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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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탄탄스님
대덕사주지·동국대 강사



경주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중학생 시절 불국사·석굴암·왕릉으로 수행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가뭄에 콩 나듯 간간히 방문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강의 때문에 이곳에서 매주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은 한적하게 왕릉이며 유적지를 돌아볼 기회도 가져보니 잠시 삶의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미술 사학자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의『경주기행의 일절』이란 기행문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文武王)의 위적(偉蹟)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길러 보라.
태종 무열왕의 위업과 김유신의 훈공이 크지 않음이 아니다. 정신이야말로 경주의 유적에서 찾아야할 것이니, 건천의 부산성(富山城)도 남산의 신성(新城)도 안강의 북형산 성(北兄山城)도 모두 문무왕의 국방적 경영이요, 봉황대의 고대(高臺)도 임해전(臨海殿) 의 안압지도 사천왕의 호국찰(護國刹)도 문무왕의 정경적(政經的) 치적이 아님이 아니 나, 무엇보다도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大王巖)을 찾으라.


고유섭의 기행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경주는 가볼 곳도 많은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런 경주를 다녀 올 때마다 가끔은 무엇에 쫓기 듯 바쁘게 돌아와야 하는 처지가 안타 까울 때도 있다. 경주에 오래도록 머물며 경주를 오래도록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경주하면 유적이나 유물 못지않은 유명한 가문이 있는데, 조선 팔도에 익히 널리 알려진 가문이다. 12대(代)에 걸쳐 부자인 경주 최 부잣집이다. 돈 많은 부자 삼대 (三代)를 못 넘긴다는데 조상대대로 12대(代)를 만석꾼으로 내려 왔으며, 9대(代) 동안 진사를 지냈으니 경주 최 부잣집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프랑스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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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가장 잘 한 분을 소개하라면, 무소유의 삶으로 일관한 법정스님 과 법정스님께 수천억대의 요정이었던 땅과 건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보시한 길상화 보살을 들 수 있다. 그런 길상화 보살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서울 길상사에서 열반하신 법정 스님은‘관을 짜지 말고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법구를 올려 얇은 갈색 가사한장덮고 다비하라.’ 고 하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무엇 하나 지니지 않으시고 가시는『아름다운 마무리』는 스님께서 지으신 저작의 제목처럼 참으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마무리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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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층의 사회적 의무나 솔선수범)의 전형에 해당하는 명문가이지 싶다. 이런 최 부잣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또는 가정의 철학이 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사는 초시 합격자를 일컫는 데, 벼슬이라기보다는 양반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증 같은 것이다.
양반 신분만 유지하면 되었지 더 이상 벼슬에 욕심내어 정쟁에 휘말리다보면 멸문지화 를 당할 수 있으니 권력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집안은 9대(代) 동안 진사만 배출하였다.
둘째, 재산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은 모으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의 이러한 유지를 받들 어서 이 집안은 재산이 만석이 넘으면 소작료를 낮추는 방식으로 나머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고 한다.
셋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이다. 1년 소작 수입은 쌀 3천석 정도였는데, 이 중 1천석은 가용으로 쓰고, 1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데 쓰고, 나머지 1천석은 주변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1년에 1천석 이상을 손님접대 비용으로 지출하였다고 한다.
넷째, 흉년이 들면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이다. 흉년이 들면 논밭은 싸게 거래되기 마련이다. 논밭을 싸게 파는 이는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흉년에 매입하면 결과적으로 남의 피눈물로 내 배를 불리는 일이 되니, 흉년에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않는 것은 남의 원성을 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섯째,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근검절약을 생활화 하라는 주문이다.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최 부잣집을 중심 으로 사방 100리라 하면 경주 일원과, 영천, 울산, 포항에 이르는 지역이다. 사방 100리 안 에 굶고 있는 이들이 있고 우리집안 식구만 배부르다면 만석을 하여도 의미가 없다. 연간 3 천석의 수입 중 사방 100리 안에 굶고 있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하여 1천석의 곡식을 풀어 가난을 구제하려는 정신은 경주 최 부잣집이 단지 재산만 부자였던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 까지도 부자였으며, 이윤의 사회 환원에 소극적인 오늘의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 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감동적인 것은 12대(代)를 내려온 만석꾼 재산마저도 결국에는 영남대학교 재 단에 희사하였으니, 최 부잣집의 선대부터 오늘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마 무리는 사회적 귀감이며 부의 사회 환원을 올곧게 실천하고 있는 한 예라 할 것이다.
또 다른 아름다운 마무리를 소개해보면 무소유의 삶으로 일관한 법정스님과 김영한 할머 니를 들 수 있다. 법정스님이 열반하자 무소유정신에 대한 사회적 울림이 매우 크게 일고 있 다. 법정스님께 수천억대의 요정이었던 땅과 건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보시한 김영한 할머니 (불명 길상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살아생전에 이러한 유언을 했다.
자신이 죽으면 지난 세월의 아픔과 기쁨이 어린 길상사에 소복하게 첫눈 내리는 날 그 눈 위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 달라고….


그런 길상화 보살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마지막 가신 법 정 스님은‘관을 짜지 말고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법구를 올려 얇은 갈색 가사 한 장 덮고 다비하라’하셨다. 스님의 유지를 상좌들이 받든 것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무엇 하나 지니지 않으시고 가시는『아름다운 마무리』는 스님께서 지으신 저작의 제목처럼 참으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마무리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