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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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양 가운데 가장 으뜸인 공양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수행정진修行精進 하는데 ‘좋은 도량道場에서 훌륭하신 스승과 도반道伴인 벗과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중국中國 명明나라 때, 선지식善知識 주굉宏스님은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 ‘좋은 도량에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좋은 도반인 벗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으면 금생今生에 공부를 마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태허太虛선사는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은 환경의 도량에서 훌륭한 스승과 좋은 도반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스님께서는 ‘먼저 사람이 되어라.’ 하셨습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주리반특가’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행동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워, 사람들로부터 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그런 ‘주리반특가’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리석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안됩니다. 저를 보고 다른 이들이 바보라고 놀려댑니다. 어떻게 하면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수행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주리반특가여, 스스로가 어리석은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가 어리석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니라.”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것을 아는 것,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 입니다.
육도중생六道衆生 가운데 아귀餓鬼는 탐욕貪慾이 많아서 물을 불로 보고, 부나방 같은 축생畜生은 불을 꽃으로 보면서 죽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계율戒律을 닦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선정禪定을 닦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지혜智慧를 닦는 것인지에 대해서 답하시기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는 번뇌煩惱와 오욕락五慾樂이라는 망상妄想을 여이기 위해서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팔정도八正道를 통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규범規範이라는 것이고, 선정이라는 것은 삼매三昧이고, 지혜라고 하는 것은 반야般若이다.』
 
계율을 닦는다는 것은 규범 속에 산다는 것, 본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것, 불을 밝히면 어둠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처럼 이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법대로 살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의심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제자에게 『대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심이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진실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참말이니 정말이니 하는 말은, 새삼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율을 닦는 것은 몸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요, 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며,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며, 도를 닦아 익히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과 도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수행자이어야 합니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로부터 부촉을 받아 도를 구하기 위해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구법의 길을 나선 뒤, 천신만고 끝에 모든 선지식을 만나고 다시 돌아온 자리가 바로 문수보살을 만난 자리입니다. 비유하자면 그 출발점을 0이라고 한다면, 법운비구法雲比丘를 찾아 떠난 후, 53분의 선지식을 만나고 돌아온 곳은 360도인 일원상一圓相의 그 자리입니다. 그러나 선재동자는 처음 만난 문수보살과 다시 만난 문수보살의 만남은, 경계가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재동자는 그렇게 모든 선지식을 만나고 다시 문수보살을 만날 때, 보현행원普賢行願의 춤과 노래가 되어, 그 열 가지 행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널리 공양하는 것, 업장을 참회하는 것,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중에서 법공양法供養에 대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선남자야,(善男子) 모든 공양 가운데에는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 되나니,(諸供養中 法供養 最) 이른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며,(所謂如說修行供養)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이며,(利益衆生供養) 중생을 섭수하는 공양이며,(攝受衆生供養)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이며,(代衆生苦供養)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이며,(勤修善根供養) 보살의 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이며,(不捨菩薩業供養)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니라.(不離菩提心供養)
선남자야,(善男子) 앞에 말한 많은 공양으로 모든 공덕은(如前供養無量功德) 일념으로 닦는 법공양의 공덕에 비한다면(比法供養一念功德) 백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百分 不及一) 천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千分 不及一) 백천구지나유타분과(百千俱那由他分) 가라분과(迦羅分) 산분과(算分) 수분과(數分) 비유분과(喩分) 우바니 사타분의 일도 또한 되지 못하느니라(優波尼沙陀分 亦不及一). 무슨 까닭인가.(何以故)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존중히 하시는 까닭이며,(以諸如來 尊重法故) 말씀대로 행하면 많은 부처님이 출생하시는 까닭이며,(以如說行 出生諸佛故) 또한 보살들이 법공양을 행하면 여래께 공양하기를 성취하나니,(若諸菩薩 行法供養 則得成就供養如來) 이러한 수행이 참된 공양이 되는 까닭이니라.(如是修行 是眞供養故)
이 넓고 크고 가장 수승한 공양을(此廣大最勝供養)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虛空界盡 衆生界盡 衆生業盡 衆生煩惱盡) 나의 공양도 다하려니와(我供乃盡) 허공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 공양도 다함이 없어(而虛空界 乃至煩惱 不可盡故 我此供養 亦無有盡) 생각생각 상속하여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念念相續 無有間斷 身語意業 無有疲厭)』


많은 사람들은 법공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전經典만 간행刊行하고, 역경譯經하고, 서사書寫하고, 수지受持하고, 독송讀誦하는 것만을 법공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현행원품에 있듯이, 시방삼세十方三世 일체불찰극미진一切佛刹極微塵의 세계에 계신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 바로 법공양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닷물이 짠지, 쓴지를 물으면 보편적으로 짜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먹어보고 짜다고 하는지 반문해보면 ‘찍어서 먹어봤다.’고 할 것입니다.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의 그 많은 물을 손가락에 묻혀 살짝 찍어 먹어 보고 어찌 바닷물이 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 바닷물을 먹어보았다면 어떻게 표현 하겠습니까?
더 나아가 바닷물이 짠지 쓴지를 물었을 때는 짜다고 대답하지만, 쓴지 단지를 물었다면 바닷물이 달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은, 어버이가 자식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보살님의 마음과 동일할 수야 없겠지만,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기서 말하는 법공양으로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바닷물을 예로 들었습니다.


‘한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만중생萬衆生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보살들이 법공양을 행하면 곧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성취하게 되는 이러한 공양이 참된 수행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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