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 | 전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 햇살고운 한의원 대표원장
휴일 아침 느지막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라면을 끓여 달란다.
엄마가 끓여주는 것보다 아빠표 라면이 더 좋다나? 과음으로 늦은 귀가임에도 미안함보다는 라면타령이니 염치가 미제다. 전날 친구들과 꽤 많이 달렸다고 하면서 전부터 술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이상하게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평소 늦잠이 많은 아들은 대부분 아침을 먹지 않는 식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음주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아침부터 시장기가 생기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음주 다음날 찾아오는 이상할 정도로 허기져서 얼큰한 라면이나 짬뽕 한 그릇 먹고 싶은 충동,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대부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왜 심한 허기짐 증상이 생기고, 육류 해물 등 다양한 음식 중에서 하필이면 라면이나 짬뽕이 더 당기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이 떨어져서 생기는 저혈당 증상의 하나다.
술을 마신 다음날 느끼는 이 같은 허기는 기분 탓이 아닌 실제로 일어나는 배고픔이다.
여기에는 간단한 생리적 원리가 숨어있다.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는 포도당이라는 연료를 먹어야 살 수 있다. 술은 포도당이 세포로 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간에서 포도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술을 해독해야 하는 간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즉 알코올 해독하느라 포도당을 만들어내지 못하므로 세포는 포도당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굶게 되고 이것이 배고픔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부족한 포도당은 탄수화물 식품으로 보충하는 게 가장 빠르다.
탄수화물의 대표적인 식품이 뭔가? 바로 라면 짬뽕 등의 면 종류 음식이다. 서양에서는 해장으로 피자나 햄버거를 먹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술 마신 다음날 유독 밀가루 음식이 땡기는 이유가 떨어진 포도당을 최대한 빠른 시간에 보충하려는 인체의 응급신호인 것이다. 당뇨병을 가진 사람은 과음으로 저혈당 증상이 올 수 있는데, 단순하게 배고픈 증상을 넘어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면서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하고 심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 과음하는 경우에는 저혈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음주가 뱃살을 늘린다는 이야기쯤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음주 뱃살과 허기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앞서 밝혔듯이 간은 알코올 해독작용에 전념하는 사이에 포도당을 세포로 보내지 못하면서 그것이 바로 지방으로 쌓여 뱃살이 된다. 술은 식욕을 억제시키는 “랩틴”이라는 호르몬을 방해하기 때문에 과식을 유발하고 이 또한 뱃살이 찌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음주 후 허기짐은 얼큰한 라면 짬뽕 등 탄수화물로 다스리기보다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을 챙겨 먹으면서 혈당수치를 조절하고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것이 좋다. 견과류, 올리브유, 천연 버터, 생선 등 건강한 지방과 닭가슴살, 달걀, 쇠고기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숙취해소와 더불어 탄수화물로 인한 뱃살방지에도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