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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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처한 역경(譯經) 다시 살려낼 터

유철주
조계종 기획실 홍보팀 주임

동국역경원으로 환지본처 한 무비스님


우리시대 최고의 강백으로 꼽히는 무비스님이 최근 중요한 소임을 맡았다. 조계종 교육원장을 끝으로 공식 소임을 내려놓은 지 거의 10여 년 만 이다. 그동안 제방에서 공부하는 후학들을 지도하 기 위해 전국을 누볐던 스님이 다시 맡은 직책은 바로 동국역경원장.
포교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진행돼야 할 일이 바로 어려운 한문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 내는 역 경불사지만, 지금 상황은“역경(譯經)이 역경(逆境)에 처해 있다”고 할 정도로 처참하다. 그래서 수많은 대중들은 역경불사가 옛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며 무비스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4 월 7일 열린 동국역경원장 취임법회에서 임명장을 전달한 동국대 이사장 정련스님이“동국역경 원 초대원장 운허스님을 비롯해 많은 스님들이 역경불사를 위해 노력해오셨고 2001년에는 한글 대장경 318권 완간이라는 대작불사를 이뤄냈다”며“6대원장을 맡게된무비스님역시원력과 신 심으로 역경원을 이끌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전한 인사말도 대중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월 8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만난 무비스님은“제가 부처님 밥을 먹고 이만큼 성장한 것을 조금 이라도 갚겠다는 심정으로 역경원장직을 수락했다”며“<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사위성에서 탁발 을 하신 후 기원정사로 돌아와서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는‘환지본처(還至本處)’의심정으로 동국역경원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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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역경원장에 취임한 무비스님은“부처님 밥을 먹고 이만큼 성장한 것을 조금이라도 갚
겠다는 심정으로 역경원장직을 수락했다”며“<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사위성에서 탁발을 하
신 후 기원정사로 돌아와서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는‘환지본처(還至本處)’의 심정으로
동국역경원에 돌아왔다”고 취임일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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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연수생 1기로 인연 맺어
사실 무비스님은 동국역경원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강원 생활하면서도 참선을 했고, 또 선을 한다고 선방을 다니면서도 경전이나 어록을 기회가 될 때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보면서 본래 선과 교가 둘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7년 동국역경원이 제1기 역경연수생을 모집할 때 응시해 시험을 봤습니다. 응시자 300명 중 10명을 뽑았는데 내가 수석 합격을 했습니다. 동국역경원의 역장(譯場)은 처음에는 용주사에 있었다가 나중에 봉은사로 옮겼습니다. 운허스님이 초대 역경원장, 지난달 입적한 법정스님이 편찬부장 소임을 보고 있었습니다. 탄허스님 등 기라성 같은 스님들이 강사를 하고 있었고, 종단 과 학교의 지원도 적지 않았습니다.”


출가한지 얼마 안 돼 시작한 연수생 시절은 힘들면서도 알찼던 시간이었다고 무비스님은 회고 했다.
“운허스님은 최고의 강사진을 구성하셨고, 역경 실습과 논문 쓰기를 시키셨습니다. 우리가 한 문 실력이 모자라는 것을 보시고는 몇 개월간 강의를 전부 폐지하고 저마다 한문책을 정해 독송 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맹자>의 일부분을 2천 독 했습니다. 용맹정진이 따로 없었죠. 같은 방 을 쓰던 동기생과 4~5일간 말 한마디도 안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동국역경원은 1964년 7월 동국대 부설로 개원된 후 초대원장 운허스님(1964~1979), 2대원장 영암스님1979~1987), 3대원장 자운스님(1987~1992), 4대원장 월운스님(1993~2008)을 거치 면서 팔만대장경 등을 한글로 번역해 내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36년여의 대장정을 통해 2001년 318권의 한글 대장경 간행사업을 완료해 우리 불교계는 물론 학술계에도 큰 이정표를 남겼다. 또 1995년부터는 역경후원회를 발족시켜 민간의 지원도 받았다. 그러나 종단의 관심이 줄어들고 동 국대, 정부 등의 관심도 줄어들면서 동국역경원의 역경사업은 크게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다.
무비스님은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이 많았다고 했다. 스님은“역경원은 사무실 도 변변치 않고 인적·물적 지원이 미약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현재 직원이 6명뿐이어서, 내로라하는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실정이며, 국가 지원금을 다른 연구원과 나눠 써야 하고 종단에서 주는 보조금도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3기 연수생 선발·우수인재도 영입”
스님은“용주사 시절인 1967년 1기 연수생을 뽑고, 그 후 4~5년 뒤 봉은사 시절 2기 연수생을 뽑은 후 30여 년이 넘도록 3기 연수생을 뽑지 못하고 있다”며“역경원 경험이 어린 시절 향수를 달래는 경험이 될 정도로 마음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3기를 뽑고 우수한 인재를 역경위 원으로 과감하게 발탁하는 등의 실질적인 활동을 통해 연구원들이 맘 놓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현재 27쇄를 넘긴 <금강경 강의>와“죽을 고비를 넘기고 누워서 써놓고 보니 이 책 한 권으로 부처님 밥값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너무 감동적이더라”고 자부하는 <임제록 강설> 등 경전 역저서 40여 권과 숱한 교재를 내기도 했다.
스님은 특히 <임제록>과 관련해“우리나라의 불교는 대부분 임제 스님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 는데, 그 단적인 예가 오래된 사찰에 있는 옛 스님들의 비석을 살펴보면 거의가 다 임제의 몇 대 손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우리나라 스님들이 입적하면‘빨리 이 땅에 돌아 오시어 임제문중에서 길이 인천의 안목이 되어주소서(臨濟門中 永作人天之眼目)’라고 강조하 고있다.”고 설명했다.


‘염화실’운영하며 인터넷 포교도 열심
스님은 동국역경원을 맡은 것은 역경원 시절의 꿈에 대한 향수와 좋은 인연을 이어온 동국대 이 사장 정련스님에 대한 믿음, 소통 가능한 언어로 불교를 전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스님은 또“초벌 번역된 한글대장경을 현대적인 언어로 시대에 맞게 제2, 제3, 제4의 번역을 계 속해야 한다”며 2004년부터 직접 운영해온 인터넷카페‘염화실(cafe.daum.net/yumhwasil)’도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스님은“염화실을 운영하면서 나 스스로 많은 것을 얻 었다”며“염화실은 내 공부의 장이기도 하고, 내가 이해한 불교를 내 방식으로 표현해보면 얼마나 먹혀드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요즘은 숨어서 알뜰히 불교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 정말 보람 있고 기쁘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고 한글과 한문의 경계를 없애고 있는 무비스님. 위기가 곧 기회이듯 이 동국역경원과 한국불교의 역경불사는 무비스님의 원력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