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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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 그 순례의 길목에서




                                                                   정우(頂宇) 스님ㅣ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얼마 전 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방영한「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인데, 중국 한나라 이전의 시기에 중국 서남부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기 위해 형성되었다고 하여 차마고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 길이는 자그마치 5,000㎞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雪山)들과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장강(怒江)이 수천㎞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도 꼽힌다고 합니다.

그 다큐멘터리는 차마고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인데, 나는 그 중에서도 다섯 명의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2,100km나 떨어진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까지 1배3보의 수행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모습과 또 현장에 도착해서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의 불상을 친견하고 55일 동안 10만 배의 수행을 한 뒤 각자의 길을 떠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보면 순례자들이 순례의 길을 떠나면서 길을 떠나는 목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죽을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괴로움을 받으면서 그렇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태어날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나는 그 대목을 보면서「인생은 꿈이 있어야 하고, 인생은 희망이 있어야 하며, 또 인생은 장래가 보장되어야 살맛나는 세상이 아닐까」를 생각했습니다.
 
농경사회에 비추어 생각해보아도 춘하추동 사시사철 가운데 가을에 추곡을 하고 겨울이 되면 다음 봄을 위해 파종 준비를 하는 것처럼, 인생의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끊임없이 겪는 과정에서 그런 준비와 확인과 다짐이 없는 인생은 결코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인생은 재방송이 없다」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즉, 인생살이는 늘 생방송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생살이를 타성에 젖어 안주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불행하게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방송과 같은 생을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재방송의 삶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보살행을 하기로 하면 재방송의 삶이 훨씬 좋습니다. 보살의 바라밀다를 행할 때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어제 했던 것처럼 오늘도 하고 오늘 하는 것처럼 내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재방송의 삶이 낫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야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잡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진실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올바르지 아니한 생각은 멀리하라. 또 잘못된 생각이나 나쁜 일을 멀리하고 항상 선행을 쌓으면 그 마음은 항상 편안할 것이다.』
이 말씀은 항상 바른 생각만 가지라는 것이며 진실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위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 사바세계는 어떻습니까? 분별심을 일으켜 자신과 남을, 그리고 자기 것과 남의 것을 항상 구별하려 합니다.

요즘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반값아파트의 경우가 그 예라 할 것입니다.
정부에서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임대주택을 고급스럽게 지어서 싸게 분양을 했는데, 입주신청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내 것이라는 소유개념을 가질수 없는 아파트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식물로 자라기 위해서는 기후, 환경, 풍토, 배경, 보살핌, 그리고 물과 땅과 거름과 농부의 수고로움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하듯이 내 것과 남의 것, 나와 남을 구별하려는 분별심으로 가득 찬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세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분별심으로 가득차서 집착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결코 행복한 삶
이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매화는 나무가 살아있는 한 양지에 있든 음지에 있든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냅니다. 그리고 피워진 그 꽃은 떨어질 때가 되면작은 미풍에도 미련 없이 꽃잎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그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아름다움과 고결함 때문에 우리들은 매화를 사군자로 칭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봄에 피는 꽃이지만 동백이나 철쭉, 진달래는 기후가 맞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만 꽃이 시들어 없어지도록 나무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비에 젖거나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 추해보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비와, 바람과, 추위와의 만남을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히 꽃잎을 떨어뜨렸더라면 그런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터인데 가지를 붙들고 하루 이틀 더 버티려다가 결국 꽃만 망가지는 꼴이 된 것입니다.

우연히 불교TV에서 중국의 어느 사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그 사찰 주련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져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꽃은 봄을 보내지 아니하려하나 봄은 가고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아니하려하나 늙음은 저절로 온다.」 또 어느 시인이「봄 찾아 이산 저산 헤매다가 지친 몸 이끌고 집에 돌아오니 뜰 앞 매화가지에 봄이 있었던 것을」이라고 노래한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글들에서 의미하고자 했던 것이 또한 무엇이었겠습니까?
마음은 본성인데 시간이라는 현상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기쁨,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하고 귀결점 역시 나라는 생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 꽃이 우리 인생이라면 우리들은 어떤 꽃의 모습으로 살아야겠습니까? 어떤 꽃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참 행복을 구하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만 구하려 한다면 얻을 수도 없을 뿐더러 만족함도 모르고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몸은 물론이요 마음도 지쳐갈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처지를 바꿔서 생각할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만 한 번 다잡아서 자기본래의 성품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마고도의 순례자들은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나와 함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정한 행복은 삶의 어떤 모습일까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고행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 순례자들은 길을 떠나면서 세 가지를 다짐합니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은 죽이지 말 것과 둘째, 거짓말 하지 말 것 셋째, 욕망을 멀리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이렇게 스스로 힘들게 고행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이의 생명을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길손이 되어 떠납니다.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해서 부처님 전에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선행을 실천하며 살고자 합니다.」라고 다짐을 하며 1배3보의 수행을 합니다.
 
그렇게 7개월간의 고행 끝에 라싸에 도착한 순례자 중 가장 연세가 많은 노인의 마지막 말이 또 한 번 심금을 울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자비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저의 다음 생에는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모든 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로지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살고자 합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 모습으로 그렇게 마지막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주굉(朱肱)스님이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스님이 된 것은 나의 일인데 시방의 시주에게 폐를 끼치고 있으니 참으로 보답할 길이 막막하다.」고했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지나치거나 인식능력이 너무 변화되면 부패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의 쉼도 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건강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들을 많은 분들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물질이 온전하고 완전한 것이 몇 가지나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서로가 느끼고 서로가 거울이 되어서 비춰주고 또 맑고 깨끗한 그 영혼을 오염시키지 않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불자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는 것 있으면 아는 것만큼 이라도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 할 수있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