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금강경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은 세존이 발우를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 걸식하는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대성에 들어가셨다.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 심상한 구절에서 경전을 오래 익힌 어른들은 세존의 실천적 가르침의 정수를 뽑아내기도 합니다. 곧 가사와 발우는 불교의 법(法)이고, 좋은 음식 거친 음식 가림 없이 차례로 걸식하심은 차별 없는 여일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저 꾸밈없는 행위의 서술을 통해 세존이 탁발행에 담고자 했던 중생 제도의 형식과 내용을 내보이셨다고 합니다. 그 가르침을 받드는 의미로 걸식은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마경 제자품(弟子品)에는 탁발의 방법과 공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걸식은 평등한 법에 머물러 차례대로 해야 합니다. 걸식은 식용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음식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마을에 들어갈 때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가야 하며, 보고 듣고 느끼는 온갖 분별은 깨달음의 경지에서 하여 모든 것이 꼭두각시와 같은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걸식한 밥은 모든 중생에게 베풀고 부처와 성현에게 공양한 다음 먹어야 남의 보시를 헛되이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번뇌를 버리지 않고서도 해탈에 들고, 집착을 끊지 않고서도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행걸식(常行乞食, 가난한 실천의 일상화) 차제걸식(次第乞食, 차별 너머의 평등)의 두타행입니다. 해서 불가에서는 공덕을 쌓는 가장 중한 행위로 보시를 꼽고, 먹을거리가 풍족해진 이제는 그 상징적 의미가 다소 전이됐을지는 모르지만, 밥 보시를 최고로 여깁니다.
무상급식 논란으로 한동안 세상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찬반을 두고 팽팽히 맞선 양 진영의 논리는 제 소견에는 모두 그럴싸해 보였고, 또 마찬가지로 억지스러운 점들 역시 엿보였습니다.
가난이 결코 자랑일 수 없지만 상처가 돼서도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가난해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도록 청년들을 가르치고 배움의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너무 원대해서 현실적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세상에는 가난을-설사 그것이 부모나 사회의 탓이라 해도- 무능과 나태의 귀결인 양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집 평수를 따지고 부모의 직업과 승용차 배기량으로 친구를 저울질한다는 참담한 이야기가 들려온 지도 무척 오래 전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하릴없이 전면 무상급식 찬성 편에 서게 됩니다. 다른 데서 예산을 좀 더 알뜰히 쓰더라도 어린 학생들이 가난으로 상처 받는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자는 생각인 겁니다.
하지만 행정이 합리와 효율의 기반을 과도하게 벗어나 감상에 젖을 경우 궁극적으로 다수가 불행해진다는 것도 엄연합니다. 친구들과 한 끼 외식비용으로 몇 만 원씩 예사로 써대는 풍족한 아이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하고 불필요해 보입니다. 결국 서민들의 세 부담이 늘어날 테고, 더 긴요한 예산집행이 무산되거나 지연될 테니까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편에 서는 게 옳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하지만 합리와 효율을 그렇게 따져대는 행정가들이 저질러 온 얼토당토 않은 예산 낭비 사례들을 떠올리다 보면 또 머뭇거려집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논란 거리였는데, 설상가상 이 격돌은 소위 보수와 소위 진보의 진영대결, 이념대결의 전장에서 전개됐습니다. 그럼으로써 사안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이념적 선택의 문제로 변질돼버렸습니다. 전면 무상급식 자체에는 반대하고 싶어도 오세훈 서울시장 진영의 논리에 동조하는 것이 마뜩찮아 서울시교육청 편에 서겠다는 이들도 제 주변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선택 역시 우리로서는 불행입니다. 이념의 프레임, 진영논리의 블랙홀 속으로 모든 정치 행정 행위의 선택이 양분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니까요. 서울시나 서울시교육청이 내세운 그럴싸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상급식 논란은 결국 애꿎은 학생들을 이용해 서로의 정치적 입지와 사회적 영향력을 다투는 양상으로 전개됐고 진영 간 대결구도를 더 굳건히 만들었습니다. 세존이 불교의 법을 보여준 실천으로서의 걸식과 보시, 밥의 상징조차 이 시대에는 정치적 이념적 이해다툼의 수단이 된 듯해, 투표 결과와는 상관없이 침울해집니다. 
조계종이 내달 19일 임시 중앙종회를 열어 지난 3월 출범한 종헌종법 제개정 특별위원회가 상정할 사찰법 제정안과 선거법 승려법 등 주요 종헌종법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뚜껑이 열려봐야 알 일이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 내용이 자못 개혁적이라고 합니다. 연합뉴스는 8월 18일자 보도에서 종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 “자성과 쇄신 분위기에 맞춰 종단이 좀 더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는 게 종단 내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또 지난 7월 출범한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의 본부장을 맡아 종단 개혁 흐름을 이끌고 있는 도법 스님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2600년 전 부처님은 불평등한 세상을 깨뜨렸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불교가 인정을 돌아보지 않고 수행과 깨달음을 절대 가치로 여기면서 세상을 무시하고 외면했다”고 반성했습니다. 그간 종단의 점진적 변화에 대해서도 “불교계는 그 동안 주체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휩쓸려 갔다. 불교가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본부의 첫 행보로 조만간 ‘21세기 아쇼카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쇼카 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왕인데, 그가 세운 석주에는 생명존중 사상과 이웃 종교와의 평화 공존 정신을 담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조계종단의 개혁 노력에 합장으로 동조합니다. 도법 스님의 반성과 비판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고, 수행과 깨달음에 앞서 ‘지금 여기’ 우리 이웃들의 아픔과 상처를 먼저 살피자는 주장에 불편해할 이도 불가 안팎에는 적잖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개혁에는 갈등과 반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또 그런 상반되는 논리들의 대립을 통해 개혁의 논리 역시 정교해지고 보다 건강해질 것입니다.
전면 무상급식 찬반논란을 진저리 치며 봐온 탓인지 우려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도법 스님은 다양한 종교활동을 통해 종단 내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진보 개혁진영의 상징적인 스님 가운데 한 분입니다. 스님의 그런 이력과 이미지 자체에 대해 못마땅해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고, 진보라면 무조건 사갈시하는 이들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계종단만큼은 정치권과 다르다는 것을 이 기회에 보여줬으면 합니다. 모든 것을 이념적 양분논리로 치환해서 소모적으로 맞서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 과정, 곧 개혁의 수행(修行)을 통해 한국 불교가 만행화(萬行花)로 꽃을 피우고 희생과 광명 찬탄의 반야등으로 세상을 밝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