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부과에 대한 불복방법
(전치절차 Ⅲ 보론)

장길석

여래사 불자, 법무법인 한별 송무실장·jang-kswi@hanmail.net

<지난호에 이어서>
6. 전치주의의 완화
조세소송이 필요적 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이미 불복대상인 처분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부여받았거나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굳이 또 전치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이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행정심판 전치주의의 근본취지에 비추어 볼 때 필요적 전치주의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90. 4. 13. 선고 89누1414 판결, 91. 5. 24. 선고 91누247 판결, 92. 9. 8. 선고 92누4383 판결, 97. 4. 8. 선고 96누2200판결).
여기에서 국세기본법 등 조세 관계법에서도 행정소송법 제18조 제2항과 유사한 취지로, 법정기간 내에 전치절차의 결정 통지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 결정을 기다릴 필요없이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명문의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명문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판례는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해석상 전치주의의 적용을 완화하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를 차례로 살펴 본다.

가. 법정기간 내에 결정통지를 받지 못한 경우
국세와 관련된 이의신청에 대하여는 30일, 심사청구에 대하여는 90일, 심판청구에 대하여도 90일 이내에 결정을 하여야 한다(국세기본법 제65조 제2항, 제66조 제6항, 제81조). 이 규정은 훈시적 규정으로 해석되므로, 그 기간을 경과한 후에 한 결정이라고 하여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그 법정기간 내에 결정의 통지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곧바로 다음 단계의 불복절차로 나아갈 수 있다(국세기본법 제56조 제3항 단서, 제61조 제2항 단서, 제68조 제2항).
따라서,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의 결정 통지를 법정기간 내에 받지 못하면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은 그것만으로는 전치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므로, 법정기간 내에 통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인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를 할 수 있을 뿐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대법원 97. 11. 28. 선고 97누13627 판결).

나. 해석상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다음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전치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도 과세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동일한 행정처분에 의하여 납세의무를 부담한 수인 중 1인이 적법한 전치절차를 거친 경우 : 전치절차의 심판대상과 소송대상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이상, 전치절차의 청구인과 행정소송의 원고가 동일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행정청으로서는 이미 당해 처분의 당부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가진 반면 납세의무자마다 다시 전치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은 의미없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동상속의 경우 상속세부과처분에 대한 불복은 상속인 각자가 자기의 납부의무가 있는 세액에 관하여 제기하는 것이 원칙이나 전치절차에 있어서는 공동상속인을 대표하여 상속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의 결정통지를 받을 수 있는 자가 전치절차를 거친 경우 나머지 상속인들은 동일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대법원 93. 5. 27. 선고 93누3387 판결).
또한 주식회사의 과점주주 수인을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하여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경우로서 그 중 한 사람이 적법한 행정심판을 제기한 경우 나머지 사람은 전치절차를 거침이 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대법원 88. 2. 23. 선고 87누704 판결).

2) 당초 처분과 그에 대한 변경처분의 위법사유가 공통한 경우 : 당초 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친 후라도 과세관청이 당초처분에 대한 증액결정 기타 변경처분을 한 경우에(감액경정처분은 당초처분의 일부취소로서의 성질을 가지므로 당초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다면 감액경정처분에 대하여 따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음은 당연하다.), 소송의 대상은 그 변경된 처분이므로 다시 전치요건을 구비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 변경처분으로서는 이미 자기시정의 기회를 가졌다고 볼 수 있고,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다시 전치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은 가혹한 것이므로, 다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 증액경정처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대법원 92. 8. 14. 선고 91누13229 판결, 2000. 9. 22. 선고 98두18510 판결).
그 밖에 당초의 종합소득세부과처분 취소소송 계속 중에 그 처분을 취소하고 동일한 과세표준에 대하여 귀속연도를 달리하여 종합소득세 및 방위세를 부과한 사안에서 변경 후의 종합소득세 뿐만 아니라 방위세 부과처분에 대하여도 전치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고(대법원 97. 4. 8. 선고 96누2200 판결, 이 경우 소송계속 중이므로 별소 제기를 할 필요없이 행정소송법 제22조에 의한 소변경을 하면 된다.), 당초의 과세처분의 취소소송의 계속 중에 종전의 처분을 취소하고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재처분을 한 경우, 당초 처분과 최종처분에 있어서 납세의무자가 주장하는 위법사유가 공통되고 납세의무자가 당초처분에 대하여 최종처분과 같은 위법사유를 들어 전치절차를 적법하게 거쳤다면 최종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 취소를 구할 수 있다고 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두1557 판결, 다만 과세관청이 종전처분을 취소한 이유가 절차적인 하자 때문이고 종전처분에 대한 전치절차가 절차상의 하자만을 이유로 한 것이라면 소변경이 가능한 경우가 아닌 한 새로운 처분에 대하여 다시 전치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3) 관련처분 중 하나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친 경우 : 2개 이상의 같은 목적의 행정처분이 단계적·발전적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서로 내용상 관련이 있는 경우 또는 형식상 수개의 과세처분이 있으나 그것이 하나의 과세원인에 대한 수개의 분할납부로서의 과세처분인 경우에 선행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다면, 후행처분에 대하여 따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는 없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별개의 행정처분이라 하여도 그 별개의 행정처분에 깔려 있는 분쟁사유가 공통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 선행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친 것만으로도 이미 처분행정청에게 스스로 재고시정할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국세징수법과 별개의 행정처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위 국세채무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후에 비로소 발생되는 징수권의 행사이므로, 국세의 납세고지처분에 대하여 적법한 전치절차를 거친 이상 가산금 및 중가산금징수처분에 대하여 따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한 예가 있다(대법원 86. 7. 22. 선고 85누297 판결, 2006. 9. 8. 선고 2004두947 판결, 그 외 본세와 가산세의 경우, 압류처분과 공매처분의 경우에 대하여는 대법원 89. 11. 10. 선고 88누7996 판결의 이유 부분을 참조).
조세부과처분 전에 처분청으로부터 과세전 조사내용통지 및 재산압류통지를 받고 그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였는데, 그 후 부과처분이 있고 나서 처분청이 그 부과처분의 당부까지 판단하여 위 압류통지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그에 대한 심사 및 심판청구를 거쳐 소를 제기한 경우라면, 위 부과처분에 대하여도 이의신청을 거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사례도 같다(대법원 91. 4. 23. 선고 90누9155 판결)
또한 상속세 연부연납 허가에 따라 나누어 부과되는 상속세부과처분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처분이 형식상 나뉘어 있을 뿐이므로 1차년도분 상속세 부과처분에 대한 전치절차를 거쳤다면, 연부연납 2차년도분 상속세부과처분에 대하여 동일한 사유로 취소소송을 제기함에 있어서는 따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경우 비록 형식적으로는 부과처분이 별도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각 부과처분은 하나의 세액결정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진 상속세를 수 회에 걸쳐 나누어 부과한 데 불과한 것으로서 동일한 사안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각 전치절차에 대한 결정 역시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대법원 87. 7. 7. 선고 85누393 판결, 연부연납이 허가된 상속세 등에 대한 납세고지는 원래의 상속세 부과처분에 의하여 정하여진 조세채무 중 연부연납이 허가된 세액에 관하여 이행을 명하는 것으로 징수처분의 성질을 가진다(대법원 92. 10. 27 선고 92누305 판결, 2001. 11. 27. 선고 99다22311 판결)｝.
동일한 계약관계에서 발생한 2년에 걸친 이자에 대한 원천징수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한 2개의 가산세부과처분이 세목과 납세의무자 및 원고주장의 위법사유가 동일한 경우, 선행 과세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다면 후행 과세처분에 대하여 별도로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한 것도 같은 유형의 사례이다(대법원 91. 7. 26. 선고 91누117 판결).

