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당나라 유종원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 전문을 감상해본다. 누추한 집에 걸어놓은 글이라는 뜻이다. 구중궁궐 99칸짜리 대궐의 건물도 아미타세계의 건물에 비하면 그저 누추한 초막집일 뿐이다. 중국의 어느 사신은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경복궁을 방문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조선에 갔더니 삼각산 아래에 집 몇 칸 지어놓고 왕이 사는 왕궁으로 부르더라고 써놓았다는 얘기를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유우석이 살았던 집을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고 싶지만 타임머신 승차권 판매하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
山不在高 有仙則名
산부재고 유선즉명
水不在深 有龍則靈
수부재심 유룡즉영
산의 가치는 높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니 높든 낮든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고
물의 가치는 깊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니 깊든 얕든 용이 살고 있으면 신령스러운 물이다.
강감찬 장군이 중국사신이 왔을 때 허우대 좋은 부하에게 장군복장을 하게 하고 말에 태우고 자신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말고삐를 잡고 중국사신을 만나러 갔다. 그 사신이 말에서 내려 다가오더니 말 위에 앉아있는 허우대 좋은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고삐를 잡고 있는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강감찬에게 공손히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장군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요즘 나날이 해피하십니까.” 중국의 사신은 패션에 걸리지 않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
斯是陋室 惟吾德馨
사시누실 유오덕형
이 누추한 집에
오직 나의 덕의 향기가 가득 차 있을 뿐이다
苔痕上階綠 草色入廉靑
태흔상계록 초색입렴청
이끼의 흔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푸르르고
풀빛은 주렴을 통해 들어오면서 파랗다
이글을 지은 유우석의 덕의 에너지가 집안뿐만 아니라 집밖 주변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상上 자는 이 대목에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시선의 처리를 묘사하는 동사적인 용법으로 해석해야 이 문장이 다이나믹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시선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그 찰나 동시에 풀빛이 무심한 나의 눈동자로 스펙트럼을 보내주는 것이다.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담소유홍유 왕래무백정
담소를 나눔에 큰 선비가 있고
왕래하는 사람 중에 백정은 없다.
이 집을 드나들면서 담론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반야법회와 화엄법회를 하는 사람들 중에 교양이 덜 갖추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
可以調素琴 閱金經
가이조소금 열금경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무사죽지난이 무안독지로형
이 집에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조율할 만하고
진리가 담겨있는 경서를
열람할 만하니
음악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는 일도 없고
공문서가 봄을 수고롭게 하는 일도 없다.
줄 없는 거문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나뭇결에 달빛이라도 스며들라치면 그 아니 정취로운 일이겠는가. 아무 날 몇 시까지 원고마감입니다 하고 재촉이 오는 일도 없다. 사絲는 현악기이고 죽竹은 관악기이다. 현악기나 관악기나 전자기타, 색소폰 소리도 이집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나뭇가지에 비쳐드는 달빛 기타줄을 바람이 퉁겨서 잎새를 통해 소리를 내는 일마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 별빛 바이올린 줄에서 나는 소리가 달빛 기타줄 소리와 화음을 이루었는지 말았는지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아예 글자가 없는 경전도 있다.
我有一券經 不因紙墨成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지필묵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서
펼쳐 봐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대광명을 뿜어낸다네
불가의 게송이다. 누실명에 등장하는 금경金經도 아마 이와 비슷한 명서였을 것이다.
이제야 사람 인人 자가 책이나 바닥에 써져있는 글씨가 아니라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 자체가 사람 인 자라는 것이 설핏 눈에 들어오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절묘한 라인으로 패스를 해주고 다른 선수가 슛팅을 해서 골망을 흔든다고 할 때 바로 그 패스 줄기와 슛팅 줄기가 합쳐져서 비로소 사람 인人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입으로 ‘불’ 하고 발음하는 ‘불’이라는 소리가 불이 아니고 라이터를 철컥 켰을 때 석유냄새와 함께 올라오는 기체의 뜨거운 집합체가 불이다. 지금 원고를 쓰느라 ‘불’ 자를 원고지에 여러 번 쓰고 있지만
‘불’이라는 글자가 원고지를 태우지도 못하고 컴퓨터 화면에 자판으로 ‘불’ 자를 써도 컴퓨터 화면을 태우지도 않는다. 한자공부를 아예 처음부터 새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이제 누실명의 지은이는 자신의 집을 역사적인 인물들이 거처했던 집에 비유한다.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남양제갈려 서촉자운정
남양땅에 살았던 제갈공명의 초막에
비길만 하고
서촉에 살았던 양자운의 정자에
비길만 하다.
조선시대의 갑부도 이렇게 편한 시스템의 아파트시설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평수에 관계없이 고려시대 고관대작도 활용하지 못했던 네비게이션이 차종에 관계없이 자동차마다 부착되어 있다. 제갈공명의 초막집에는 형광등도 없었고 양자운의 정자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孔子云 何陋之有
공자운 하루지유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군자가 거처함에)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공자님이 변방에 가서 거처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이가 그 누추한 곳에 가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君子居之 何陋之有
군자거지 하루지유
군자가 거처함에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아무리 험악한 예토라 할지라도 대승보살이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환한 정토가 틀림없이 된다. 봄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