극적인 전도공세에 맞닥뜨리면 한때 유행하던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노골적으로 ‘아직도 유일신교를 믿으십니까?’라고 하는 붓다빠이기에 나는 우리나라의 종교 현상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특히 불교를 믿다가 유일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도 인연 따라 갖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인연이 없는 사람은 차치하고, 도대체 왜 교리적으로 훨씬 더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설하고 있는 불교를 버리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유일신교에 빠져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늘의 모습을 보라.
내일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늘을 보라.
위 삼세인과경의 말씀처럼 오늘은 과거와 미래와 함께 연동되어 있다. 현대한국불교사는 과거 조선시대 불교사와 이어져 있다. 오늘의 불교를 과거 조선불교사에 비추어 살펴보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봉춘 동국대 명예교수가 평생을 조선불교 연구에 천착해서 한 권의 책으로 갈무리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는 이 시대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일깨워준다. 올해 이 책으로 불교평론 학술상 대상을 수상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봉춘 동국대 명예교수가 불교평론 시상식 기조강연 때 했던 몇 마디가 지금도 뇌리에 사무친다.    
“오늘의 불교는 조선불교사에서 배울 게 많습니다. 조선불교는 왜 박해를 받았는가? 그토록 박해받던 고난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극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오늘의 불교를 성찰한다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사자신충獅子身蟲, 사자의 몸에서 나온 벌레가 사자를 죽인다. 개인이든 사회든 종교집단이든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현재 한국불교의 현실이 마치 영화필름처럼 스르륵 스쳐 지나간다. 조선시대에 불교는 암울했다. 스님들의 신분이 8천賤의 하나로 전락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책적으로 억압받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연동되듯이 조선불교 또한 바로 이전의 고려불교와 오늘날의 한국불교와 연동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조선불교는 현재진행형이다. 시공간이 다 인과법, 인연법 안에서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 불교를 그토록 철저하게 배척한 것은 고려불교의 인과응보다.
세종대왕은 왜 배불군주에서 흥불성군이 되었을까?
“억불·척불·훼불·배불·파불 등등 조선시대에 불교를 억압하는 단어가 많습니다. 정책적인 이데올로기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지만, 조선시대 내내 외유내불外儒內佛이었습니다. 이념과는 다르게 불교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었지요. 만일 불교가 열등하고 무기력했다면 그 많은 불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외유내불의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철저한 배불론자였습니다. 동진출가를 불허한 것도 세종이었지요. 문자는 권력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만들어졌을 때 세종은 흥불군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글로 처음으로 만든 책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석보상절이었고, 세종대왕이 한글로 월인천강지곡을 직접 짓기도 했습니다. 불교를 통해서 한글을 전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불교경전을 찍는 간경도감이 국가기관으로 탄생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자초, 기화, 보우, 휴정, 유정, 처능 등 당대 선지식들의 흥불興佛의 노력도 들여다봐야 합니다. 조선후기에도 선논쟁도 지속되었고 법통을 확립하는 등 흥불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종대왕은 즉위 초에 스님들을 사대문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도첩제를 실시하는 등 철저하게 불교를 배척하다가 왜 나중에는 스스로 ‘부처님이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을 지닌 월인천강지곡을 직접 짓고, 국가 예산으로 간경도감을 짓고, 불경을 한글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유포했을까? 그 당시 조선이 정책적으로는 유교를 국시로 내세웠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불교를 신행했기에 한글을 손쉽게 유포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널리 펼치고자 한다. 그토록 영민한 세종대왕이 불교보다 유교를 더 중시했다면 한글을 창제한 후 가장 먼저 유교 경전을 번역해서 유포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초기와 달리 중기 이후부터 숭불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을 위시해서 왕실 주변의 종친들 대부분이 불교를 독실히 믿고 있었고, 세종의 비인 소현왕후 또한 신심이 돈독했던 상황, 유신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불사를 한 정황 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승경즉불경僧輕則佛輕하고, 스님이 가벼우면 부처도 가벼워지고,
승중즉법중僧重則法重이라. 스님이 중하면 불법도 중하다.
스님들이 출가해서 처음 배우는 치문에 나오는 이 구절에 답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들이 어설프면 불교도 따라서 어설퍼지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불제자들이 존경받으면 법도 존경받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이 세상 모든 것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관계를 이루는 사람에게서 문제도 생기고 문제 해결의 길도 열린다. 
혹독한 고난의 역사에서 새로운 존재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조선불교사
“조선불교는 불교의 건강성을 되찾은 계기도 되었습니다. 산중불교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수행의 가풍에서 봐야 합니다. 자율경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노력과 자활의 노력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불교는 대중과 가까운 기층불교가 되었습니다. 서민이 벗이었고 지지기반이었지요. 조선불교는 혹독한 고난의 역사에서 새로운 존재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역사였습니다.”
이봉춘 동국대 명예교수는 통사적으로 실증적인 입장에서 자료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꼼꼼히 조선시대 불교사를 연구하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억압의 대상 1호로서 말할 수 없이 침체되었고, 교학적 사상적인 쇠퇴가 있었지만 혹독한 고난의 역사에서 새로운 존재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역사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조선불교의 실상은 어떤 것인가. 억불과 배불은 오로지 정치상의 문제이기만 한 것인가. 이 시대 불교전반을 침체와 쇠퇴로만 규정할 수 있는가. 기존의 시각에 대한 반성적 의미에서 조선불교를 오히려 과대평가하는 듯한 인식은 타당한가. 불교의 본질에 비추어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이 시대 불교의 또 다른 면모는 없는가. 결국 조선불교를 어떻게 성격 지우고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문제의식들 속에서 진행해 온 그동안의 조선불교에 대한 탐구와 천착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다.”
                                                                      -머리말 중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봉춘 명예교수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812쪽에 달하는 두께가 버겁지 않고 술술 읽힐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조선시대 불교사가 펼쳐져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처럼 그 어느 때보다 권승權僧들이 득세하던 고려시대 불교, 그 인과응보로 암울했던 조선불교사가 떠오르는 이즈음 이 책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가 나온 것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 책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를 거울로 삼아 오늘의 한국불교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배불군주에서 흥불성군이 되었던 세종대왕의 변화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면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유리구슬을 취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이 더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