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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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변화를 보는 소회

김종락ㅣ문화일보 종교담당 기자


몇 달 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쉬다 옆자리의 동료가 알고 지내는 한 불교 신문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재직 중인 신문의 유머란에서 인터넷에 유포중인 유머를 게재했는데 이게 스님을 희화화한 것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는 거였다. 확인해 보니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조치를 취하기 위해 시계를 보니 이미 마지막 판 인쇄가 끝난 시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 판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는 것뿐이었다. 급하게 조치를 취하며 그 정도의 정치적인 감각도 없는 유머 담당자가 답답하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특정 종교를 희화화한 유머를 감히 신문에 싣는가 말이다.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순하니까 별 일이야 없겠지.’하며 며칠 지났는데, 동료에게 전화했던 그 불교 신문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내가 재직 중인 신문이 스님을 희화화한 인터넷 유머를 게재해 불교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내 용으로, 상당한 크기였다. 그 기사가 나오기 직전이던가, 이번에는 불교 조계종의 한 위원회 사무국에서 연락이 왔다. 역시 그 유머 때문이었다. 결국 그 일은 사장 명의의 사과 공문을 발송하고, 해당 지면에 사과문을 게재한 뒤에야 일단락됐다.

종교계를 출입하고 있다는 이유로 내가 그 일을 처리했다. 일 처리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불교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는 유머를 생각 없이 게재했으니 사과문을 게재하고 공문을 발송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슬금슬금 일어나는 찜찜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불교계의 불편한 관계는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로 나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이명박 후보의 탓이다. 그는 지난 9월 한 조찬 기도회에서 “대통령은 하나님이 만드신다.”며 특정 종교 편향 발언을 했는가 하면 10월 2일에는 불교계 언론을 상대로 예정했던 기자 회견을 하루 전 무기 연기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계 언론과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가 회견 당일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차에 전광훈(청교도영성훈련원 원장)목사가 매우 거칠게 이 후보 지지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빤스 발언’으로도 유명한 전 목사(그는 재작년 대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이 성도가 내 성도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지난 4월 마산에서 청교도영성훈련원이 주최한 집회에서 교인들을 향해“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라며“(만약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목사는“이 후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교회를 짓기로 약속했다. 처음부터 교회를 짓는다고하면, 불교가 반발하기 때문에 종교관을 짓는

자신을 집적거리는 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한 음식인줄 알면서도 그걸 드시고 앓으시다 결국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과도 다르다.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는 배워야 하는 것 못지않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들도 적지 않은 법이다.

다고 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잠재운 뒤 중간에 십자가를 달면 된다.”고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 정도니 불교계가 대놓고 이 후보를 손가락질해도 이 후보 측으로는 할 말이 없게 되기도 했다. 이 후보의 책임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최근 월정사 문화재 보수비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기사만 해도 그 출처는 한나라
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다. 이 후보와의 갈등과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최근 조계종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만 해도 조선일보의 탓이 크다.

이렇게 불교계가 세상과 갈등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상대의 잘못으로 드러난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은 갈등에 임하는 불교계의 자세가 보다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교계가 다른 종교나 세상과 갈등할 땐 대부분 온순한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불상에 시뻘건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리는 훼불은 주로 기독교의 공격에서 비롯됐고 불교계는 당하는 입장이었다. 최근 인터넷에 유포돼 관심을 모은, 지하철에서 모금 중인 부산의 한 스님(결국 사이비로 밝혀졌지만)이 기독교 광신도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사진이야말로 불교가 다른 종교나 세상과 갈등해온 방식을 상징한다. 이 사진은 때 마침 아프가니스탄 기독교 선교단 인질사태로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하던 차에 유포돼 더욱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거니와, 이 사진 한 장으로 기독교는 10년 선교가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피해 스님이 사이비만 아니었다면, 불교의 반대급부 또한 만만찮았을 것이다.

기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동안 기독교는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묶는 치밀한 조직과 활발한 대사회 활동, 그리고 공격적인 선교 정책 등으로 적어도 교세확장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해방 전후 전 인구의 2.5%에도 못 미치던 기독교 인구가 50년 만에 20% 안팎에 이르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 지도급 인사들 가운데 다수가 기독교 교인인 것 못지않게 한국 기독교 특유의 공격적인 선교 덕이 컸다. 여기에다 세상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교인들과 여타 권력 등을 동원해 상대방을 압박, 교회와 성직자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존재해 왔다.
문제는 내실을 돌아보지 않은 채 지속한 물량과 외형위주의 공격적인 성장이 한계에 이르면서 그동안 잠재된 여러 문제 또한 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부족하던 기독교의 한계는‘200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기독교 인구가 감소하는 것으로 가시화됐다. 여기에다 갈수록 노골화하는 주류 기독교계의 특정 정치세력 편향성은 기독교의 입지를 더욱 좁힐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교계는 기독교계의 선교와 조직, 대 사회 및 정치 활동 등을 선진적이라고 여기고 있음인가. 불교계가 기독교계를 추종하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거의 전면적이다. 물론 이런 것들 모두가 좋지 않다고 할 순 없다. 불교가 기독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독교가 불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세상이나 이웃 종교와의 갈등에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뭔가 불교답지 않다.

자신을 집적거리는 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한 음식인줄 알면서도 그걸 드시고 앓으시다 결국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과도 다르다.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는 배워야 하는 것 못지않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들도 적지 않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