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7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이달의 포커스
    화보
    특별기고
    다람살라소식
    불교와 탱화
    금강계단
    불서
    절문밖 풍경소리
    축제와 문화이야기
    경전이야기
    즐거움을 뿌려라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긍정의 씨앗, 행복을 가꾸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부처님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菩薩의 행을 생각하므로 기쁘다. 맑고 깨끗한 바라밀波羅蜜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이 보살의 자리가 뛰어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신심信心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음을 생각하므로 기쁘다.
여러분! 오늘 기쁘십니까? 오늘은 초하룻날이자, 일요가족법회일 입니다.
불佛법法승僧 삼보전三寶前에 의지하므로 우리를 불자佛子라 이름하고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고 실천함으로 불자라 이름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아니하여 불자佛子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도 부처님 같은 삶을 살아가도록 신심과 원력으로 정진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보면, 『도道를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성을 말하면 물질적인 것과 연관 지으려고 합니다. 물론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는 그것도 중요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서로 감응感應하면 능히 이루고자 하는 도道의 과덕果德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출가자出家者만 수행자修行者는 아닙니다. 수행이라 함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모든 행위, 바라밀波羅蜜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지 않는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精進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은 반야샘터에서 과일과 쑥떡과 차를 가져왔습니다. 프로이드의 ‘의자 중에서 응어리’라는 글이 있습니다. 쑥떡을 보면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가난한 어린 시절, 한 끼를 때우게 하려고 보리방아를 찧고 남은 보릿겨를 모아 쑥과 버무려서 만든 보리개떡을 대나무 소쿠리에 가득 담아 두었는데, 이미 경험이 있는 식구들은 먹는 척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으니까 열 살도 안 되었던 그 어린아이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야금야금 배가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결국 배탈이 나서 며칠 간 심하게 고생을 하였습니다. 식탐食貪이 많았던 그 아이는 오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몸에서 느끼는 생체生體리듬은, 보리개떡은 물론이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음식도 먹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먹는 음식도 한번 혼이 나면, 몸에 응어리가 져 평생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겨 있는 그 응어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쉼이 없어, 원망하는 마음을 쉬어야 원망은 사라진다.” 하셨습니다.


타던 불이 꺼져야 끓던 물은 잠잠해 질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마음으로 흘리는 피도 지혈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립니다. 분노에 휩싸여 나를 잃어버립니다. 출혈의 원인을 조심스럽게 찾아가야 합니다. 새고 있는 혈관의 상처를 찾아서 정성껏 치료해야 합니다. 마음속 응어리는 서서히 잘 풀어내야 합니다. 인내심忍耐心을 가지고 잘 녹여내야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지혜智慧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가 있습니다.
지혜로움에는 둘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나쁜 일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지은 뒤에 곧 참회慙悔하는 이 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용서容恕를 구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이도 둘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罪를 짓는 이요, 둘째는 죄를 짓고는 감추려는 이 입니다. 참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떳떳한 것과 뻔뻔한 것은 다릅니다. 지혜로운 이는 세상을 떳떳하게 살 것이요, 어리석은 이는 뻔뻔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무조건 사는 것과 조건 없이 사는 것도 다릅니다. 지혜로운 이는 조건 없이 살 것이고, 어리석은 이는 세상을 무조건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네 어버이는 조건 없이 사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버이는 조건이 있거나, 세상을 무조건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적 개념을 뛰어넘어 지혜로운 우리네 어버이는 불보살님이십니다.
우리네 어버이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근검절약勤儉節約하고 검소儉素하게 사시면서, 그 자식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인들이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네 어버이가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모든 이들의 어버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어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 없이 사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혹 나쁜 짓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즉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리석은 인생을 살면서 죄를 짓고, 죄를 짓고는 참회하지 않고 뻔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런 인생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쁜 일을 하게 되었더라도 이내 드러내서 참회하고, 참회하고는 부끄러워할 줄 알며, 부끄러워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흐린 물이 가라앉은 것같이, 구름이 걷히면 청명한 달이 드러나는 것처럼, 참회하는 것도 그와 같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달라이라마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먼저 자기 내면의 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라.’
나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범위를 점점 넓혀 나가면 세상도 바꿀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사방팔방으로 원을 그리면서 퍼져 나가는 여울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점점 넓혀 나가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가 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우리네 인생의 업적과 영적인 씨앗은 안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오온(五蘊 : 色受想行識)은 인식기관(六根), 인식대상(六境), 인식작용(六識)의 주체主體이지만 과거의 색수상행식이 지금의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색수상행식도 미래의 것이라고 규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내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작자수自作自手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한 영적인 업業이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욕지전생欲知前生이고 욕지래생欲知來生의 모습입니다.
절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만 기도 정진이 되어서는 부족 합니다.
저자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처럼 포장마차 들려야 집에 들어오고, 하릴없이 공원을 배회하다가 해지고 달이 떠야 집에 들어오는 이들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모습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불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불자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력이고, 세상에서 따뜻하며,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살면서 우리도 ‘부처님같이’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자거리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심忿怒心을 내려놓고 변화되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 수행정진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씨앗을 키우는’ 일입니다. 부정不淨의 씨앗은 내버려두면 안 키워도 잡초처럼 잘 자랍니다. 그러니 번뇌 망상의 잡초는 뽑아내야 합니다. 수고로움이 필요합니다.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에 맞춰 정진하고 있는 불자들의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기도와 천도薦度의 가피는 체험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 아니면 단 삼십 분이라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상이든, 좌선이든, 그것이 여래선이면 어떻고, 조사선이면 어떻습니까? 선정 삼매를 닦든, 반야지혜를 닦든 상관이 없습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도 환하게 불을 밝힌 지혜 등불 밑에 머무르고 있으면 변화되어가는 내 모습을 찾는데 충분한 여백의 공간과 환경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별식심分別識心으로 흔들리는 그런 기도는 머릿속에 인식되는 관념觀念일 뿐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작은 공간에 앉아서도 산수화山水畵를 그리고 인물화人物畵를 그릴 수 있습니다. 스쳐 간 인물의 몽타주(Montage)도 생각해 낼 수 있고,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그려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념을 통해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해도 부정적이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의 씨앗을 심고 잘 가꾸어 가는 내 마음속의 그림을 그려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뿐 아니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그림으로 그려가는 공부를 수행의 덕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게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왜냐하면 관념을 통해서 형상을 그려 낼 수 있는 그 모습이 부정적이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어 가는 그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