다. 전치절차의 면제가 불인정되는 경우
조세소송의 전치절차는 소송물이 되는 개별 처분마다 따로 거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위 ‘나.-3)항’처럼 관련처분 중 어느 하나의 처분에 대한 전치절차로 다른 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면제하는 것은, 형식상은 별개인 수 개의 처분이 같은 목적을 위한 단계적 과정에 있거나 선행처분의 필연적 결과로서 후행처분이 이루어진 경우 또는 실질적으로는 동일처분인 경우 등에 한정된다. 따라서, 다음의 사례에서는 전치절차의 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1)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에 대한 심사청구 및 심판청구를 함에 있어서 가산세의 부과처분만이 위법하다고 주장하였고, 그 후 심판청구기각결정을 송달받고서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함에 있어서 가산세 부분의 취소를 구하다가 청구를 변경하여 위 부과처분 전부(본세 포함)의 취소를 구한 경우, 본세에 관한 취소청구는 전치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부적법하다(대법원 82. 12. 14. 선고 82누315, 앞에서 본 대법원 86. 7. 22. 선고 85누297과 대비 참조).

2) 동일한 매출누락을 원인으로 법인세, 부가가치세, 갑종근로소득세 등이 부과되었을 때, 각 과세처분별로 전치절차를 거쳐야 하고, 어느 하나의 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다 하여 다른 처분에 대하여 바로 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대법원 84. 12. 26. 선고 82누195 판결).

3) 원고가 특정 회사의 제2차 납세의무자인지 여부의 동일 쟁점이라 하더라도 세금의 종류, 과세연도 등이 달라 처분이 별개이면 별도로 전치절차를 거쳐야 한다.

4) 부동산 명의신탁을 이유로 명의자에게 증여세 등 부과처분을 하였으나 이를 체납하자, 연대납세의무자로서 실질소유자인 증여자에 대하여 증여세 부과처분을 하고, 아울러 명의신탁한 부동산을 타인에게 양도한 데 대하여 실질소유자에게 양도소득세부과처분을 한 경우, 위 각 과세처분은 증여 또는 양도된 목적물이 동일할 뿐 별개의 독립된 처분으로서 그 중 하나의 과세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더라도 다른 과세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그 과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위 대법원 91. 5. 24. 선고 91누247 판결, 92. 9. 8. 선고 92누4383 판결(수증자에 대한 증여세 과세처분과 증여자에 대한 연대납부과세처분은 독립된 별개의 처분)｝.

5) 당초의 제2차 납세의무자 납부고지처분이 당연무효라는 이유로 이와는 별개의 새로운 과세처분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비록 종전의 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쳤다고 하여도 원칙적으로 새로운 납부고지처분에 대하여 전치절차를 거쳐야 한다(대법원 86. 10. 14. 선고 85누910 판결, 96. 9. 10. 선고 95누13739 판결).

6) 동일한 처분의 경우에 이들은 각기 독립한 별개의 처분이므로, 법인세 및 방위세부과처분만을 대상으로 한 심사청구의 효력이 갑종근로소득세 및 방위세부과처분에까지 미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에서 본 중복하여 전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1. 6. 12. 선고 99두8930 판결, 2006 12. 7. 선고 2005두4106 판결).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