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신강호 육군 일병(6군단)

해동을 알리는 단비가 토양을 적시고 태양도 때가 되었는지 한껏 열을 올리고 있네요. 이제는 매섭게 부는 칼바람마저 몸을 씻어내듯 상쾌하고 시원하기만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밖으로 나가려면 여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내성이 쌓인 것일까요, 아니면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니 미운 정마저 든 것일까요,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합니다.
아직도 초록은 나타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날이 갈수록 앙상한 가지에 잎사귀가 돋아나고 꽃 내음이 진동할 거라는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봄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더 외롭고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합니다.
새로 설치된 영상 전화기로 새해 인사를 드렸었지만, 편지로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안부 인사를 하고 싶네요. 엄마 아빠,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더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 올립니다.
2016년도 벌써 2월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일병이라는 새 계급장을 받고 보니 그동안 했던 이병생활도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요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하거나 가만히 있지 않고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제가 할 일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나면 하루가 끝나있고, 이렇게 1주 2주 쌓이다보면 또 3월이 되고 4월이 되겠죠?
선임들이 시간 잘 간다고 말할 때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라고 되뇌이곤 했었는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빠르게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아요.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군 생활이 500일도 남지 않는다는 게 신기합니다. 시쳇말로 500대가 깨진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시간이 더 잘 간다고 해요. 진짜 얼마 안 있으면 전역하는 거 아니예요. ㅋㅋ
꿈이 너무 크죠? 그만큼 사회의 품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내년 설 때는 휴가내서 친척분들도 뵙고 우리 가족들이랑 오랫동안 있고 싶어요. 이번에 나간 신병위로휴가는 엄마 아빠 두 분 다 일하러 가시고 바빠서 많이 얘기도 못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던 게 마음에 걸리네요. 다음번에 휴가 나갈 때는 엄마 아빠 창호도 미리 약속시간을 정해놓고 나가야겠어요.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가족끼리 나들이도 나가고 놀러 다니면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내년이면 창호도 수능이 끝나고 시간이 많을 테니 같이 여행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부대 안이라 찾아보기 힘드니까 맛집은 미리 찾아두셔야 해요! ㅋㅋ
요즘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보고 있어요. 그동안 저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제 삶을 되돌아보니 군대 들어오기 전보다 눈에 딱 보이게 나아진 게 몇 가지가 있어요. 그 중 하나는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 것이에요. 메모를 하다 보니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되는 게 가장 나아진 부분인 것 같아요.
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공부도 운동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일로 미루고 모레로 미루곤 했는데, 군대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하다보니 제 일상생활도 그렇게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매일 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다음 휴가 때는 덩치를 많이 키워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가도록 노력할게요. 기대하고 계세요!!
부대와 집의 거리가 먼 보통 병사라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이런 표현을 써야할 것 같지만, 저는 집에서 부대까지 거리가 그리 멀리 않으니 ‘조만간 또 면회 와 주실 것 같으니 그때 또 뵐게요.’라고 인사할게요. ㅋㅋ 사랑합니다~~♡♡

 

모심자심母心子心 / 군대 간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

엄마의 답장

봄, 그 작은 시작

수월화 박경희 구룡사 불자

화사한 봄의 향기가 지독하게 그리운 날이다.
출근길 나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꽃집의 이른 봄 향기와 담장 밑에 작고 수줍게 내미는 야생초와 개나리의 유혹하는 손짓 옆에 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떨고 싶은 날이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하루하루 몰라보게 변하는 자연의 빛깔이, 길가를 지나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무심한 내 마음 안으로 파고드니 말이야.
햇살이 좋은 날은 기차라도, 아니 버스에라도 몸을 싣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을 나들이를 떠나고 싶어진다. 가끔 문득 문득 허전하고 아리운 건 누군가가 그리워서일까.
늘 시린 겨울은 가고 봄이 찾아오듯이 우리들 가슴속에도 따사로운 봄 햇살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아들 잘 지내고 있겠지! 이 소중한 지면을 우리의 소소한 얘기들로 매꿔나가자니 많은 분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해진다.
며칠 전 네가 상기된 목소리로 알려준 3박4일의 포상휴가 소식은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안에는 너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녹아있겠지만…. 며칠 동안 전화연락도 뜸해서 궁금하던 차라 더욱 반가웠지. 주위에서는 벌써 5개월이 되가느냐고들 하지만 차마 내 입에서는 ‘벌써’라는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다음날 휴가증을 받고 대대장님께서 5분 안에 짐을 꾸려 오면 휴가를 보내주고 아니면 안 보내주신다고 하셨다며 미리 가방을 챙겨놨었다고 농담 섞인 여유도 보이더구나.
엄마 아빠가 일을 하고 동생은 고3이라 이젠 각자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을 먼저 만나고 오겠다고 해서 중간에 만나 둘만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구나.
근데 강호야, 엄마는 그날 사실 무한 감동을 받았단다. 이젠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과 소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게 그렇게도 뿌듯하고 대견하고 좋기만 했단다.
네가 군대에 가서 애로점도 많지만 너 자신을 돌아보고 넘을 수 없었던 벽을 넘는 순간 지금까지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지내왔던 네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토해내듯 믿음직스럽고 진심과 열정을 담아서 하나씩 하나씩 뱉어낼 때 나는 너의 진심어린 열정을 보았단다.
어려서는 스스로 계획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말에 어긋남이 별로 없었던 네가 대학에 가서는 현실과 열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바람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지낼 때 엄마는 많이 속상했단다. 하지만 일찍 피는 꽃이 더 먼저 떨어지듯이 느리게 느리게 가더라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 알기에 또 한 번 눈 감아보려 한다.
남자는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존경하는 나이가 되면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간다고 그러더구나. 사회생활로 늘상 바쁜 일상을 보내는 아빠를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존경한다는 네 말에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어떤 아저씨가 무한 감동을 하시며 그 순서에 아빠가 들어있냐고 대단하다고 하셨지. 엄마는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가 존경인물 1순위였는데…. 엄마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나 싶다. 
항상 욕심이 많은 동생에 반해 다 이해하고 양보하고 내주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우리의 사랑을 믿어준 네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구나.
지금은 군인이라는 너의 현실에서 그저 네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계획하고 현실에 충실히 실천하고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얻으리라 본다. 작은 씨앗도 뿌리지 않고 결과를 바랄 수 없듯이 작은 실천이 없이는 어떤 결과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지.
‘시작’이라는 용기 속에 기적이 숨어있다고 하더구나.
네가 한번 도전해 보지 않으면 앞으로 살면서 후회할 것 같다고 그래서 힘들지만 조금씩이라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부디 건강을 해치지 않고 무탈하기를 빈다.
지금까지는 끌려다니는 인생이었다면 이젠 너를 다잡아 스스로 계획하고 이끌어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어려서부터 낙천적이고 긍정마인드로 스마일맨이었던 네게 사나운 바람도 거친 비바람도 인연을 거스르는 인연의 끈도 없었으면 좋겠고, 실패의 벽에 부딪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오늘도 부처님께 간절히 발원해본다.
네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하고 싶은 일이 비록 빛나지 않고 최상이 아니어도 너의 열정 하나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작은 도약의 디딤돌을 만들어가길 소망한다.
같이 생활하는 장병들에게도 봄으로 들어가는 하루하루가 무사한 날이기를, 편안한 날이기를 바라면서 … 사랑하는 아들에게 개나리가 춤추는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