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한국일보 선임기자

중등 교과서에 수록돼 널리 알려진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사랑하고 ‘나’ 역시 사람이니 나도 자유를 사랑해야겠지만, 상대가 ‘당신’이라면 복종이 더 좋다는 저 시의 논리를 우리는 역설逆說이라고 배웠습니다. 일반론에 맞서는 사랑, 예외적인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사랑의 숭고함을 부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시의 당신이 연인이라면 사랑시가 되고, 조국이라면 애국시가 되고, 진리라면 종교적 구도시가 된다고 배웠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누구나 자유를 사랑한다’는 저 시의 전제가 과연 옳은지, 언제나 일반적 가치로 성립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자유라는 말을 억압과 구속에 맞세워 둔다면 누구나 자유의 편을 들 것입니다. 가령 여러 가지 음식을 앞에 두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골라 먹도록 할 때의 선택적 자유를 마다하고 개별적 취향을 묵살한 채 특정 음식을 지정해서 무조건 먹으라고 하는 강압적 지시를 선호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엄연한 진실입니다. 어떤 선택의 경우, 그 선택에 수반되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선택의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권위 있고 정통한 누군가가, 즉 자신의 선택을 대신해줄 무류無謬의 절대자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니게 되는 경우입니다. 어차피 나의 선택이 아니었으니 선택의 무한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기대, 적어도 심정적인 중압감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입니다. 그 때의 자유는 선택을 회피할 수 있는 자유,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자유, 요컨대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자유’일 것입니다. 생각이 그렇게 꼬리를 잇다 보면 저 시의 전제를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고 따를 만한 누군가를 한없이 따르며 복종하는 달콤함은 순간순간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고단한 자유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오히려 그것이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서구 문명과 접촉한 후진국에서 생겨나는 불만은 거만한 외국인의 수탈에 대한 원초적 적대감보다는 부족의 결속과 공동체 생활이 무너지거나 약해져서 오는 불만일 때가 많다고 주장한 이도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서구가 후진국에 제공하는 자력발전이라는 이상에는 개개인의 좌절이라는 전염병이 따라 오고, 서구 문명의 온갖 편의도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익명의 개인들이 누리던 보호와 위안을 효과적으로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서구 식민지 열강은 원주민 사회에 개인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선물을 주며 자립을 가르치고자 했으나 그 결과 나타난 것은 개인의 소외였으며, 근대 이후의 인간은 모두 전인적 공동체에서 잘려나가 ‘무력한 자신이라는 자유’를 향해 내쫓겼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무리로 하나되어 행진하는 군중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동력을 저 보람없고 무의미한 개인적 실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것은 무리 안에서 책임을 나눠지는 왜소한 주체이거나 지도자의 지시에 이끌리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본성적 충동입니다. 우리가 어떤 무리 안의 한 개체로 머무는 한, 우리는 자신의 불안이나 쓸쓸함, 혹은 무의미하다는 슬픈 존재감에서 피신할 수 있습니다. 굳게 맺어진 공동체 안에서 ‘나’는 그 공동체 혹은 무리가 내건 기치, 가치, 지향을 구현하는 존재와 동일시되면서 우람하게 부풀어 오르고, 비로소 혼자 있을 때 느꼈던 볼품없고 쓸모없는 자신으로부터, 요컨대 자유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 심리를 호퍼는 ‘절망적 열정’이라 불렀습니다. 종교적 맹신주의, 볼세비키 운동과 국가사회주의 등 집단 광기의 바닥에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저 절망적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저는 만해의 저 시를 종교적 구도시로 한정 지어 읽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간신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현대적 가치관으로 보자면, 아니 전근대적 사고체계 안에서라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사랑을 찬미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상이 국가나 민족이라면 더 위험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모택동 정권의 문화혁명에 복종하는 것도 긍정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그런 사랑을 맹신의 맹아이자 실체라 배웠기 때문입니다.
만해의 저 시는 어쩌면 복종에 담긴 숭고한 의미와 저열한 의미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일깨움을 던져주고자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경험 안에서 명백한 선과 명백한 악이 맞서는 경우란 드뭅니다. 숭고함과 저열함의 경계 역시 대개는 아리송하고 아슬아슬해서 우리는 갈팡질팡할 때가 많습니다. 불행하게도 종교의 세계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만해의 시 ‘복종’의 화자가 느끼는 저 종교적 복종의 행복은 만해가 갈구했을 해탈과 절대선의 경지를 향한 것일 때에만 아슬아슬하게 의미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오랜 동경처럼,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종교적 이상의 지평으로 아득히 멀리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 끝에 다시 읽는 만해의 시 복종의 감상은 사뭇 달라질 수 있습니다. 책임을 전제한 자유가 주는 두려움 이상으로 복종의 대상을 상정하는 것도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자유와 복종 사이에서 또 권한과 책임 사이에서 우물거리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이라면 저처럼 두려움의 극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호들갑스러운 엄살일 테지만, 그렇다고 무엇 하나를 쉽게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 역시 섣부르다는 생각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난 달 말 조계종 총무원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엄청난 화두 하나를 던졌습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교구본사 주지 워크숍에서 내놓은 ‘교구단위 행정책임제’라는 것입니다. 자승 스님은 “교육과 포교 복지를 교구 단위에서 실현해야 한다”며 “중앙종무기관이 지녀온 말사 주지 인사권과 재정 관련 업무를 점차 교구본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권한과 책임을 분권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속사정은 달리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1995년 산중총회법이 제정되면서 본사 주지 및 국장 임명권이 교구본사로 이관된 만큼 중앙 중심의 재정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데다, 사찰 예산의 일부를 걷어 종단을 운영하는 분담금제도만으로는 비대해진 종무기관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종단의 권한 이양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권한과 함께 따라올 책임과 비용문제로 뒷말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모든 종교의 권위가 신이나 절대자의 권위에서 파급되는 것인 만큼 종교권력도 중앙집중의 형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겠지만, 시대적 요청과 현실적 필요에 따라 권력의 형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총무원장의 저 선언은 종단 전체에 거대한 선택의 과제를 던져놓은 것입니다. 난관이야 많겠지만, 그래서 시행착오도 있겠고 짐이 무거운 만큼 나아가는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겠지만, 권력은 최대한 나누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이라고, 만해의 시를 반성적으로 거듭 읽으며 판단했습니다. 총무원의 선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