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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청소년을 위한 축제의 장 |
박영동 동국대부속여고 교법사
누가 만약 나에게 불교가 왜 대중 속에 파고들지 못하였는가 묻는다면 그것은 불교가 그동안 대중과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묻는다면 대중들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 시급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고로 일반 대중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이 종교요, 불교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라면 당연히 불교, 불교의 지도자는 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망각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불확실한 미래를 설계하는 불교, 불교지도자라면 적어도 이 시대 주인 역할을 할 수 없다. 주인이 되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전도 선언문에서“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 불교의 존재 이유임을 밝혔다. 불교 포교의 궁극적 목표인 대중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는 우선 불교 지도자들이 현실의 삶에서 갖가지 문제와 갈등으로 인하여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즉, 대중의 근기, 곧 대중의 특성과 잠재능력 및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뇌와 고통을 인식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불교가 대중 속에 파고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를 살펴보면 아직도 대중교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세상 을 함께 살아가는 대중들의 고통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불교신자들에게 베푸는 삶, 보시의 삶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불교교단과 불교지도자는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또한 교단의 자생력을 강조하면서도 각종 불사에 외부의 지원만을 기대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많은 대중들을 불교적 가치관으로 무장시키는데 앞장서야할 불교의 대중매체들까지도 언제부터인지 각종 불사나 삼사순례, 49재보험, 납골당 등을 선전하는데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일부 사찰과 포교당 등에서는 어린이집, 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어린이·청소년법회 등 다양한 계 층별 법회를 운영하는 모범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생각할 때 대단히 미흡하 다. 불교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 시점에서 더 많은 사찰과 포교당이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적극 나서 야 한다. 최근 우리 불교계에는 생활불교, 대중불교, 민중불교, 참여불교 등의 말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과거와는 달리 음력 초하루나 보름 등의 날만이 아니라 주중, 주말을 이용한 법회가 열리고 있는가 하면,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어린이, 청소년, 군인, 재소자, 환자, 노인, 장애인 등 특수계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포교활동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과 인권, 평화 문제에도 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해방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몇몇 뜻있는 스님들과 재가 지도자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많은 불교 지도자들이 현실 이해도나 포교 방법 면에서 부족함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1960년대 종단의 정화와 1990년대 개혁 종단 이후 변화를 거듭하면서 불교계의 포교 방법이나 양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불교 포교의 내용과 방법 등에 있어서는 일반 대중들의 일상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대불교의 선구자이셨던 대강백 박한영 스님께서는 1912년, 당시의 불교계를 진단하시기를“대부분 포교당에서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방향으로만 치닫기 일쑤여서, 정작 현재 세상의 형편이 어떠하며, 민중들의 생각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불교의 이치를 어떤 방면으로 탐구하고 전달시켜야 할 것인가에는 도무지 어둡기만 한 형편이다.”라고 진단 하신 바 있다.
지금의 불교계에 대중들을 부처님의 가르침 속으로 이끌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의지가 약 할 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 신경 쓰다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상대로 교화할만한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그 대책을 세우고 실천할 때이다. 언제까지나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는『법화경』「방편품」에서 사리불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시면 또한 무량, 무수한 방편과 가지가지 인연, 비유, 언사로써 중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법을 연설하실 것인데, 이 법이 모두 하나의 불승을 위한 것이니라.”라고 말씀 하셨다.
부처님께서 당시 많은 중생들이 여러 가지 욕심과 마음에 깊이 집착함이 있음을 알고, 그 본성에 따라 가지가지 인연, 비유, 언사와 방편의 힘으로 법을 설하셨듯이, 오늘날 불교의 출가 수행자나 재가지도자들은 당연히 다양한 비유와 방편으로 대중교화에 힘써야 한다. 특히 불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린이와 청소년 교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찰로부터 어린 청소년들을 냉대하기보다는 이제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물론 어린이·청소년 포교는 경제적 논리로만 따진다면 당장은 손해일 수 있다. 또 어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귀찮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귀찮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 어린이·청소년 포교다. 왜냐하면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우리 불교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10년 뒤, 100년 뒤를 생각하면 어린이·청소년 포교보다 중요한 불사는 없다. 이를 깨닫는다면 불교는 지금 바로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과 획기적인 투자를 결심해야 한다. 사찰마다 어린이·청소년법회를 의무화하고, 청소년들이 절에 나오는 일을 즐겁게 생각하도록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또 사리불 같은 장로는 아니더라도 어린이·청소년을 이해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줄 지도 법사를 청소년포교에 전진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라훌라 같은 꿈나무를 키울 수 있다. 지금처럼 씨앗조차 심지 않는 풍토에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예전처럼 어린이·청소년 포교가 중요하다, 지도자 양성이 급하다, 청소년에 맞는 수행법과 포교 프로 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는 그러 한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당장 이번 여름, 사찰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축제의 장을 마련해 보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마 음 놓고 뛰어 놀고 사색할 수 있는 수련회나 캠프를 계획해 보자. 적막하기만 했던 전국의 사찰마다 어 할 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 신경 쓰다가 어 린이와 청소년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오는 살아 움직이는 불교, 역동적인 불교를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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