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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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 해와 같은 자성불自性佛이여!

태연 스님
공주 심우정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저 자신입니다.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목적지도 모른 채 마치 CCTV로 감시당하듯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노심초사하면서 회초리를 의식이라는 나귀처럼 한없는 세월 전전긍긍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이를 벗어난 장본인이기에 그렇습니다.
산 어귀에 구름이 가로놓여 집 나온 새가 둥지에 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문득 구름 자체가 부질없음의 공성空性을 체득하고 보니 새로운 눈이 열려 드디어 보금자리가 멀지 않은 바로 내 곁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실상實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한 것이지요. 어이하여 나 자신의 삶의 현주소를 알지 못하고 남의 잣대에 따라 응하면서 어리석게도 번뇌에 갇혀 사는 중생놀음일까. 참 어이없습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하듯 본디 아무 탈이 없음인데 괜시리 밖으로만 구하고 있었던 꼴이 아니겠습니까. 이젠 손가락 끝만 보던 바보짓 그치고 달을 찾고 보니, 아! 진정 별것도 아닌 것에 내가 공연히 마음 빼앗겼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문제는 나 아닌 타자他者의 몫이었음에 지금 자각自覺인 바 허공꽃에 속지 않고 비로소 무명의 대장부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무명이라는 중생의 굴레여! 나는 본디 불성의 부처님이건만 이 삿된 근본으로 말미암아 극락정토 아닌 사바娑婆의 질곡에서 그토록 힘든 마음고생을 사서 한 것이겠지요.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육조六祖가 물으니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는 어쩔 줄 모르고 8년이 지나서야 겨우 답答을 했다합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니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어라. 이는 정定해진 법이 없는 것이겠지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수타니파타의 길, 부모 말씀도 외면하고 절에 와 공부하는 데 어찌 나의 주인공이 주主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객진客塵의 번뇌마煩惱魔는 소용없어라. 마치 외손뼉의 소리처럼 일 없을지니, 수미산을 북채삼아 허공북을 치는 이들 그저 물끄러미 관자재觀自在이옵니다.
적멸락寂滅樂은 절 풍광의 꽃이건만 이에 소음의 공해는 진실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답니다.
분별과 시비是非일랑 다 부처님의 미소에 공양 올리옵고 면벽의 가풍家風 속에 마음부처에 귀의하니 이 무엇인가!
색과 소리는 사도邪道 인지라, 여래를 보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모래로 지은 밥’은 차치하고 그저 고요히 나의 본분살림만을 눈여겨보나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연꽃이 탁한 진흙에 물듦 없이 꽃을 피우는지라 참 감격스럽습니다. 개가 비록 위세 등등하나 사람이 피한다고 지는 듯해도 속으로는 크게 웃을 따름, 이제 저는 철부지가 아닙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곧 그것입니다. 절 공부는 마魔를 극복하여 자기 얼굴을 찾는 것인데, 이젠 출가의 ‘버리고 떠나기’ ‘위대한 포기’의 새 사람이 되었으니 추수기가 되어 알곡 아닌 가라지는 소용이 없겠지요. 그리하여 저는 반야공空의 일구를 온누리에 삼가 엎드려 고告하는 바입니다.
말길이 끊어진 소식 이른 바 지음자知音者의 가슴 속에 가을소식을 알리는 국화가 피고 저는 장거리 마라톤의 결승테이프를 끊는 한가한 범부凡夫랍니다.
저는 참 늘 즐거운 나날이 좋은 멋쟁이입니다. ‘마음이 부처’라 하듯 이 마음하나 잘 건사해 정법正法을 지키고 결국 저는 심왕心王의 적자嫡子가 되었습니다. 자비롭게 도피안자로서 배까지 버린 일 없는 이, 이에 모든 법계에 회향廻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