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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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我執과 편견偏見에 가리워진 나를 내려놓는 삶

정우頂宇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금년에도 인도印度를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3월에는 토론토에 있는 대각사와 뉴욕원각사 법회, 원각사 대웅전, 동당, 서당선원의 설계도면을 전하고 돌아 왔다가, 호주 시드니 정법사 20주년 법회와 필리핀 마닐라선원 법회에 다녀왔습니다. 대만에도 다녀왔으니 짧은 시간 분주한 일정이었습니다.
인도는 우리나라에서 서쪽에 있고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동쪽에 있습니다. 또 호주는 우리나라에서 남쪽에 있고 필리핀은 남서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주는 가을이 오고 있었고 필리핀은 섭씨34도의 한여름이었습니다. 그 무렵, 토론토와 뉴욕에서는 폭설暴雪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진해의 벚꽃축제와 남쪽의 꽃소식들은 서울 벚꽃의 꽃망울을 보게 하는 봄기운이 북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서 곧 피우겠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곡우절인데, 강원도와 충청도, 추풍령에는 눈이 오고 있습니다. 지구는 동서東西로 하루의 시간時間을 나누고 남북南北으로는 계절季節을 전합니다. 물론 지구는 자전과 공전으로 나타나는 태양계의 거리가 적도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자연법칙의 현상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만나지만, 오늘도 여전히 여의도에서는 벚꽃놀이로 시민들의 몸짓은 번다해 보입니다.
얼마 전, 철鐵의 여인이라 불렸던 마가렛 대처 영국수상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대처 수상은 대영제국(大英帝國, British Empire)의 국력國力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을 때, 십년 넘게 수상을 하면서 영국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친의 가르침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랜 섬에서 잡화점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이후 그랜 섬 시장이 된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모임에 늘 데리고 다니면서 정치인들의 토론을 보게 하였다고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을 조심하게 하고, 말을 조심하게 하고, 행동을 조심하게 하고, 습관을 조심하게 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훗날, 대처를 세계적인정치지도자로 성장시키는 씨앗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생의 학습효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들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보다 기분에 신경을 더 쓰는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분에 놀고, 기분에 매이고, 기분에 사는 이들에게 대처 수상의 살아온 삶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비달마교학阿毘達磨敎學》에서도 첫째는 신근信根, 즉 믿음이 견고하면 거기에서 발현되는 것을 믿음의 힘이라 하고, 두 번째는 정진근精進根이니, 이것은 진지하게 사는 삶입니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면 저절로 정진의 힘이 증장 됩니다. 세 번째가 염근念根입니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처처處處가 안락국安樂國이요, 염념삼독심念念三毒心이면 처처處處가 삼악도三惡道”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심식心識 작용은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기도 하고 오탁악세五濁惡世를 만들게 하기도 합니다. 이를 불교적으로 말하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각을 억념憶念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祈禱할 때마다 웃는 이가 있기도 있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기도하면서 환희법열로 가끔은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합니다. 훈습으로 반복 되는 문제들이 큰 병이 되어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염불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간절한 마음과 정직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통찰하여야할 것은 중생심衆生心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은 망념妄念이라는것입니다. 생각은 생각인데 망령된 생각生覺입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불빛이 들어왔을 때의 현상과, 불이 꺼졌을 때의 공간을 생각해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빛이 들어오면 환하게 밝아지고 불이 꺼지면 어두워집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망념妄念은 밝음과 어두움의 차이와 같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정념正念으로 망념이 사라지게 되면, 망념妄念의 그림자인 어둠의 자리에밝은 지혜智慧빛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정념正念에들면일념一念이됩니다.
