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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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총무


사람들은 왜 불행해할까? 왜 자신들의 삶을 후회하고 아파하고 좌절하며, 극단적인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마음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후회하고, 현재의 일로 괴로워하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로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힐링(Healing. 치유)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가장 먼저 내리는 처방약은 참회와 감사다. 누구도 대신해서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행복도 자신이 만들고 불행도 자신이 만들었다. 행복의 주체도 자신이고 불행의 주체도 자신인 것이다.
참회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참회懺悔는 한자로 ‘뉘우칠 참’ ‘뉘우칠 회’를 쓴다. 그러나 똑같은 ‘뉘우침’이라도 ‘참懺’과 ‘회悔’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육조 혜능스님은 이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려놓으셨다.
‘참懺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침이니,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뉘우쳐서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회悔란 이후에 짓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다음부터 있을 죄를 미리 깨닫고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합하여 참회라 하는 것이니라.’
<『육조단경』 참회품>
쉽게 말하면 ‘참懺’은 ‘기왕에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본래 우리는 하얀 천처럼 깨끗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살다보니 걸레처럼 때가 묻어 시커멓게 변했다.
더렵혀진 천 위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아무리 값비싼 비단일지라도 더럽혀진 걸레 위엔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먼저 하얗게 천을 빨아야 한다. 깨끗이 세탁해 원래의 하얀 천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그 위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행복을 그릴 수 있다. 그 세탁기가 바로 ‘참회와 감사 명상’이다. 참회를 하면 저절로 감사해지고, 범사에 감사하면 저절로 참회가 된다. 참회가 곧 감사이고, 감사가 곧 참회라는 말이다.
불자佛子들이 가장 많이 염송하는 『천수경』에도 그 이치가 분명하게 나와 있다.
「신묘장구대다라니」와 「도량찬」으로 도량(마음)을 청정하고 깨끗하게 한 뒤 가정 먼저 하는 것이 ‘제가 지은 모든 악업 탐 · 진 · 치로 생겨났고,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 참회하옵니다’ 라는 「참회게」다. 그리고 ‘살생한 잘못, 도둑질한 잘못, 삿된 음행한 잘못, 거짓말한 잘못, 꾸며서 말한 잘못, 이간질한 잘못, 헐뜯는 말한 잘못, 욕심 부리고 산 잘못, 화내고 산 잘못, 어리석게 산 잘못’ 등 열 가지 잘못을 참회한 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하고 「참회진언」을 외운다. 그리고 「여래십대발원문」과 「발사홍서원」으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는 데는 참회와 감사 명상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다.
실제로 모든 치유(Healing)는 참회와 감사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지하밀실 13층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의 그 밀실에는 별의별 물건(마음)들이 다 들어있다. 부끄러웠던 일, 서러웠던 일,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억울했던 일, 화났던 일, 고통스러웠던 일, 아팠던 일, 쓰라렸던 일, 상처받았던 일, 억눌러왔던 일, 참을 수 없었던 일, 미워했던 일, 짜증냈던 일, 질투했던 일, 원망했던 일, 비난했던 일, 비난받았던 일, 수치스러웠던 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일,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던 일 등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다. 참회와 감사 명상은 그렇게 한 번도 햇볕을 쬐어보지 못한 그 어둠의 물건들에게 햇볕을 쬐어주는 일이다.
많이 울고 많이 감사할수록 밀실의 물건들은 더 빨리, 더 많이 햇볕을 쬔다. 말이 울고 많이 감사할수록 지하 밀실의 층수도 더 빨리 지상층으로 올라온다. 그 순간 행복의 문은 저절로 열리며 치유는 시작된다.
눈물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아픔과 절망의 표시도 아니다. 기뻐도 눈물이 나고슬퍼도 눈물이 난다. 번뇌로 보면 기쁨도 번뇌고 슬픔도 번뇌다. 눈물은 그 번뇌들이 녹아내리는 흔적이다. 통절한 눈물일수록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꼭 참회가 아니라도 좋다. 힘들고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땐 아낌없이 울어보자. 오랜 세월 꼭꼭 파묻어두었던 일, 참아왔던 일,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일, 지하 13층 밀실에 깊이 숨겨두었던 일,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상처들을 모두모두 눈물로 퍼내버리고 “나의 아픔아, 나의 고통아, 나의 괴로움아, 나의 분노야, 나의 상처야, 그동안 차가운 어둠에 갇혀 사느라 얼마나 춥고 힘들었니? 애썼다. 이제 저 밝은 세상으로 나가 맘껏 뛰놀아라. 햇볕 맘껏 쬐며 따뜻하게 살아라” 하고 등허리를 쓰다듬어줘 보자. 그리고 그 아픔들에게, 그 고통들에게, 그 슬픔들에게, 그 분노와 상처들에게 부처님처럼 깊은 자비와 연민의 미소를 보내며 속삭여줘 보자. “나야, 이 눈물이 끝내 너를 구원하리라” 하고. 그 순간, 행복의 좁은 문은 우주처럼 활짝 열릴 것이다.
그 순간, 행복의 우주공간에서 우주인처럼 유영하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우주가 되어 있는 당신의 마음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