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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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정신과 이타사상 실천하는 한 해 되길

 





                              정우(頂宇) 스님ㅣ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또 새로운 한해 무자년(戊子年)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국민의 화합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신뢰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다 같이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문제가 가장 절실한 과제요, 또한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자년 새해는 지난해 연말 선출된 제17대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 충만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향후 5년간 이끌어가게 될 실용정부가 출범하는 첫해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따른 상호 대결에 의해 국론이 분열되는 바람에 국민들의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오랜 경기침체까지 겹쳐 사회는 혼란하고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지난 한 해의 갈등과 시련은 새로운 시대를 꿈과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현하 우리 사회는 가속화된 첨단 디지털문명으로 인해 사회 전반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날로 빨라지고 있으며 개인은 물론 국가나 사회도 이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면 허무하리만치 힘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앞선 자를 뒤따르는 길은 쉽습니다. 하지만 선두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남들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험난한 여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계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의 흐름에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우리 사회의 주체이고 주역이라는 주인의식을 갖는 일입니다.

조선시대의 고승이셨던 진묵스님의 일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진묵스님에게는 누이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누이는 진묵대사의 도력만 믿고 수행은 물론 기도정진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는 진묵대사의 도력으로 자신은 수행정진을 하지 않아도 되는것처럼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묵스님이 하루는 식사시간에 누이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1인분 식사만 가져오게 해서 혼자만 공양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누이가 “사람을 식사에 초대해 놓고 왜 혼자만 드십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진묵스님은“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먹어야 맛을 느끼고 또 배도 부르듯이 수행도 스스로 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누이는 스스로 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내 공부만 훌륭하다고 자랑하고 다니시오?”라고 질책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진묵스님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누이는 크게 반성하고 그 뒤부터 수행정진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진묵스님의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자기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수행·정진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자신의 이웃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물론 자신의 발전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월간붓다 독자들과 불자들에게 < 화엄경 십지품(華嚴經十地品) >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정진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무자년 한 해가 되기를 권합니다.
이 경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지혜의 지(地)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지혜인 지에 열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들이 이미 말씀하였고, 장차 말씀할 것이며, 지금 말씀하시나니, 나도 그렇게 말하노라.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자기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자신과 이웃,
나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합니다.


불자들이여,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환희지(歡喜地)요, 둘은 이구지(離垢地)며, 셋은 발광지(發光地)요, 넷은 염혜지(焰慧地)며, 다섯은 난승지(難勝地)요, 여섯은 현전지(現前地)며, 일곱은 원행지(遠行地)요, 여덟은 부동지(不動地)며, 아홉은 선혜지(善慧地)이고, 열은 법운지(法雲地)이니라.

불자들이여, 이 보살의 십지는 삼세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장차 말씀하실 것이고 지금 말씀하시느니라.」여기에서 환희지는 보살이 불지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그 마음에 부처가 되는 갖가지 성질이 갖추어져 있어서 환희의 마음이 우러나는 경지를 말하고 이구지는 보살이 자신의 수행에 힘쓸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모든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경지이며, 발광지는 법을 관찰하고 법을 들음으 로써 지혜의 광명을 얻고자 노력하는 경지이고 염혜지는 삼보에 대한 믿음의 확립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여래의 집안에 태어날 자격을 얻고, 번뇌를 떠나 수행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또 난승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키는 경지이고 현전지는 일체법의 평등성을 관찰함으로써 도달되는 경지이며, 원행지는 번뇌가 작용하지 않는 경지, 부동지는 모든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경지, 선혜지는 현실을 잘 관찰하는 지혜를 나타내는 경지, 법운지는 무수한 부처님으로부터 무량한 법우(法雨)를 받아 중생을 인도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 경에서는 또「불자들이여, 보살이 이러한 큰 원을 내고는 곧 이익하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 따라 순종하는 마음, 고요한 마음, 조복시키는 마음, 적멸한 마음, 겸손한 마음, 윤택한 마음, 동하지 않는 마음, 흐리지 않는 마음을 얻으니라」고 설하고 있으며, 이어「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자비로 크게 보시하는 마음으로써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하여 점점 다시 세간과 출세간의 여러 가지 이익 되게 하는 일을 구하되 고달픔이 없으므로 곧 고달픈 줄 모르는 마음을 성취하며, 고달픈 줄 모르는 마음을 얻고는 일체 경과 논에 겁약한 마음이 없으며, 겁약함이 없으므로 일체 경론의 지혜를 성취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바세계가 육체적으로는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고달픈 인생을 살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자비심으로 보시행을 하여 고달픈 생각 그 자체마저도 없애버리라고 설하셨던 것입니다.




무자년 새해에는 자비정신과 이타사상의
실천에 의한 공동선을 이뤄내고 시비와 갈등을 겪지 않고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평화로운 세계,
불화와 다툼이 없는 안락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대한 실존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대만에는 육신보살로 추앙받는 두 분의 스님이 있습니다. 청엄스님과 자항스님이 그 두 보살인데 두 분 모두 입적 후 법신이 썩지 않고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제자들이 육신을 그대로 보살상으로 조성하여 법당에 모시고 있는 등신불입니다. 그 중 청엄스님은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로 평생을 일관하면서 오로지 자기의 수행정진에만 힘을 쏟은 분입니다. 그래서 그 스님의 절은 항상 가난에 찌들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항스님은 절은 가난했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그것을 쓰지 않고 모두 모아두는 자린고비 형의 수행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항스님에게 한 도반이 찾아와서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다 가지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절에 신도들이 몰려들어 시주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돈을 들고 간 도반이 그 돈을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면서「자항스님이 주는 것」이라고 소문을 냈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켜본 자항스님은 그 순간 사고전환을 해서 입적할 때까지 보시행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후학들에게 △항상 밝은 스승을 가까이 할 것 △좋은 도반을 아끼고 서로 의지할 것 △경·율·론 3장을 부지런히 갈고 닦을 것 △ 부처님의 계율을 엄히 지킬 것 △항상 염불에 힘써 번뇌에 빠지지 말 것 △조석으로 예불에 힘쓸 것 △윤회의 고통과 중생의 괴로움을 생각할 것 △중생을 돕기 위해 보리심을 발할 것 △자기소유의 재산과 시간을 중생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 △탐·진·치 3독을 이겨내고 부처님의 열반을 얻고자 발원할 것을 유훈으로 남겼습니다. 그 공덕으로 자항스님 역시 육신보살의 경지에까지 올랐습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무자년 새날 새 아침에 이 두 스님의 삶을 통해 각자 자신의 삶을 한 번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자신의 미래도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큰절에 가면 법당이나 객실 등 신발을 벗어놓는 자리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 뜻은“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떠한지, 내 발 밑을 잘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무자년 새해에는 이러한 자비정신과 이타사상의 실천에 의한 공동선을 이뤄내고 시비와 갈등을 겪지 않고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평화로운 세계, 불화와 다툼이 없는 안락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자년 새해를 맞이하여 월간붓다 독자와 여러 불자님의 가정에 불은(佛恩)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