그것이 곧 무념無念입니다. 마음 없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을 선방에서는 화두話頭참구법이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 챙김이라고 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변속기어를 넣을 때, 초보자는 1단, 2단, 3단, 4단의 기어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운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운전이 숙련되면 지금 몇 단 기어인지? 안 보고도 압니다. 숙련된 운전자는 엔진의 기계음도 귀로 듣지 않고 엑셀레터를 밟아보면 엔진오일을 교체할 시기를 알게 됩니다. 이는 발바닥에 눈과 귀가 있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치를 《능엄경楞嚴經》에서는 ‘견견지시見見之時에 견비시견見非是見’이라 하였습니다.
‘볼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운전이 숙련된 사람은 기어변속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기계음으로 엔진오일 교체여부도 살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말하면, 중생심이 작용하는 것은 망념妄念이지만, 그것을 바른 생각正念으로 밝히면 일념一念이 되고, 한결같은 생각(無念)으로 다가가는 것을 수행정진이라 하였으며, 마음 챙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몇 단 기어를 넣고 가는지, 또 몇 단 기어를 넣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제대로 기어를 넣고 가는지, 초보운전자는 눈으로 변속기를 확인할 수밖에 없고, 숙련된 이에게도 점검 받아야 하겠지만, 훈련된 운전자는 기어가 몇 단에 들어가 있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처럼,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하는 수행자도 또한 그러하다할 것입니다.
염근念根을 지니고 마음을 챙기면, 거기에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게 되고 반야지혜般若智慧는 증득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과, 염근念根과, 선정근禪定根과, 지혜근智慧根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에너지를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 덕목德目을 대처 수상의 좌우명에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보려 합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인생의 모든 일은 결국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운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도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저절로 뒤따라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그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불광산사의 성운대사는 청년시절, 중국 본토에서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피난 오셔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을, 늘 기쁜 마음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근대 불교사佛敎史에서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부처님일(佛事)을 하셨습니다. 그런 스님께서 제게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마칠 무렵, ‘산수인생山水人生’이라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산처럼, 물처럼, 있는 그대로 살라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해인사강원 동문스님 60여분과 함께한 불광산사의 일정 중에 떠나오던 날, 스님께서는 이른 아침, 무심도행無心道行 이라는 글을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승가공동체는 가야할 길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심히 살아가야 하는 출가자의 자연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사바세계에 이 몸은 인연因緣으로 연기緣起되어 이루어진 것이라, 사대四大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작용으로 끊임없이 업業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오온은 시대의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환경에 육근六根을 노출시켜 있어서, 선정삼매와 반야지혜로 오온을 다잡아가며 살아가지 않으면 업력業力에 시달리는 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북한에서 미사일과 핵을 가지고 전쟁위협을 하는데도 우리국민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인이 아니면, 불감증이나 무기력증일까요, 반응이 없으니 북한에서는 자꾸 자동차의 엑셀레터를 밟듯이 더 합니다. 그 무반응과 편안함에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13억의 중국인과 경제대국인 일본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잘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국민들은 끊임없이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입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강대국 사이에서 그 나라들을 쉽게 생각하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욕망慾望의 끈을 놓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세상과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젠, 좀 여유를 가지면서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자족自足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국민들의 의식구조를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사람은 자갈, 중국 사람은 모래, 일본 사람은 시멘트에 비유합니다. 이 세 가지 물건 중에 자갈이
제일 단단하고 강强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모래와 시멘트를 함부로 대해서는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자갈과 모래와 시멘트가 물과 합해져서 조화로움으로 융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구의 70억 인구 중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이 동북아시아 권에서 조화롭게 합심合心해서 살아가면, 경제적으로도 우리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점점 확대해 나아가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깃발이 빈곤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돌맹이 같은 사람도 있고, 모래 같은 사람도 있고, 시멘트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화합의 물, 신뢰의 물, 믿음의 물과 같은 관심과 배려로 함께 어울린다면 얼마나 편안해 지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이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것은 아집我執과 편견偏見으로 나를 내려놓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 나는 누구입니까? …
나를 내려놓으면 어떤 근심과 걱정도, 고통과 괴로움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로 그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을 닮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고,
겸손함이 배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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