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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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의 무소유

승한스님 / 봉담선원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뒤뜰의 홍매화와 길섶의 개나리꽃은 제때에 제 꽃을 피워 올렸다.
마당의 살구나무와 앞산의 산벚꽃나무도 이미 포동포동한 꽃망울을 머금었다.
이렇듯 예년의 봄과 금년의 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나에게는 아직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그 이유가 뭘까. 도무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럴 때 맑은 시 한 편에 우울한 영육을 실어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다. 그 시가 가라앉은 영육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그래서 이 시집 저 시집 뒤적거리다 초롱한 꽃망울 같은 시 한 편을 찾아냈다. 김신용 시인의 「민달팽이」였다.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 느릿  기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을  따라  걷는  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 버린다


치워라, 그늘!


배꼽 아래서 코끝까지 수은주처럼 오르내리는 숨길을 따라 이 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간디의 말씀 한 마디가 목련꽃처럼 환하게 나의 달팽이관을 건드렸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1931년 9월 마하트마 간디가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며 한 말이다.
그렇다. 아직까지 나의 봄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직 마하트마 간디처럼 가난한 탁발승이 되지 못한 탓이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비우지 못한 탓이다. 비우지 못하고 오히려 아직도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많은 것을 채우려 남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나라를 탓하며 나와 내 주변을 서로 사랑하고 살지 못한 옹졸한 내 마음의 결핍 탓이다.
더 솔직히 고백하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가죽부대를 위해 아직도 더 많은 것을 탐하고, 더 많을 것을 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채우려 허우적거리다 세상이, 사람들이, 돈이, 명예와 권력이 내 중심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마음의 겉볼안이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탓이다. 그래서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 하나로 운수납행하는 김신용 시인의 민달팽이 한 마리가 나의 뒤통수를 냅다 갈긴 것이다. 부처님처럼 등에 짊어진 집마저 세상에 던져주고 물과 구름처럼 알몸으로 운행하는 민달팽이의 처절한 무소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에 다름 아니라고. 그리하여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고.
맞다. 정말 인간의 소유욕에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계층도 없고 성별도 없다. 직위도 없고 노소도 없다. 승속을 가릴 것 없이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 하나라도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몸과 마음을 불꽃처럼 날름거리고 있다. 그리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전쟁과 살인 같은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며 고통의 바다를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한번 반드시 빈손으로 돌아간다. 민달팽이처럼 납의(衲衣)의 육신마저 훌훌 벗어던지고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더욱 강조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더 크게 얻을 수 있다고. 그리하여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봄이 왔어도 내게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바로 거기 있었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아직도 나의 소유욕과 집착이 돈과 명예와 권력과 보다 편안한 삶을 원하고 붙들기 위해 불나방처럼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눈 뜨고도 눈먼 당달봉사가 되어 왜 나에게는 봄이 오지 않나 하고 눈이 빠져라 이미 온 봄을 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신용 시인의 민달팽이는 오늘 나에게 일갈했던 것이다. 그늘마저 소유와 집착이라며 ‘치워라, 그늘!’ 했던 것이다.
김신용 시인의 민달팽이 한 마리처럼 나도 이제 그렇게 가난한 탁발승이 되어 그렇게 세상의 그늘마저 훌훌 벗어던지고 길 위의 길을 보다 더 가볍고 맑게 산책하듯 걸어 갈 때 춘래불사춘의 내 봄도 진짜 봄 세상이 되지 않을까.
툇마루에서 펼쳐든 시집 위로 따스한 봄볕 한 가닥이 뻗쳐들었다. 집착과 소유의 한기도 문창살을 꼬리처럼 빠져나갔다. 춘래춘(春來春)! 비로소 나에게도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