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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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김시습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오뚜기를 생각해본다. 한자로는 부도옹不倒翁이라고 표현한다. 넘어질듯 넘어질 듯 결코 넘어지지 않는 늙은이라는 뜻 쯤 된다.
최영년崔永年이라는 사람이 쓴 시가 한 수 있다.


形如人類類非眞 형여인류류비진
人豈不如此偶人 인기불여차우인
百倒千顚還自立 백도천전환자립
自家能有自精神 자가능유자정신


모양은 사람 같지만
비슷할 뿐 진짜는 아니라네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은
이 나무사람만도 같지 못한가
백번 천 번을 넘어져도
다시금 스스로 일어서니
스스로 제정신을
지니고 있는 것이로다


최영년이 19세기 중엽에 엮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실려 있다.
오뚜기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단전에 중심추가 있기 때문이다. 하단전이란 말이 좀 추상적이긴 한데 사람으로 치면 방광과 대장·소장과 신장이 튼튼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대장과 소장이 튼튼하면 컨디션이 좀 떨어졌다가도 얼마든지 거뜬히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대장이 흐밀흐밀 힘이 없으면 가다가 계단에서 주저앉으면서 무릎까지 다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더 간단하게 말해본다면 건강이라는 중심추가 제자리를 잡고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극복하고 우뚝우뚝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오뚜기 같은 불굴의 의지가 유유자적함을 만나면 또한 맛나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김시습의 시 한 수를 읽어본다.


萬壑千峯外 만학천봉외
孤雲獨鳥還 고운독조환
此年居是寺 차년거시사
來歲向何山 내세향하산
風息松窓靜 풍식송창정
香銷禪室閑 향소선실한
此生吾已斷 차생오이단
棲迹水雲間 서적수운간


일만 골짜기 일천 봉우리
저 너머에서
외로운 구름이
홀로인 새와 돌아왔구나
금년에는 이 절에서
거처하지만
내년에는 어느 산을
향해 갈는지
바람이 잦아드니
솔창문 고요해지고
향 사그러드니
선실이 한가로워
이생에 대한 미련
내 이미 끊었으니
자취를 물과 구름 사이에
드리우리라


소나무 창가에 바람이 잦아들고 선실에 향이 사그러드는 동영상이 돌아간다. 물과 구름사이에 자취를 드리우는 것도 멋들어진 일이고 빌딩과 아파트 사이에 서식하는 것도 사실은 해볼 만한 일이다. 산위로도 해는 뜨고 바다에서 뜨기도 하고 빌딩사이로 해가 지기도 한다. 시골 사람과 서울 사람이 해가 어디에서 뜨고 어디로 지는지 다투었다는 얘기는 이제는 그저 흘러간 얘기일 뿐이다.
김시습이 지은 해학소설 속에서도 시골 선비와 서울 선비가 만난다. 옛날 선비들은 시를 지어 내기하는 것을 즐겼던 모양이다. 형색이 꾀죄죄한 시골 선비에게 서울 선비가 시 한 수를 건넨다.


我觀鄕之賭 아관향지도
怪底刑體條 괴저형체조
不知諺文辛 부지언문신
何怪眞書沼 하괴진서소


언뜻 보면 뜻이 잘 들어오지를 않는다. 각 구 끝의 네 글자는 사실은 한글 뜻으로 읽어야 한다. 도賭는 ‘도박’ ‘내기’라는 뜻이므로 ‘향지도’는 ‘시골내기’이다. 조條는 ‘가지’라는 뜻이니 ‘형체조’는 ‘몸가짐’이다. 신辛은 ‘쓰다’라는 뜻으로 ‘언문신’은 ‘언문을 쓴다’라는 뜻이다. 소沼는 ‘못’이라는 뜻이어서 ‘진서소’는 진서인 ‘한문을 못 한다’는 뜻이다. 참고해서 시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시골내기를 보아하니
괴이할 손 몸가짐이여
언문을 쓰는 것도 알지 못할 터이니
한문 못함을 무어 괴상타 하리오


그래놓고 서울 선비는 시골 선비에게 화답을 하라고 재촉했다. 시골 선비는 시를 잘 못한다고 사양을 거듭했다. 서울 선비가 시에 화답하지 않는 것은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니 방에서 쫓아내버리겠다고 윽박지른다. 시골 선비가 마지못해 짓는 듯 하면서 즉석에서 좌르륵 시를 한 수 지었다.


我觀京之表 아관경지표
果然擧動戎 과연거동융
大底人物貸 대저인물대
不過衣冠夢 불과의관몽


이 시에 나오는 각 구의 끝에 있는 네 글자도 훈독해야 한다. 표表는 ‘겉’이니 ‘경지표’는 ‘서울 놈’이 된다. 융戎은 ‘뙤놈’이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거동융’은 ‘거동이 뙤놈스럽구나’라는 뜻이 된다. 대貸는 ‘빌리다’ ‘꾸어오다’라는 뜻이므로 ‘인물대’는 ‘인물을 꾸어온’이라는 뜻이 되어 버린다. 몽夢은 ‘꿈’인데 ‘의관몽’은 다 벌써 짐작하고 있다시피 ‘의관을 꾸미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합쳐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내가 서울 놈을 보아하니
과연 거동이 뙤놈스럽구나
대저 인물도 꾸어온 것일 뿐이니
의관을 꾸민 것에 불과하구나


‘서울 놈’이 정신이 번쩍 들었을지 말았을지 너무 정색을 하고 따질 일은 아니다.
벌써 겨울이 다 가고 있다. 오뚜기처럼 쓰러질듯하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한적한 유유자적함도 즐기면서 해학을 놓치지 않을 일이다. 오뚜기처럼 일어나기만 하면 지치기 쉽고 유유자적함만 찾다보면 솔바람도 지겨워진다.
저 남쪽 시골 어느 마을 입구에 지금쯤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려 뿌리를 단단히 세우고 있을 것이다. 한파가 지나고 설도 지나고 나면 봄도 이미 반쯤은 우리 곁에 와있는 것을.
어느 지인이 들려준 구절을 읽으면서 아직은 찬바람에 옷깃을 세워본다.


梅經寒苦發淸香 매경한고발청향
매화는 한파가 고초를 겪은 덕에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